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가 올 한해 특별사업으로 발암물질추방투쟁을 추진키로 해 주목받고 있다. 노조는 27일 열릴 26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 사업을 2010년 노조 사업계획안에 포함해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노조가 발암물질 추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핵심 이유는 발암물질이 금속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 노조는 이미 작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공동으로 금속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접하게 되는 발암물질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한 바 있다.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었는데, 20개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840개 화학물질 중에 무려 299개(35.6%)가 발암물질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머플러나 시트를 제조하는 사업장의 경우 발암물질 비율이 60%가 넘어서는 등 사업장에 따라서는 더 심각한 수준인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20곳 840물질 중 36%가 발암물질

그런데 노조가 이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일단 노동자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정부의 관련 대책은 매우 미흡한 상태라는 점이 노조가 직접 나서게 된 계기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800여종이 발암물질로 인정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부고시(2008-26호)에 따르면 고작 56종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노동과정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 실제로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는 1년에 발생하는 암 중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되는 비율이 0.3%~0.5%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10 수준인 0.036% 정도다.

▲ 2009년 금속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발암물질 조사 결과
또한 정부가 정책의 초점을 암 예방이 아닌, ‘조기발견, 조기치료’에 두고 있는 것도 노조가 이 사업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다. 금속노조 배현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미국의 경우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암 정복을 위한 연구비를 엄청나게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했다”며 “그 결과 암 발병은 꾸준히 증가해 남성의 1/2, 여성의 1/3이 암에 걸리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막대한 예산은 국민 건강을 위해 쓰이지 못하고 영리병원과 제약회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것.

발암물질에 대한 관성적이고 왜곡된 인식을 바꿔내는 것도 노조가 할 일. 실제로 암과 발암물질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지 오래지만, 노조차원에서 관련된 투쟁은 제대로 전개하지 않았다. 배 실장은 “일반적으로 노출기준 미만이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일하면서 노출되는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하라 할지라도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발암물질까지 고려하면 그 총 합은 기준치를 넘어설 수 있다.

정부의 ‘암과의 전쟁’은 영리병원과 제약회사 주머니 불리기

하지만 노조가 직접 이 사업을 해야된다고 보는 보다 핵심적 문제는 사용자의 인식을 바꿔내기 위해서다. 배 실장은 “사용자들은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기보다는 생산성에만 주목해 저렴하고 생산에 효율적인 화학물질을 더 선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노동자가 화학물질의 독성정보를 알고자 해도 사용자들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이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유럽에 비해 턱없이 낮은 직업성 암 인정 비율. 유럽은 2000년, 한국은 2004년 결과다.
노조가 발암물질 추방사업을 직접 전개하겠다고 결정할 경우 이는 어떤 파장을 미치게 될까? 이와 관련해 배 실장은 “발암물질추방 투쟁은 조합원들 건강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 일상투쟁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공단과 지역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가다갈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특히 27일 노조 정기대의원대회를 겨냥해 다듬어진 ‘안건자료’에 따르면 노조는 발암물질의 문제가 공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노조 틀을 넘는 사회적인 의제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망까지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 노동운동에 대한 존재가치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노동조합을 고립 말살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극복하는 돌파구를 만드는 계기로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조직된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올해 발암물질추방사업의 첫 단추로 발암물질 진단사업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된 현장조사만으로는 근거가 취약하다는 판단에서 진단사업을 더욱 확대해보겠다는 것. 올해의 성과를 모아 2011년(내년)까지는 금속노조 소속 모든 사업장의 발암물질을 진단해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고 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2년짜리 계획까지 제출하고 있다. 물론 대국민 사업으로 언론에 심각성을 널리 알려내 사회여론화하겠다는 세부계획도 있다.

올해 노조는 특히 이와 관련한 노조활동가 훈련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발암물질 진단사업을 근거로 전 조합원 교육을 조직하고, 발암물질이 발견될 경우 현장에서 실천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조합에서는 각종 교육선전 자료를 제작해 현장마다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 위에 보이는 '연기' 같은 것이 절삭유에서 발생되는 오일미스트(일종의 기름분진)이다. 이것을 오랫동안 마시면 노동자들에게 암이 올 수 있다.
또 노조는 직업성 암 피해자를 찾아 보상투쟁을 전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수집해 피해자의 보상 근거를 확립하기 위한 ‘직업성 암피해자 보상 추진위원회’를 전문가들로 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피해자를 찾기 위해 조합원뿐 아니라 퇴직조합원, 미조직노동자들까지 대상으로 조사사업과 캠페인 계획도 갖고 있다.

노조, 올해는 전조직적 발암물질 진단사업 집중

노조의 배 실장은 “이 사업의 실질적 성과로 중장기적으로는 건강권과 관련된 산별협약과 법제도 개선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된 노사간의 협약에는 발암물질 대체 추진, 환기시설 설치, 발암물질 노출기준 강화 등의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이 사업은 노조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회단체와 연대도 필수다. 이를 통해 정부를 상대로 발암물질 목록작성을 촉구하고, 발암물질 대체를 법으로 강제하게 하는 등의 법제도 개선 투쟁까지 나아가야 하기 때문. 올 한해 특별한 노조 사업으로 발암물질 추방투쟁의 첫단추를 꿰어보자는 계획, 이 계획의 승인이 이뤄질 27일 대의원대회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