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7일 저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울산공장 송전탑에 올랐다. 10년을 끌어온 불법파견 투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피맺힌 절규를 하며 20미터 철탑에 자신의 몸을 묶었다. 모든 것을 건 고공농성,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외침. 이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고공농성에 앞서 9월19일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국회 앞 투쟁을 시작했다. 국정감사 기간 정몽구 회장을 증인으로 세우고,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회 해고자들은 국회와 새누리당사, 대법원, 검찰청을 오가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투쟁이 벌써 한 달을 넘었다. 10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서 현대차아산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 10월17일 국회 정문에서 상경투쟁중인 현대차아산 비정규직지회 한 조합원이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동준

올해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 4조7천억원의 6%면 현대차에서 하청으로 일하는 노동자 8천 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은 커녕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의 불법파견, 부당해고 판정을 무시하고 이행강제금 13억 6천여 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국감 자리에는 실질적 권한을 가진 정몽구 회장이 아닌 김억조 부회장이 나와 기존 회사 입장만 되풀이 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법이 있기는 한가”

국감을 지켜본 노동자들은 실망만 남았다고 했다. “도대체 이 나라가 법치주의 국가가 맞는지 모르겠다. 없는 사람들, 노동자들에게만 가혹한 법이다.” 임종훈 조합원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하는데 살인을 저지른 현대차는 그냥 몇 억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현대차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그런데 중노위도 회사가 내는 벌금만 받고 당사자인 우리 해고자들의 생존을 위한 대책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차도 문제지만 이를 방조하는 정부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 모두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1년 8개월째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해고 투쟁을 벌이고 있다. 대법원에서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은 최병승 조합원 역시 마찬가지다. 홍승렬 조합원은 “오늘 아침에 비 맞으면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대법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은 상황에 이렇게 투쟁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 서글프더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해고자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법 좀 지키고 살자는 것”이라며 “최소한 대법 판결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도대체 이 나라가 법치주의 국가가 맞는지 모르겠다. 없는 사람들, 노동자들에게만 가혹한 법이다.” 임종훈 조합원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하는데 살인을 저지른 현대차는 그냥 몇 억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임종훈 조합원(사진 오른쪽)이 박창식 충남지부장과 국회 앞 농성 비닐천막 안에서 현안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동준

조합원들은 지난 8월 회사가 제시했던 ‘3천 명 신규채용안’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임 조합원은 “대법원 판결은 불법파견을 철폐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지 신규채용 하라는 게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임 조합원은 “3천명 신규채용은 정규직 퇴직하는 인원을 현재 일하는 비정규직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라며 “또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가 제시안을 낸 뒤 뉴스를 본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비정규직 문제 다 해결된 것 아니냐고 연락이 왔다. 안타까웠다. 불법파견은 인정하지 않고 비정규직은 더 늘리겠다는 회사의 꼼수를 제대로 알릴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노동자 하나라는 것 보여주자”

현대차그룹을 향한 투쟁을 위해 원하청의 진정한 연대투쟁과 금속노조의 역할도 주문했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구호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같은 노동자 안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느낌이다”라는 토로가 이어진다. 한 조합원은 “비정규직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노동자가 뭉치지 못한 이유도 있다”며 “제대로 뭉쳐서 이 싸움 하지 않으면 정규직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10월17일 현대차아산 비정규직지회 국회 앞 농성장에 울산과 전주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찾아왔다. 세 지회 노동자들이 법을 어기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처벌을 요구하며 문화제를 벌이고 있다. 신동준

임종훈 조합원은 “이번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존폐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났다. 이렇게 명분 있는 싸움이 또 어디 있느냐. 이번 싸움마저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 임 조합원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승리하는 투쟁의 전망을 세우고 앞서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노동자를 정말 하나로 뭉치는 것, 그것이 민주노총의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10월27일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10만 촛불대행진’을 시작으로 전개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기대를 보이기도 한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수많은 노동자, 비정규직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반기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임 조합원은 “울산, 아산, 전주 세 지회가 공동투쟁본부를 꾸리고, 힘들지만 현장 조합원들을 다시 추스르고 있다”며 “절대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로 모이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날도 추워지지만 서울 투쟁팀도 꿋꿋이 버틸 생각입니다. 국회 앞으로 많이들 찾아오세요.” 상경투쟁으로, 울산 고공농성으로, 그리고 각 공장에서 벌이는 현장투쟁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하반기 투쟁이 시작됐다. 그 투쟁에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를 모아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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