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청문회가 열렸다. 고의부도와 정리해고로 이어진 2008년 쌍용차에서 회계조작이 의심된다는 점은 청문회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손상차손을 통해 기업의 자산가치를 0으로 만들어서 정리해고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인력산정 근거가 된 HPV(대당조립시간) 지수가 사실은 엉터리였고, M/H를 지수화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다시 불거진 쌍용차의 2008년

민주통합당 김경업 의원실에서는 2008년 당시 쌍용차에서는 HPV가 제대로 측정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2008년 당시 삼정KPMG가 작성한 ‘회사정상화방안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쌍용자동차는 동종업체에 비해 HPV가 높은 수준으로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되어 생산 부분의 문제점 개선을 통한 생산역량 강화가 필요함”. 이를 근거로 삼정KPMG에서는 2,646명이라는 인원을 정리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HPV 지수가 거짓이거나 가짜라면 정리해고 인원을 산정한 근거는 없어진다.

이번 쌍용차 청문회가 노동자들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사측과 회계법인들이 생산성을 제대로 측정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근거를 어렵게 댈 것 없이 쌍용차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HPV와 맨아워(M/H)가 동일하다. 산출방식이 다른 두 지표가 같다는 것은 자본 스스로 둘을 혼동하고 혼용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제 노동자들은 사측(자본)에서 지표와 지수 등 숫자로 된 어떤 수치를 들이대면서 생산성이 높다, 낮다 하는 것들에 대해 그 근거를 요구하고, 산출 과정과 내역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자본이 내미는 숫자에 우선 주눅이 들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배웠다.

HPV의 한계와 속셈

HPV는 말 그대로 대당 조립시간이다.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데 노동을 투입한 시간이 총 얼마인가를 측정한 지수이다. 이 지표는 미국의 한 컨설팅업체에서 개발했고, 매년 북미, 유럽 등에서 완성업체를 조사한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이 개념에 따르면, HPV는 총 생산대수를 실 노동시간의 총합으로 나누어 계산한다.(노동자들의 총투입시간 ÷ 총생산대수)야 한다. 이 때, 노동자들의 총투입시간은 작업자 개인 당 작업시간을 모두 합친 것이므로, {작업자들이 하는 일의 총 공수 * 실 작업시간}을 곱하여 산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일, 다시 말해 공정에 투입된 인원이 많으면 총 투입시간은 늘어난다. 반대로 투입 인원이 적고 자동화가 많이 되어 있으면 총투입시간은 줄어든다.

 

쌍용차

현대차

기아차

라인명

조립1팀

울산5_2라인

광주2라인

혼류생산 수

1차종

1차종

1차종

대당인원수

25.9

38.0

27.1

 

쌍용차

기아차

현대차

현대차

라인명

조립3팀

소하1라인

울산2_1라인

울산2_2라인

혼류생산 수

3차종(4차종)

2차종

2차종

2차종

대당인원수

34.9

33.6

27.8

27.1

 

쌍용차

현대차

라인명

조립4팀

울산5_1라인

혼류생산 수

2차종

2차종

대당인원수

54.0

46.5

<표> 현대ㆍ기아ㆍ쌍용자동차 RV차량, 고급승용차 1대 생산 시 필요인원 수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2007년 3분기

2008년 3분기

2007년 3분기

2008년 3분기

매출액(백만원)

21,882,146

23,359,140

2,378,610

2,013,116

종업원 수(명)

55,501

55,742

7,191

7,182

생산직 수(명)

32,103

32,132

5,108

5,086

1인당 매출액(종업원)

394.3

419.1

330.8

280.3

1인당 매출액(생산직)

681.6

727.0

465.7

395.8

<표> 인당 매출액 수준

여기에서 우리는 HPV 지수가 갖는 한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동화나 설비가 적은 곳이면 HPV가 올라가고, 많은 곳이면 HPV가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생산과 인원에 대한 자본의 대응을 보면, 자동화나 설비개선 없이도 사람을 적게 투입하고 노동강도나 작업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설비투자를 하면서 인원을 줄이는 방식은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주로 썼던 방식이고, 설비투자 없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은 쌍용차가 썼던 방식이다. 그러므로 당시 쌍용차 생산성이 타사에 비해 낮은 것은 자본측의 요인, 설비적 요인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타사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니었다. 노동 쪽에서 산정한 대당인원 수와 인당 매출액을 보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HPV 지수는 그 자체로 한계를 안고 있다. 서로 다른 차종과 차급을 생산하는 경우 HPV로 생산성을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생산운영실에서 2011년 11월 제작해서 배포한 『생산성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책자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HPV 지표의 한계점(27쪽)
1) 모델믹서를 반영하지 못한다.(대형차와 소형차는 투입 M/H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일 차급 외에는 1:1 비교가 불가능함.)
2) 임금/임율을 비교하지 못한다.(지역/국가 또는 근무형태에 따른 임금 수준을 고려하지 못한다.)
3) 외주화 및 자동화율을 반영하지 못한다.(공장간 비교시 자동화/외주화 비율을 동일한 조건으로 조정이 필요함.)  (*이 내용은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의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노동자를 배제하고 설비/기계 중심으로 생산체제를 가동하는 경우에는 HPV 지수가 낮아진다. 실제 HPV 관련 지수가 낮은 완성차업체는 도요타와 혼다와 같은 일본업체들이거나 GM 등 북미업체들이다. 누미 같은 미·일 합작회사의 HPV지수는 더 낮았다. 자동화와 모듈화율이 높은 편으로 평가받는 현대차 앨리바마 공장의 HPV 지수도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폭스바겐의 경우에는 카미나 누미와는 비교도 안 될 HPV 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누미는 문을 닫았고, 도요타는 판매감소로 경영적자까지 기록했다. GM은 국가 재정지원을 받고서야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었다. 반면, 폭스바겐은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HPV 지수가 낮다고 해서 더 좋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증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 출처: 하버보고서(2008년)

