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등의 시즌이 되면 평소 취향과 별개로 스포츠를 보는 게 즐겁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부상 등을 이겨내며 묵묵히 정진해온 선수들의 땀방울이 승리의 순간 관중들의 함성과 어우러져 빛나는 모습이나, 아깝게 승리를 놓친 선수들의 두 눈 사이를 비집고 나와 흐르는 굵은 눈물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국가 간 경쟁이 덧붙으면 스포츠의 극성은 더욱 커진다. 유니폼에 국기를 달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인식하는 탓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 정신의 존중을 위해 국가별 종합순위를 작성하지 않고 있음에도, 언론은 금메달 개수를 중심으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며 애국심을 부채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쟁을 보면서 관중(시청자)들은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며 신음하는 저마다의 현실을 잊는다.

▲ 7월27일 무장한 용역에게 폭행 당한 에스제이엠지회 조합원이 피를 흘리고 있다. 트위터 @dongchimiheang 인용

언론도 이런 모습을 부추긴다. 평소에도 크게 괜찮은 모습은 아니지만, 대형 스포츠 이벤트 시즌만 되면 의자놀이 와중 미처 의자에 앉지 못한 아이를 가혹하게 내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 이 사회에서 벌어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듯한 태도를 앞장서 보이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과 용역들의 올림픽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7월 27일 생산 외주화 등의 이유로 노사갈등을 빚고 있던 자동차 부품업체 SJM 안산공장에선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 200여명이 회사의 직장폐쇄 조치에 맞서 농성을 벌이던 노조원 150여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만도기계 평택·문막·익산공장에서도 같은 날 오후 1천명이 넘는 용역이 들어와 조합원의 출입을 막고 사측에선 공장폐쇄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상파 TV 메인뉴스에서 이와 관련한 첫 소식이 전해진 때는 나흘 뒤인 7월 31일이었다.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아닌 SBS에서였고, 저축은행과 관련해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의 원내대표가 이례적으로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는 소식과 올림픽 관련 주요 소식들 뒤에 배치된 16번째 리포트였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9>는 각각 8월 1일과 8월 3일, 31번째 리포트와 29번째 리포트에서 처음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뉴스 시작 30분여가 지난 뒤, 주요하지 않게 해당 소식을 다뤘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SJM 노조원들에 대한 용역들의 폭행을 방관한 경찰에 대한 감사 소식이 중심이었다.

▲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시킨 가운데, 8월6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결의대회를 마친뒤 김재철 사장 면담과 성명서 전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지난 1970년 협회가 설립된 이후 최초로 드라마, 예능, 교양, 라디오 등 모든 부문 방송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PD수첩 작가들의 전원복귀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오마이뉴스>제공

런던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지난 7월 26일 MBC 사측은 노조의 파업을 지지했던 <PD수첩> 작가 6명 전원을 해고했다. 시청률 저하에 따른 분위기 쇄신을 위함이라는 게 사측이 내세운 해고의 이유다.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도 않았다. <PD수첩>의 새로운 작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작가들이 <PD수첩> 작가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면서 해당 사실이 해고의 당사자인 <PD수첩> 작가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올림픽 전날 <PD수첩> 작가들 전격 해고

<PD수첩> 작가들의 해고 철회를 위해 한국방송작가협회가 1962년 협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에 나서는 등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올림픽 열기 속 이 문제에 관심을 쏟는 TV 뉴스는 없다. 비정규직인 작가들을 2등 방송·언론인처럼 부리는 건 매한가지라 이 같은 외면의 기저엔 동업자 의식도 깔려있을 터다.

회사와 갈등을 빚던 노조원들이 용역에 의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경찰은 이 모습을 그냥 방관했다는 내용이나 직접 해고 통보조차 받지 못한 채 해고된 이들의 얘기는, 솔직히 즐겁지 않다. 내 몫의 일은 끝났지만 상사 퇴근 이전까진 퇴근할 생각조차 못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알아서 포기하도록 만드는 회사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삶의 질’ 따위의 얘긴 꺼낼 수조차 없는 우리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직면하게 하는 탓이다.

때문에 시청자들이 우리 주변의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쏟는 대신 경쟁에서 승리해 ‘세계 1위’라는 타이틀과 함께 금메달을 거머쥔 선수들에 열광하는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언론, 특히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은 다르다. 시청자(대중)의 관심사를 무시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자의 구미에 맞는 보도만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여주는 게 저널리즘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 등은 정해진 기간 동안의 이벤트, 말 그대로 축제일뿐이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잠시 눈을 감을 순 있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삶의 모습과 삶을 결정지을 권력들을 감시하며 문제를 짚어내는 게 저널리즘이고, 이는 축제 기간이라는 이유로 태만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니다. 작금의 즐거운 올림픽 보도가 즐거울 수 없는 이유다.

김세옥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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