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가격이 날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높아가는 기름값만큼 한숨 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서민경제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유가 안정대책을 전혀 구사하지 않고 있다. 고작 나온 것이라곤 “두바이유 가격이 5영업일 이상 배럴당 130달러를 넘으면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다양한 조치를 할 예정이며, 5부제를 시행하거나 유류세 인하 검토가 포함된다”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립서비스뿐.

정부가 유가 안정에 이렇듯 소극적인 이유는 세수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시민모임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정부는 고유가로 유류세를 2010년보다 9.779억 원이나 더 걷었다. 세수 증가의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11.37%, 경유 +10.29%의 유류세 탄력세율을 인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유가 등락에 따라 최저 -30%에서 최고 +30%까지 유류세를 탄력적으로 운용해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탄력세율 운용 취지에도 어긋난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국책연구소인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유가급등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제목의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유류세 인하가 부유층에 6.3배 이상 큰 효과가 있어 반(反) 복지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해석하면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 같이 부과하는 간접세를 인하하면 부자에게 혜택을 더 많이 주게되니 높은 간접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말이다. 이는 소득대비 유류세 지출비중은 부자들보다 서민들이 훨씬 크다는 점과 부자들의 유류세 기회비용은 여유자금이지만 서민들에겐 직접 생존권과 관련된 지출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궤변이다.

▲ 휘발유 가격이 날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높아가는 기름값만큼 한숨 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유가 안정에 소극적인 이유는 세수 때문이다. <자료사진>

정부의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기조도 고유가는 물론이고 수입물가 상승추세에 큰 몫을 담당한다. 한국 환율정책은 역사적으로 그 정책적 수혜가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특성이 매우 강하다. 수출기업들에게 특혜를 준 이중환율 제도가 그러했고, 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지만 정부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환율을 ‘관리’하고 있는 것도 수출대기업을 위한 것이다. 환율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는 것 아니냐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러대비 환율추이를 비교해보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올 2월평균 환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낮아졌고, 태국의 경우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유독 한국만 2008년 1월 평균 918.11원을 훨씬 상회하는 1,120원대에 머물고 있다. 만약 현재 환율이 1,120원대가 아니라 918원이라면 원유는 물론이고 모든 수입품 가격을 지금보다 18% 정도 싸게 들여올 수 있다. 그만큼 국내 물가상승 요인을 줄일 수 있고, 서민경제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 외환 정책이 수출대기업들에게 큰 수혜를 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7년 기준 기업 전체 이윤에서 삼성 등 상위 4대 재벌그룹이 27%, 5~10대 재벌그룹이 14%, 11~30대 재벌이 9%, 상위 8대 은행이 13% 등 한국의 핵심 기업그룹들이 전체 이윤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석자료에 포함된 전체 기업체수 중에서 이들 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GDP 대비 수출비중이 50%를 상회하는 한국경제의 특성상 환율관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비용뿐만 아니라 그 편익도 사회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환율 관리 비용은 전 국민들이 부담하는데, 그 편익은 수출대기업에게만 돌아가 주주들과 경영진들의 성과급 잔치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정부 환율정책으로 수혜를 보고 있는 대기업들이 세금이든 사회적 기금이든 그 편익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높은 간접세로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수출대기업에게 부과하면 된다.

이한진 / 진보금융네트워크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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