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 해외공장간 물량 조정이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협하자 한국지엠지부(아래 지부)는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을 확정하고 올해 투쟁에 돌입했다.

이 투쟁은 지난해 11월 지엠 본사가 준중형 모델인 쉐보레 신형 크루즈 J400모델 물량을 기존 크루즈 J300모델을 생산하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아니라 유럽 공장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면서 시작됐다. 당장 군산공장 조합원들의 잔업, 특근이 없다. 2월에 이틀 정도 휴무가 예정돼 있다.

▲ 글로벌 지엠은 변화무쌍한 세계 시장을 이유로 해외공장들간 물량 경쟁을 통한 반노동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2008~9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위기로 전화하면서 유럽경제 침체는 한국지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한 조합원이 아베오 라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신동준

J400모델을 생산할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지엠의 유럽법인 오펠의 폴란드 글리비체 공장으로 알려졌다. 지엠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적자 폭이 커지자 오펠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유럽정부와 유럽노조들의 반발로 정책을 변경하고 매각을 취소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와 같이 국내를 기반으로 한 자본과 달리 같은 물량 문제라도 지엠의 해외공장 한국지엠은 고민의 방향이 매우 다르다.

한국지엠, 해외공장의 비애

지엠 본사가 미국 및 유럽 중심의 회사이기 때문에 한국지엠은 본사 정책의 후순위로 밀려 있다. 한국지엠의 물량 구조도 전체 물량(부품수출인 KD 포함)의 90%를 해외수출하고 있고, 내수시장 점유율은 10%를 약간 넘는다. 한국지엠은 지엠의 수출,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판매하는 쉐보레 크루즈의 전량이 한국에서 생산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물량 문제는 미국, 유럽 시장 동향 뿐 아니라 본사가 바라보는 한국지엠의 발전전망에 민감하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지부는 ‘발전 전망 확보와 고용안정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아래 고용대책위)를 구성했다.

글로벌 지엠은 변화무쌍한 세계 시장을 이유로 해외공장들간 물량 경쟁을 통한 반노동정책을 펼쳐왔다. 물량 경쟁은 유럽 오펠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 글리비체, 영국의 엘스미어포트, 독일의 보쿰, 뤼셀스하임 공장들의 경쟁을 부추겨왔다.

특히 2008~9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위기로 전화하면서 유럽경제 침체는 한국지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동안 지엠유럽법인 오펠은 한국지엠을 이용해 유럽노조들에게 물량 축소와 공장 폐쇄 위협을 하면서 구조조정과 양보교섭 압력을 넣어왔다.

글로벌 지엠의 유럽법인 오펠의 12개 공장 분포표

국가

공장수

공장명칭 혹은 지역이름

비고

독일 4개

뤼셀스하임, 보쿰, 카이저슬라우테른, 아이제나흐

2016년 보쿰 공장 폐쇄 계획 발표

영국 2개

엘스미어포트, 루튼

 
폴란드 2개

글리비체, 티히

 
오스트리아 1개

아스펀

변속기 생산

헝가리 1개

센트고트하르드

엔진 생산

스페인 1개

사라고사

 
벨기에 1개

앤트워프

폐쇄

※자료제공 : 오민규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정책위원

이범연 지부 정책실장은 “글로벌 지엠은 유럽에서 생산예정이었던 올란도, 국내 출시예정인 GSUV(소형SUV) 트랙스를 한국지엠 각각 군산공장, 부평공장으로 돌렸고, 벨기에 앤트워프 공장을 폐쇄했다. 지엠은 스페인 사라고사, 독일 보쿰공장도 폐쇄 위협을 했다. 이렇게 한국지엠을 이용해 구조조정을 수행하면서 유럽 노조들에게 양보교섭을 압박하는 등 노동자 길들이기 전략을 수행해 왔다”고 폭로했다. 특히 벨기에 앤트워프 공장과 스페인 사라고사 공장은 유럽 오펠노동자포럼(EEF)와 물량증산협약을 맺었음에도 결국 한국지엠으로 물량을 옮겼다. 회사가 협약을 파기한 것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전비연) 정책위원은 “지난해 9월부터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쉐보레 트랙스’는 벨기에 앤트워프 공장이 폐쇄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생산됐을 차량이다. 공장폐쇄로 앤트워프 공장에서 일하던 2,600여명이 정리해고 됐다”고 전했다.

볼프강 샤퍼클룩 유럽 오펠노동자포럼(EEF)대표가 비공식 입장서에서 “유럽 노동자들의 입장은 잃어버린 소형SUV를 물량을 벌충하기 위해 유럽에서 팔리는 쉐보레의 생산 물량 일부를 한국지엠에서 유럽 생산시설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유럽 노조와 지부 사이에 물량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현재 독일 금속노조와 오펠은 2014년까지 완전고용협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펠은 2014년 이후 생산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다. 유럽 자동차노동자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2016년 독일 보쿰 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오펠의 고용인원 절반이 독일에 몰려 있다. 유럽 자동차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가시화됨에 따라 물량에 대한 집착도 더 심화할 것이다. 지금껏 그랬듯 오펠이냐 한국지엠이냐를 두고 지엠 본사가 ‘물량 꼼수’을 언제든지 부릴 수 있는 상황이다.

지엠 구출 일등공신 한국지엠노동자 하대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이런 해외공장간 물량경쟁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지난 2002년 대우자동차가 지엠으로 넘어간 이후 10년간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을 감수하면서 고용안정에 매달렸다.

