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노동자들은 1996년부터 매년 4월 28일을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있다. 지난 1993년 4월 태국 인형공장에서 공장문이 잠긴 채 일하다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 188명을 추모하기 위함이다. 민주노총도 2002년부터 산재사망 추모행사를 매년 이날 열고 있고,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로 정해 산재 추방을 위한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맞춰 <금속노동자>는 4월 28일까지 매주 한편씩 네 번 관련한 현장 조합원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G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산재처리를 위해 상담이 들어와 산재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산재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연락이었다. 계속 일하고 싶은데 산재신청을 하면 잘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산재 신청이요? 그만둘 각오해야 합니다.” “작업환경 개선이요? 말도 못해요.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요.” 이 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상식처럼 통한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있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는 누구나 자기의 몸을 지킬 권리가 있다. 바로 노동자건강권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은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은 소리 없이 망가지고 있다.

하청업체는 직업병뿐 아니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까지 은폐한다. ‘산재 삼진아웃’, ‘업체고과점수’ 등으로 하청업체는 원청과 계약이 끊길지 몰라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원하청 관계는 산재를 구조적으로 은폐하게 만든다. 원청과 하청 모두 산재은폐의 공범인 셈이다.

하청 비정규직 산재가 은폐되는 이유

원청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정규직이 꺼리는 유해 고위험 작업에 아무런 개선 조치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운다. 올해 2월말~3월초 10일 사이에 금속노조 사업장내에서 3건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노후한 기계에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하니 사고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지게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도 고칠 시간이 없어 그냥 일한 경험이 있었다”는 비정규 활동가의 토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지역의 한 주물공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 작업장엔 아무런 개선도 없이 또 다른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배치돼 일하고 있다. 그 곳의 원청업체는 도대체 간이 얼마나 큰 걸까?
“안전교육이요?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쉬기에 바쁩니다.” 월 2시간 유급으로 보장된 안전교육시간, 1시간은 매주 관리자가 조회로 나누어 사용하고, 나머지 1시간은 그냥 쉰다고 한다. 정규직의 몇 배의 노동 강도로 일하니 몸은 두 배로 힘들고, 잠잘 시간, 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단 한 차례도 특수검진을 받은 적이 없어요.” 여수산업단지에서 용접 배관공으로 일하던 백혈병 노동자의 말이다. 이처럼 산안법의 적용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별받는다.

산안법 적용에서도 차별받는 비정규직

세계보건기구헌장엔 “조건에 따른 차별 없이 최상의 건강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의 하나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건강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낮은 임금으로 사용하면서 비정규직의 노동안전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더 나아가 산재를 은폐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산재는 근본적으로 원청이 모든 책임을 지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하청업체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하청업체의 열악한 경제력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원청업체가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돌아볼 지점이 있다. 같은 현장에서 더 위험하고 높은 강도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현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와 특수건강검진과 작업환경측정, 산재처리에서 조차 차별받는 현실에 눈감고 외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용기 있게 싸울 수 있게 연대하는 일, 현장에서 원청 자본의 책임을 묻고 투쟁하는 것은 결국 정규직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이 될 것이다.

권명숙 / 금속노조 인천지부 조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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