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청산 예고장을 보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5일 만에 십 수 년을 일했던 일터가 없어졌다며 해고당했다. 해고 다음날 회사는 같은 공간, 같은 설비로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을 바꿨다. 이전 사장은 사내이사, 이전 차장이 사장 명찰을 달았다. 회사 청산 이유도, 왜 해고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지부 경기북부지역지회 GM도봉정비분회 조합원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회사는 4월25일 청산 예고장을 보낸 뒤 4월29일 해고예고 통지했다. 4월30일자로 조합원을 전원 해고. 분회 조합원 일곱 명은 5월1일부터 회사 정문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분회는 지난 2월부터 회사와 임금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조정 결렬 이후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 청산과 관련한 논의도 없었다.

같은 장소, 설비… 바지사장 내세운 위장폐업

회사는 이전 법인을 청산했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장소, 시설로 ‘한국지엠서울북부서비스센터’라는 신설법인을 세워 정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기존 주주들도 그대로다. 차장이었던 사람이 사장을 맡았다. 심동선 수석대의원은 “저 사람은 바지사장이다. 사장이 지게차를 몰고 일을 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모든 경영은 이전 사장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5월8일 서울지부 경기북부지역지회 GM도봉정비분회 조합원들이 위장폐업, 부당해고를 이기고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다. 신동준

회사는 노조 조합원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을 서류상 퇴직했다 재입사 하는 형태로 고용승계 했다. 한마디로 조합원들만 해고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5월1일 새벽 분회 사무실 현판과 깃발을 절도한 뒤 돌려주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명백한 위장폐업이다. 당장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분회는 전 사장이 외주화 추진과 법으로 걸려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위장폐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인 노조를 없애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사장은 2008년 취임 후 꾸준히 외주화를 추진했다. 정비사업소 내 외주화는 불법이지만 현재 8개 외주업체가 있는 상황. 박해열 조합원은 “회사가 불법을 피하기 위해 일부 인원만 회사 소속 직원으로 두고 임금을 주고 있다”며 “전체 공정을 소사장제로 운영하면서 본인은 신경 쓸 일 없이 돈만 벌겠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전체 공장 외주화해 돈 벌겠다는 속셈”

지난 2월 회사는 판금, 도장 부문 외주화 했다. 정비기능도 외주화 하려 했지만 조합원들이 있어 무산된 상황. 회사는 당시 정비기능사의 기본급을 없애고 정비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려 했다.

▲ 심동선 GM도봉정비분회 수석대의원. 신동준

박해열 조합원은 “소사장제로 운영하면 자기 이윤 더 챙기기 위해 정비서비스 질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고객에게 바가지 씌우거나 비용을 낮추기 위해 열처리도 제대로 안하고 재생이나 중고 부품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건이라도 더 해야 하니 노동자들은 힘들고 사장만 좋은 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회사는 정비 사업 자체를 축소해왔다. 심 수석대의원은 “예전에 공장 2/3가 정비 작업장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정비 리프트도 14개나 없어졌다”고 말했다. 심 수석대의원은 “정비사가 일할 공간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나갈 수밖에 없다”며 “회사는 정비기능사 아홉 명만 남겨 운영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마저도 외주화해서 운영하는 것이 회사의 계획이다. “우리는 정말 정비에 있어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청춘 다 바쳐서 20년을 일했어요. 그런 A급 정비사들을 다 내쫓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분회는 위장폐업의 다른 이유로 사장의 불법행위를 꼽았다. 분회에 따르면 사장은 현재 ‘보험허위청구, 불법리베이트, 사내외주하도급과 임대’ 등으로 형사재판이 예정된 상황이다. 이 곳 정비사업소는 한국지엠으로부터 정비위탁권을 받아 운영한다. 재판에서 영업정지 등의 판결이 날 경우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 이전 사장은 이를 피하기 위해 위장폐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분회의 설명이다.

형사재판 앞둔 사장, 불법 덮으려고

박 조합원은 “불법하도급은 물론이고, 소위 ‘통값’이라고 사고견인차 업체에 소개비를 줬어요. 그것도 불법이죠. 거기다 지금 조합원들 시간외 수당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과 부당해고한 조합원 임금 청구 소송 등도 줄줄이 있으니 면피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고 위장폐업 의도를 지적했다.

심 수석대의원은 “사장은 노동자들을 머슴처럼 생각했다”며 “반발하거나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해고하고, 각종 불법 혐의 씌워서 고소고발했다”고 증언했다. “툭하면 직원들을 ‘도둑놈’이라고 불렀어요. 그 소리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자동차 정비를 맡기러 온 고객이 있는 앞에서 노동자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이전 사장은 조합원들에게 월급 130만원을 주고 그것마저도 5년 동안 동결했다. 사장은 월급 1천5백만원과 월 수 백만원의 판공비를 사용했다고 한다.

폐업 이후 분회는 정비위탁권 허가 등 권한을 갖고 있는 한국지엠에 이같은 회사의 불법 행위를 알리고 사업권을 주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한국지엠 본사와 정비 사무실 등을 찾아가 1인 시위와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한국지엠은 ‘새롭게 설립한 서울북부서비스센터에 정비사업권 코드를 줄 수 없고, 도봉정비사업소를 5월19일까지 정상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분회는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어떠한 대화 자리에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장에 돌아가서 회사 확 바꿀 겁니다”

“반드시 복직해서 다시 현장에서 정당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조합원들은 현장 복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또 하나의 요구가 있다. 심동선 수석대의원은 “현장으로 돌아가면 회사를 확 뒤집을 겁니다. 더 이상 이런 악질사업주가 마음대로 사업하고 돈 벌게 두지 않을 겁니다”라고 덧붙인다.

“도봉정비사업소, 우리가 청춘 바쳐 일했던 현장으로 꼭 돌아가서 다시 금속노조 깃발 꽂겠습니다. 많이 관심 갖고 같이 싸워주세요.” 분회 조합원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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