한국지엠은 2008년 지엠의 파산위기 이후 구세주 역할을 했다. 파산위기였던 지엠은 미국 정부의 막대한 구제금융 자금투입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경제위기와 유가상승 등으로 대형자동차와 SUV 등 차량 판매가 급감하고 대신 저렴한 중소형 자동차들의 수요가 급증했다.

고용대책위에 자문을 하고 있는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지엠이 파산 위기를 넘기고 회복하는데 한국지엠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지원 연구실장은 “크루즈를 비롯한 중소형차가 많이 팔리던 시점에 한국지엠이 생산하던 차들이 지엠을 구원한 것이다. 글로벌 지엠은 공식적으로 쉐보레 크루즈가 지엠을 구원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고 평가한다”고 말한다. 인기차종인 쉐보레 크루즈는 현재 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 타이, 인도 그리고 호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한국지엠은 전체 쉐보레 브랜드 생산의 40% 가량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지엠은 전세계에 902만6천대를 판매했는데, 그해 한국지엠의 수출대수는 190만대(KD포함)였다. 한국지엠이 지엠 판매대수의 20% 가량을 차지한 셈이다.

그동안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을 감내해 왔던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지난해 총 122시간의 강력한 파업투쟁을 통해 회사성장과 기여도에 상응하는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을 쟁취했고, 사무직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의 성과도 이뤘다.

지엠은 회사 회생에 중요 역할을 해 왔던 한국지엠노동자들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1월29일 한국지엠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지부와 민주통합당 은수미, 진선미 의원 등과 간담회에서 “한국지엠은 파업이 없어야 한다. 군산공장 차세대 크루즈 생산중단은 철회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엠이 줄곧 추구해 왔던 해외공장간 물량경쟁과 반노동 전략 추진을 의미한다.

지엠 본사의 한국지엠에 대한 정책도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 정책 변화가 무엇인지 몇 가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배경은 부상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대응이다. 경제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형차인 스파크, 아베오, 크루즈와 미국과 중국 시장이 지엠의 수익성을 높혔다.

2011년 GM 결산표
 

북미공장

중국(JV)

GMIO

남미

유럽

판매

292만대

257만대

330만대

106만대

173만대

이익(EBIT)

72억달러

32억 달러

19억달러

-7억달러

-1억달러

※ 자료제공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 GMIO : 지엠해외사업부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중동, 러시아, CIS를 총괄하고 있다. 2011년 현재 61개의 공장에 9만8천명의 직원이 있다.

※ 중국(JV) : 지엠과 상하이가 합작한 회사. 위 표에는 GMIO 판매대수에 JV의 판매대수가 포함돼 있음. 그러나 이익(EBIT)은 JV와 GMIO가 분류돼 있다.

지엠결산표를 보면 본사가 있는 미국시장이 전체 수익의 62.2%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이를 제외하면 지엠상하이합작회사(JV)가 27.8%이다. JV와 GMIO의 수익률을 합치면 총 수익률의 44.3%나 차지한다. 다시 말해 중국시장이 지엠 해외 수익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중국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해외 공장 중 하나가 한국지엠인 셈이다.

이범연 지부 정책실장은 “한국지엠은 지엠의 중소형차 생산수출기지 역할을 해왔고, 글로벌 전략의 핵심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지엠 먹튀’ 보다는 효율적인 활용이 글로벌 지엠의 전략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이범연 실장도 지적했듯이 양날의 칼이다. 지난해 11월 사무직노동자 7천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권고한 것은 효율성을 핑계 삼은 구조조정이었다. 유럽과 물량 경쟁 역시 시장 효율성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시장경제의 변화무쌍한 변동이 한 순간에 지엠 본사의 정책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지엠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한국지엠에 향후 1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지엠 지분 17.02%와 상환 우선주 전량을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엠은 한국정부의 통제와 제약을 넘겠다는 것이다. 산업은행과 지엠은 2011년 증자 시 계약하면서 산업은행이 지분 15% 이상 보유할 경우 사외이사 선임권과 자산매각, 증자 등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했다.

한국지엠지부, 미래 10년 준비 투쟁한다

한국지엠이 설사 ‘먹튀’ 보다 지엠의 세계시장 전략에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더라도 회사에 미래 전략을 맡겨두는 순간 지엠 노동자들은 노노간 물량 경쟁과 고용불안을 겪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이유로 임금 및 복지, 노동강도 등의 양보 압력을 받을 것이다. 물량공급의 안정화와 장기적 고용안정은 결국 투쟁을 통해서 쟁취할 수밖에 없다.

▲ 그동안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을 감내해 왔던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지난해 총 122시간의 강력한 파업투쟁을 통해 회사성장과 기여도에 상응하는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을 쟁취했고, 사무직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의 성과도 이뤘다. 2012년 6월12일 부평공장에서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이 임단협 전진대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1월22일 지부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을 확정했다. △각 공장별 신차투입, 신형 엔진․미션 생산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기능 확대와 위상 강화 △내수 확대 방안 △내수 부품 비율 확대 등 부품사와 협력관계 강화 △고용안정 협약 체결 등이다. 사회정치적 요구로 △산업은행의 한국지엠 지분 매각인수 반대 △산업은행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의 강화· 산업은행 민영화 반대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시, 견제기능 강화를 내걸었다.

민기 지부장은 “2013년 투쟁은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투쟁이다”고 힘주어 말한다. 2만 명의 한국지엠노동자들과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뜻이다. 지부는 1월부터 특별단체교섭 요구를 시작해 임금투쟁까지 빠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회사 1위 지엠의 해외공장 한국지엠은 대우차의 매각반대투쟁에 이어 해외공장노조가 벌이는 새로운 투쟁의 길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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