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며 "조만간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거듭 밝혔다. 또한 이 대통령은 최근 북의 서해안 포 사격과 관련하여 "포탄은 일단 NLL(북방한계선) 북쪽 경계선 안쪽에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쨌든 이러한 위협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점잖게 언급했다. 또 이 대통령은 최근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으로부터 핵 관련 위협을 받게 되면 북을 선제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데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특정사항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저쪽이 공격할 자세를 취하면 이쪽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군사상 일반론을 말한 것일 뿐"이라며 선제공격론을 서둘러 진화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기를 "북한이 극한 상황에 처했거나 붕괴 직전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는 해야겠지만 지금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BBC 방송 인터뷰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태도가 상당하게 누그러진 것처럼 보인다. 불과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초지일관 대북 강경발언 일색이었다. 이 대통령이 새해를 맞이하여 마음을 고쳐먹고 대북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을까 ‘혹시나’ 했는데 국방부를 내세워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부흥'을발표하게 함으로서 ‘역시나’로 화답을 한다.

대북관계개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명박 정부가 최근 언론을 통해 발표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부흥'의 시나리오 유형은 작전계획 5029와 유사한 △대규모 자연재해 △군부 쿠데타 △김정일 위원장 유고 및 장기간 투병 △주민소요 확산 등을 설정하고 있다. 비상계획 ‘부흥’의 요지는 통일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북한자유화행정본부'(가칭)를 세워 북한에 대한 비상통치를 담당하며 급변 이후에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통합위원회를 구성해 남북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계획이 아닐 수 없다. 한 손은 화해의 악수를 하는 척 하면서 다른 한 손에는 상대를 찌를 비수를 준비했던 것이다.

'비상계획-부흥'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군사당국의 작전계획 5029와 함께 작성된 이명박 정부 단독의 점령통치계획으로서, 과거와 달리 통일부와 국정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정부차원의 단일한 통합 메뉴얼로 작성되었다. 이 계획은 작전계획 5029와 연계되어 북한 급변사태를 빌미로 북을 군사적으로 붕괴시키고 점령통치를 감행하여 흡수통일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 정책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반북 대결정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겉으로는 대화니 지원이니 하면서 속으로는 북한 점령통치의 칼을 갈아온 이명박 정부의 본심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특사조의방문단의 방남 이후 북의 일관된 대남 화해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작전계획 5029 작성, 서해교전 도발 등 반북 대결정책을 강행한 원인도 북한 점령통치 음모 때문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 계획은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을 담고 있는 작전계획 5029의 연장선에서 북에 대한 무력 흡수통일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숭배하는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의 변형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 같은 북한 점령통치와 흡수통일 계획은‘평화통일 사명’과 ‘평화통일 정책 추진’을 명시하고 있는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의 10.4선언 등 남북 사이의 합의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계 이중 플레이가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비상계획-부흥’을 계속 고수한다면 개선의 가능성이 열리던 남북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파탄 국면으로 빠져들고 한반도 평화도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북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정세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모름지기 정치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국보 1호 남대문도 화마에 잿더미로 만들더니만 이제는 ‘비상계획-부흥’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불구덩이에 빠지게 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재부를 피땀 흘려 생산하는 노동자 민중이 ‘비상계획-부흥’을 폐기시키는 투쟁에 떨쳐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양의 탈을 쓰고 늑대의 행동을 하는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노동자 민중이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김종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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