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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노동에 대한 예의[산업의학통신-3] 진폐증과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사회
류현철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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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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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토요일 오전, 밭은기침 소리와 함께 노년의 노동자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뒤이어 들어왔다. 40년간 석공으로 일했다는 그는 보기와 달리 노년이 아닌 50대 초반. 단정한 용모의 여성은 딸이란다. 몇 년 전부터 조금만 힘든 일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더니 이제는 두세층 계단도 한 번에 오르기가 힘들다 했다. 밤이면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과 가슴통증으로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도 했다. 흑백의 엑스레이 음영으로 조영된, 밤마다 답답한 마음으로 부여잡았을 그의 가슴속은 좁쌀처럼 하얀 점들로 가득하다.

“진폐증이 있으시네요.”
딸과 아버지의 얼굴에 동시에 걱정과 원망이 스친다.
“언제부터 석공으로 일하셨지요?”
그의 얼굴에서 비치는 것은 하릴없는 무안스러움이다. 그는 뒤에 서있는 딸의 얼굴을 한 번 돌아보곤 말을 머뭇머뭇 한다.
“열 셋인가 넷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돌일을 배웠지요. 뭐 그때는 다들 그랬어요. 어려워서, 먹고 살자고….”

늘 돌가루 천지, 손바닥이 돌덩어리에 쩍쩍 달라붙는 겨울이면 바람막이 천막 안에서 눈앞이 자욱한 돌가루에 따가운 눈을 비비던 일터. 그 먼지들이 폐 속에 자리 잡아 자신의 호흡을 토막토막 끊어 놓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을 아무도 일러주지 않은 사회를 원망하는 것은 인지상정. 허나 중학교 진학을 대신해 선택한 자신의 일과 노동을 대하는 감정은 바로 그 노동으로 저리도 귀하고 어여쁘게 키워낸 딸 앞에서조차 자랑스러움 대신 무안스러움일까?

얼마 전 식당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와 임산부 고객과의 다툼이 인터넷에서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젊은 임산부와 중년여성 식당노동자 사이에 서비스의 친절도를 두고 다툼이 일어 난 것. 어떤 경우에라도 보호받아야할 모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 또 지나치게 깐깐하고 버릇없는 진상고객에 대해서 갑론을박했다.

   
▲ 늘 돌가루 천지, 손바닥이 돌덩어리에 쩍쩍 달라붙는 겨울이면 바람막이 천막 안에서 눈앞이 자욱한 돌가루에 따가운 눈을 비비던 일터. 그 먼지들이 폐 속에 자리 잡아 자신의 호흡을 토막토막 끊어 놓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을 아무도 일러주지 않은 사회를 원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료사진>
자세한 사정이야 잘 알 수 없는 바이지만 그 장면에서도 서비스노동자들의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의 일면은 드러난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감정에 거슬러 직장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표정을 구사하고 행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런 감정노동은 고객을 이미 백 년 전에 없어진 존재인 ‘왕’처럼 여기라는 표어가 난무하는 이상한 이 나라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이다.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은 자괴와 좌절감을 낳고 때로는 자신 혹은 타인을 향해 조절되지 않은 분노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 그 물건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노동,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일상과 여가를 안락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노동. 이런 온갖 노동과 노동하는 인간이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이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만이 존중받는 슬픈 시대.

두발로 걷던 짐승을 ‘인간’으로 만든 것이 노동이라 했다. 허나 인간이 되었으되 노동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어려운 세상. 존중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존중해야한다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사회의 정당한 평가와 인정이 필수적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그의 노동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진폐증은 우리나라에 흔히 탄광노동자들의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폐증이란 폐 속으로 들어가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정상적인 폐조직의 변형과 손상을 초래하는 수많은 종류의 먼지(분진)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 석면분진에 의한 석면폐증도 진폐증의 일종이다. 다양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고 각종 호흡기 감염에도 취약해지는 진폐증은 아직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광산이나 석재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금속노동자들에게서도 진폐증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조선소에서 샌드블라스팅 작업을 하는 노동자, 쇳물을 부어 제품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주물사를 다루는 노동자, 금속을 깎고 다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에 노출되는 노동자, 공장의 설비나 부속에서 석면이 사용된 경우에서도 진폐증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러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기침, 가래, 호흡곤란, 흉통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진폐와 관련한 직업병을 의심할 수 있으며 상담이 필요하다.

* 감정노동이란 말은 1970년대 말 사회학계에서 등장한 단어다.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조직이나 직장에서 요구되는 방식으로 표정을 구사하고 행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말한다. 감정노동은 주로 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요구된다.

감정노동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지속되다보면 감정의 부조화가 발생한다. 이것이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심한 자기비하나 좌절,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 등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게 심해지면 결국 직장을 떠나게 되거나 정신질환이 생기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까지 간다.

이 문제는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아질수록 심각해진다.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인력이 제공된다면 고객들에 대한 응대도 자연히 친절해지고 고객 불만사항에도 적절히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을 소위 ‘진상’고객들 탓만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 뒤에는 기업의 이윤추구 행태의 문제가 감춰져 있다. 기업은 매출신장이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서비스노동자들의 무조건적인 친절을 요구한다. 취약한 고용구조 속에서 고객 불만제기나 클레임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가해 서비스노동자들을 통제한다. 고객의 불합리한 요구나 불만제기에 대해 회사차원의 대응절차에 대한 분명한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무조건 일선 노동자들이 사과하도록 하거나 인격모독을 감수하면서 문제를 덮고 가도록 하는 상황이 ‘진상 고객’을 자꾸 만들어낸다.

류현철 / 의사, 녹색병원 산업의학과장

* 필자소개 : 현재 녹색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도 함께 하면서 금속노조와 함께 현장 작업환경 및 노동자 노동안전보건에 대해 다양하게 자문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작업현장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노동자 건강을 둘러싼 각종 이야기를 연재하여 전해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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