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붉게 타오르는 태양~ 우리네 가슴 속에 피는 희망~”
“시커먼 굴뚝에 가려진 세상~ 조금만 더 전진하면 내일은 해방~”

9일 저녁 기아차 광주공장 문예패 동아리 방에서 흥겨운 노동가요가 울려 퍼진다.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소속 노래패 <새벽빛> 패원들이 연습 중인 ‘내일은 해방’이란 노래다. 노래 부르는 패원들도 가락에 맞춰 들썩들썩. 노랫가락 한 소절 한 소절마다 흥겨우면서도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해방을 향해 신명나게 전진하는 느낌 그대로다.

▲ 노래패 새벽빛 패원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동가요 '내일은 해방'을 연습하고 있다. 김상민
“역사가 오래된 노래패인데 실력이 그저 그렇죠?” 새벽빛 최고참인 박오열 조합원이 느닷없이 겸손을 떤다. 박 조합원은 노래패 활동뿐 아니라 각종 노조 활동까지 열심히 하다 보니 노래실력 키울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패원들 열정에 대한 은근한 자랑이다.

<새벽빛> 패원들은 굳이 노래 공연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각종 노조 행사와 연대투쟁에 발 벗고 나선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투쟁 현장에서 맨 앞에 나서 싸우는 ‘선봉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 동료들로부터 “노래패가 아니라 깡패 아니냐”는 말까지 듣는다고.

노래패가 ‘깡패’로 불리는 이유

‘깡패’ 말고 또 하나 재밌는 별명이 ‘술패’다. 술 마셨다 하면 해 뜰 때까지 마시는 전통이 있어서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과거 아시아자동차라는 회사였는데, 97년 부도 위기를 맞는다.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노래패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진 기수별로 20명씩 가입할 정도로 잘나갔다.

▲ 노래패 새벽빛 패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노동가요를 연습하고 있다. 김상민
이때부터 <새벽빛>은 약 5년간 회원 두 명만 남아 명맥을 유지했다. 당시 두 명 중 한 명이던 최경근 조합원은 “새벽빛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사람들 만나 ‘해를 건지면서’ 술을 마셨다”고 회상한다. 아침 해를 볼 때까지 술잔 기울이며 <새벽빛> 가입을 설득했다는 얘기다. 김홍국 <새벽빛> 패장은 “당시 선배들의 열정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새벽빛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패원들은 “그렇게 힘든 시기를 극복하면서 뭉치다 보니 다른 모임보다 정이 끈끈한 게 우리 동아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성윤 조합원은 “우리 패원들 정년퇴직해 공장 일 그만두더라도 노래패 모임은 계속할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정년퇴직해도 노래패는 계속”

이날 연습모임. <새벽빛>은 노래연습에 앞서 돌아가며 자기 생활을 동료들에게 보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터나 가정에 별 일은 없는지, 최근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심지어 부부싸움 했던 얘기까지 하나하나 다 털어 놓는다. 김영두 조합원은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며 동지애를 높이기 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 9일 저녁 노래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기아차 광주 노래패 새벽빛 패원들. 왼쪽부터 김홍국 패장, 윤성윤, 최경근, 김영두, 박오열 조합원이다. 김상민
그런데 아무래도 노래패다보니 노래 자체에 대한 욕심도 좀 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김 패장은 “자체 무대를 만들만큼 노래패 역량을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집회나 행사 때 자주 공연에 나서긴 하지만, 아직까지 공연 자체를 목적으로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새벽빛 활동에서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연대’다. “지역에 어렵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노래 공연 하려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뿌듯한 거죠.” 김영두 조합원이 “노래 역량을 키우는 가장 큰 이유도 동지들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한다.

▲ 새벽빛 패원들이 노래 연습에 앞서 일 주일간 각자의 생활을 동료들에게 보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김상민
여기엔 새벽빛 패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삶의 원칙이 있다. “우리가 부르는 노동가요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해방 세상, 우리가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자세가 다 담겨 있어요. 최소한 가사에 나오는 세상을 꿈꾸며, 가사처럼 살아야 노동가요 부르는 노래일꾼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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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패 새벽빛은?

<새벽빛>은 기아차동자지부 광주지회 소속 유일한 노래패다. 현재 패원은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젊은 패원은 33살, 가장 나이 많은 패원은 47살이다. 특별한 공연이 없으면 주 1회 저녁 6시에 모여 약 1시간 반 가량 노래연습을 한다. 주간조에서 일하는 패원은 이 모임을 위해 연장근무를 빼야 하며, 야간조는 조금 일찍 회사에 나와 모임을 끝낸 후 일하러 간다. <새벽빛>은 아시아자동차 시절이던 지난 1990년 노조 민주화에 발맞춰 창립했다.

* 공장 출퇴근 길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계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모임. 바로 우리 지역과 현장에 있는 동아리들입니다. ‘우리 동아리를 소개합니다’는 <금속노동자>가 지역과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각종 동아리를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에 자랑하고 싶은 동아리모임이 있으면 금속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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