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돈과 명예를 가진 재벌이라 해도 경찰과 검찰이라는 공인된 폭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정치권력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싫든 좋든 경제민주화라는 화두에 떠밀리고 있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눈도장 찍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MB정권에서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는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은 비정규직 문제라면 ‘죽어도 함께 죽자고’ 똘똘 뭉쳐 있던 다른 재벌들을 배신하고 홀로 비정규직 2천여명의 정규직화라는 선언을 하면서 새로운 정부를 향한 코드 맞추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에게 2007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을 것이다. 2007년 3월8일 오전 7시쯤 서울 청담동 소재 가라오케주점에서 김승연 회장의 차남 일행 두 명이 서울 북창동 소재 모 클럽 종업원 다섯 명과 사소한 시비 끝에 몸싸움을 벌였다. 김승연 회장은 아들 일행을 구타한 술집 종업원들을 청계산 등지에서 보복 폭행한 사실이 확인되어 구속되었다. 또한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은 김 회장 측을 비호한 혐의를 받아 경찰의 신뢰에도 내상을 입었다.

▲ 2007년 5월11일 술집 종업원 '보복폭행'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 수감되고 있다. 폭력 혐의로 재벌 총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었다. 2007년 한화가 만든 새 CI. 사진= <오마이뉴스>

대한민국 재벌의 미천하다 못해 천박한 수준을 만천하에 공개했던 한화그룹에게 원래 2007년은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카림 라시드라는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만든 새로운 그룹CI인 ‘한화트라이앵글’을 새롭게 발표하면서 글로벌 경영을 선언하고, “유어 드림월드 한화그룹”이라는 슬로건 하에 그룹PR광고도 200억원 규모로 대대적인 집행을 하면서 한화그룹의 새로운 도약의 기점으로 삼았던 해다.

그러나 그 모든 한화그룹의 노력을 김승연 회장은 조폭 보복폭행으로 말아먹은 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화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의 총력을 기울인 노력을 총수가 말아 먹었다. 물론 그는 한화그룹 내부게시판에 사과의 글을 올리고 위로금을 돌리기는 했지만 한화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재벌의 지배구조이다.

김승연 회장은 2008년 광복절 특사에서 ‘경제살리기’라는 미명하에 MB로부터 사면을 받고 나서 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업무상 배임・횡령 및 조세포탈에 대한 조사가 들어오자 한화그룹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불어 닥친 경제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다시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게 된다. 그룹 총수가 감옥에 가서 ‘옥사’할 수 있을 정도로 심신이 쇠약해져 있다고 주장했던 한화그룹의 기업PR광고를 보면 가슴이 애처롭다.

대한생명에서 한화생명으로 기업명을 변경하면서 지난해 12월에 방송된 TV광고의 모델은 지금 최고의 주가를 치고 있는 김태희다. 김태희가 걸어 나오면서 말하는 카피는 이렇다. “왜 사람들은 다 지난 얘기만 하죠? 사실 중요한 건 내일인데, 더 즐거운 내일, 더 따뜻한 내일을 위해 한화생명이 시작합니다. 내일이 더 즐거워질 거예요. 한화생명.”

김승연 회장은 너무 억울할 수도 있다. 업무상 배임・횡령은 대한민국 재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저의 부도덕 했던 과거는 잊어주시고 내일을 생각해 주세요. 사면해 주세요, 아니면 최소한 형집행 정지라도 부탁드립니다”라는 애절함이 TV광고 속에 묻어난다. 대한민국 재벌은 세상의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지금 그대로 계속계속”을 이야기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김승연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가 이루어져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화그룹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그 배경이야 어떻든 간에 희소식이다. 이런 사회적 압력은 대한문 앞 농성장과 투쟁의 현장에서 서서히 생겨난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룹 총수를 감옥에 쳐 넣고 “재벌 총수의 옥사(獄死)” 위협을 가해야 겨우겨우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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