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일 넘게 투쟁중인 한국3M지회 조합원들. 해고자를 중심으로 여의도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와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3M은 노동자 1,600여명이 있고 조합원은 현재 150명이 남아 있다. 이중 해고자 18명. 경기도 화성과 전남 나주에 공장이 있는 한국3M은 LCD필름, 방독마스크, 카트리지부터 테이프 등 우리가 흔히 쓰는 생활용품들을 만드는 미국계 기업이다. 한국3M이 해외공장임에도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중국 등 해외생산 및 외주화가 80% 이상 이뤄지고 있다. 이런 글로벌 3M이 노동탄압에서도 최일류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글로벌 3M, 노조탄압 전문가 동원한 글로벌 탄압

한국3M 노동자들은 2009년 5월 14일 금속노조 소속 민주노조를 세웠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모욕적인 인간대우와 현장통제 등 참고 참아왔던 억압 때문에 평범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노조를 만들었을 때 핵심 5대 요구는 대부분 쟁취했다.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제공 △여성노동자 처우 개선 △삭감된 임금 원상 복구와 임금 인상 △ 인사고과제도 폐지 등이었다. 특히 저임금과 현장통제의 고리였던 인사고과제도는 파업과 지역연대의 힘으로 잠시 폐지시켰다. 불합리한 인사고과제도 폐지로 근속 10여년이 넘어가도 월급 80만원을 받던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은 대폭 인상됐다. 이러한 기쁨은 잠시였다.

노조탄압 전문가가 등장했다. 금속노조 사용자협의회 사용자 대표였던 노무사 박원용이 경영지원본부장이란 직책을 달고 회사 임원으로 채용됐다. 박원용이 사측 교섭대표가 되면서 미국인 사장은 교섭장에 아예 나오지 않았다. 미국인 사장은 교섭과 관련한 모든 것을 박원용에게 위임했다. 미국인 사장이 정병국 사장으로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정병국 사장은 경영설명회에서 “이명박과 차 마시는 사이”라면서 정권과의 친목을 과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원용의 노무 전략은 노동자간 이간질, 폭력과 법을 이용한 치졸한 탄압이었다.

컨텍터스는 2010년 한국3M에 있었다

2009년 회사는 지회와 교섭하면서 임금은 인상하고 단체협약은 미체결했다. 특히 단체협약 내용 중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강력히 주장했다. 2009년 5대 요구를 잠시 들어주는 것 같더니 2010년 폭력 탄압이 이어졌다. 비조합원들의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을 인상하면서 조합원들의 탈퇴를 유도했다.

▲ 서울 여의도 한국3M 본사 앞에서 지회 해고자들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정미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2010년 여름에 일어났다. 회사는 노조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면서 공장기계를 외부로 빼돌리려 했다. 물론 나중에 밝혀졌지만 모두 회사의 계략이었다. 회사는 기계를 빼돌리려는 회사에 맞서 조합원들의 점거 파업이 이어지자 이를 탄압의 계기로 삼았다. 시설보호를 명분으로 용역을 투입해 점거파업 중이던 조합원들을 끌어냈다. 이 때 들어온 용역이 올해 여름 경기지부 SJM지회에 들어왔던 컨텍터스였다.

한 조합원은 “용역들한테 우리 지회 간부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익히고 외우게 하는 것을 많은 조합원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지회 간부들의 얼굴을 익힌 용역들은 용역에 항의하는 조합원들 옆에 서 있는 지회 간부조차 ‘살인미수’, ‘폭행죄’ 등을 뒤집어 씌웠다. 관리자들은 심지어 눈이 마주친 지회 간부들에게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지회 간부들 중심으로 30여명이 해고됐다.

현장탄압은 이어졌다. ‘인터넷 봤다, 출근 늦었다, 업무 중 딴 짓 했다’ 등 회사는 온갖 핑계를 붙여서 조합원들만 3개월~6개월 정직 등 징계를 내렸다. 또 1대 1교육, 리더쉽 교육, 행복찾기, 조합원 멘토 달기, 왕따 없는 직장 같은 명목을 붙여 밀착해 조합원들을 암묵적으로 협박했다.