그러므로 HPV 지수는 어떤 차를 더 잘 만드냐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작업에 투입하는 작업자 수를 최대한 줄이고 자동화와 설비 개선을 지속하면 동일한 생산대수라 할지라도(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HPV를 낮출 수 있다. 반대로 동일한 인원을 투입하면서 자동화와 설비개선을 하지 않아도 생산대수를 늘이는 방법으로도 HPV를 낮출 수 있다. 결국 HPV 지수는 린 생산방식/일본식 생산방식을 최고 혹은 최선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효율화에 맞서는 노동의 대안 찾기

마지막으로 몇 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우선, HPV는 한국 생산 현장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 완성차 생산현장에서는 미국에서처럼 노사가 개별 노동자 직무에 관해 상세한 합의를 하지 않는다. 유럽처럼 노사가 정한 어떤 기준으로 작업표준시간을 산정하지도 않는다. 작업표준도, 작업표준시간도, 그리고 심지어 M/H도 생산 현장의 현실과 맞지 않다. 그래서 자본에서는 ‘표준’과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동에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표준’과 ‘기준’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더 바람직한 것은 노동이 표준과 기준을 만들테니 자본은 그것을 수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개별 노동자들에게 직무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관리자나 사측이 함부로 작업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고),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사측이 만들고 노동 쪽이 도장 찍는 방식의 합의가 아니라 노동이 모든 부분에서 다 참여하고 판단해서 사측과 함께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하는 유럽의 방식을 수용하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어떤 표준과 기준도 노동이 수용하거나 준수할 이유는 없다. 다음으로, 생산성은 자본주의 발전단계와 생산방식, 그리고 경제 상황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노동의 대응 역시 보다 전략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위기가 오면 생산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덜 팔리니까 적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계화, 자동화, 표준화가 많이 되면 될수록 생산성은 올라간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 단계가 성숙되면 투입량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성은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까지 완성차 업체도 늘고, 공장도 늘고, 고용인원도 늘었다. 생산에 투입하는 두 요소(즉, 자본과 노동)을 모두 늘려도 생산성은 높아졌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공급과잉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경제위기로 판매량도 정체되기 시작했다. 완성차 업체 수도, 공장 수도, 고용인원도 줄였다.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 모두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자본이 내민 카드는 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구성방식, 즉 기술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었다. 투입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완성차업체들이 맨아워니 UPH/JPH이니 하는 지표들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이다.

한국 완성차업계에는 뜻하는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나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을 비롯한 인도, 브라질, 러시아 시장이 개방되고 동유럽도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GM과 도요타가 위기를 맞으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도 판매가 늘어났다. 석유값이 올라 소형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 몫 했다. 이 덕분에 현대차와 기아차, 그리고 한국GM에서는 자동화와 설비 개선도 하면서 고용인원도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본은 설비개선도 돈이고 고용인원도 돈이다. 그래서 설비투자도 최소화하고, 고용도 최소화하는 방식을 골몰했다. 그 결과 기존 공장을 최대한 활용해서 효율화하는 한편 비정규직 고용을 최대한 늘리는 방식을 찾아냈다. 공장을 최대한 효율화하려는 자본의 의도는 바로 HPV와 편성효율(부하율)로 표현되었다(쌍용차는 이 시점에서 상해기차가 인수하면서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처럼 M/H, UPH, HPV, 편성효율은 생산요소(자본과 노동)의 투입보다는 기술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의 의지를 담고 있다. 노동이 이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화를 하지 말라는 것은 생산력 발전을 거부하는 것일 수 있으며, 고용안정을 말하는 것은 정규직 중심의 고용 안정으로 제한될 수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노동시간단축, 신규채용 확대, 작업장 공동결정 제도 등을 요구하면서 노동의 연대를 확장하고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높은 생산력(자동화, 모듈화, 설비화)의 시대에 맞는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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