한 대의원은 “관리자들이 조합원들한테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도 절대로 조합을 탈퇴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고용불안 위협이나 어려운 가족상황을 동원했다”고 한다. 특히 근속년수가 길고 업무 능력이 뛰어난 나이든 조합원들에 대한 대우는 매우 모욕적이었다. “일 잘하는 파트장들을 강등해서 풀베기, 녹 제거,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결국 폐지됐던 인사고과제도가 다시 2010년 탄압 이후 2011년 부활했다.

3년 전 제시안 고수, 한시간 침묵 등 교섭 해태

그럼에도 지금까지 교섭은 주 2회 꼬박꼬박한다. 박원용 등 사측 교섭위원들은 꼬박꼬박 교섭에 나온다. 그러나 교섭 해태는 가관이다. 제시안은 지난 3년전 것과 동일하다. 금속노조 탈퇴 등 지회가 전혀 받을 수 없는 안이다. 3년 전과 똑같은 제시안을 들고 나와서 교섭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요. 어떤 때는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그냥 침묵만 지키죠. 교섭 빨리 끝내자고 한 마디하고 말이죠. 우리가 소리 지르고 항의를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요.” “지금까지 180회 교섭 중에서 150회 정도의 교섭은 이런 식으로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우리도 우리 요구만 주장하고 바로 교섭을 나와 버려요”라고 한국3M 조합원들은 말한다. 교섭을 해태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명분만 지키고 알맹이가 없는 교섭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3M이 노조법 테두리 내에서 교활하고 교묘한 탄압으로 노조 탈퇴, 교섭 해태 등 치졸한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노조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합원들이 노예 노동자에서 개념 노동자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회사가 더러운 짓을 하는데 시키는대로 못 하겠다는 자존심도 있고요.” “예전에는 부당한 것이 있어도 시키는대로 했는데 지금은 조합원들이 먼저 분석을 해요. 그 다음에 아니다 싶으면 항의하는 거죠. 완전히 달라졌어요”라고 조합원들은 앞다투어 말한다.

▲ 서울 여의도 한국3M 본사 앞에서 지회 해고자들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정미

회사에 부당한 일이 있으면 지회와 상의해서 부서별로 라인을 멈추기도 한다. 현장파업은 계속 살아 있다. 무엇보다 단체협약이 미체결된 상황이어서 파업권은 여전히 존재한다. 조합원들은 지회가 주최하는 조합원 교육이 있으면 개별 파업을 하고 참여한다. 지회 조직화 사업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여의도 본사 앞에서 해고자들이 상경투쟁을 하고 있고, 현장 조합원들은 팀을 짜서 매일 선전전을 하고 있다.

노예노동자에서 개념노동자로

회사는 다기능화라는 명목으로 강압적인 부서이동, 전환배치를 시도하는데 이런 부당한 일을 거부해 정직 6개월 징계를 당하기도 했지만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합원들은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방법을 쓰는 회사한테 이를 갈고 있다고 한다.

한국3M지회의 투쟁 경험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3M에서 벌어진 노조파괴 노무관리, 사설용역, 손해배상, 징계 등은 현재 노조에서 거론되는 쟁점들이다. “지난 경험을 생각하면 우리가 회사 탄압에 너무 쉽게 당한 것 같아요. 지회가 생기던 2009년에 쌍용차 77일 점거 파업이 있었고, 우리가 해고와 탄압을 당했던 2010년에 발레오만도지회 탄압이 있었죠. 우리 지회 투쟁에 대해 2009년 창조컨설팅이 했던 노조파괴 노무관리가 들어왔고, 2010년에 컨텍터스 사설 용역들이 들어왔어요.” 한 간부조합원이 말한다.

한국3M지회 투쟁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투쟁이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투쟁하다 보니까 투쟁기금도 부족하죠. 하지만 쭉 생각해 보면 무조건 민주노조 만들면 다 되는 것처럼 말하기 보다 노조 탄압에 대한 대응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뭉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죠.” 조합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한국3M 본사 앞을 묵묵히 지키는 해고자들과 현장을 지키는 조합원들. 이들이 끈질긴 한국3M지회 투쟁을 승리로 이끌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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