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붉게 타오르는 태양~ 우리네 가슴 속에 피는 희망~”
“시커먼 굴뚝에 가려진 세상~ 조금만 더 전진하면 내일은 해방~”
9일 저녁 기아차 광주공장 문예패 동아리 방에서 흥겨운 노동가요가 울려 퍼진다.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소속 노래패 <새벽빛> 패원들이 연습 중인 ‘내일은 해방’이란 노래다. 노래 부르는 패원들도 가락에 맞춰 들썩들썩. 노랫가락 한 소절 한 소절마다 흥겨우면서도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해방을 향해 신명나게 전진하는 느낌 그대로다.
“역사가 오래된 노래패인데 실력이 그저 그렇죠?” 새벽빛 최고참인 박오열 조합원이 느닷없이 겸손을 떤다. 박 조합원은 노래패 활동뿐 아니라 각종 노조 활동까지 열심히 하다 보니 노래실력 키울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패원들 열정에 대한 은근한 자랑이다.<새벽빛> 패원들은 굳이 노래 공연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각종 노조 행사와 연대투쟁에 발 벗고 나선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투쟁 현장에서 맨 앞에 나서 싸우는 ‘선봉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 동료들로부터 “노래패가 아니라 깡패 아니냐”는 말까지 듣는다고.
노래패가 ‘깡패’로 불리는 이유
‘깡패’ 말고 또 하나 재밌는 별명이 ‘술패’다. 술 마셨다 하면 해 뜰 때까지 마시는 전통이 있어서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과거 아시아자동차라는 회사였는데, 97년 부도 위기를 맞는다.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노래패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진 기수별로 20명씩 가입할 정도로 잘나갔다.
이때부터 <새벽빛>은 약 5년간 회원 두 명만 남아 명맥을 유지했다. 당시 두 명 중 한 명이던 최경근 조합원은 “새벽빛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사람들 만나 ‘해를 건지면서’ 술을 마셨다”고 회상한다. 아침 해를 볼 때까지 술잔 기울이며 <새벽빛> 가입을 설득했다는 얘기다. 김홍국 <새벽빛> 패장은 “당시 선배들의 열정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새벽빛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패원들은 “그렇게 힘든 시기를 극복하면서 뭉치다 보니 다른 모임보다 정이 끈끈한 게 우리 동아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성윤 조합원은 “우리 패원들 정년퇴직해 공장 일 그만두더라도 노래패 모임은 계속할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정년퇴직해도 노래패는 계속”
이날 연습모임. <새벽빛>은 노래연습에 앞서 돌아가며 자기 생활을 동료들에게 보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터나 가정에 별 일은 없는지, 최근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심지어 부부싸움 했던 얘기까지 하나하나 다 털어 놓는다. 김영두 조합원은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며 동지애를 높이기 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노래패다보니 노래 자체에 대한 욕심도 좀 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김 패장은 “자체 무대를 만들만큼 노래패 역량을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집회나 행사 때 자주 공연에 나서긴 하지만, 아직까지 공연 자체를 목적으로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하지만 그래도 새벽빛 활동에서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연대’다. “지역에 어렵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노래 공연 하려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뿌듯한 거죠.” 김영두 조합원이 “노래 역량을 키우는 가장 큰 이유도 동지들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한다.
여기엔 새벽빛 패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삶의 원칙이 있다. “우리가 부르는 노동가요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해방 세상, 우리가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자세가 다 담겨 있어요. 최소한 가사에 나오는 세상을 꿈꾸며, 가사처럼 살아야 노동가요 부르는 노래일꾼 아니겠어요?”* * * * * * * *
노래패 새벽빛은?
<새벽빛>은 기아차동자지부 광주지회 소속 유일한 노래패다. 현재 패원은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젊은 패원은 33살, 가장 나이 많은 패원은 47살이다. 특별한 공연이 없으면 주 1회 저녁 6시에 모여 약 1시간 반 가량 노래연습을 한다. 주간조에서 일하는 패원은 이 모임을 위해 연장근무를 빼야 하며, 야간조는 조금 일찍 회사에 나와 모임을 끝낸 후 일하러 간다. <새벽빛>은 아시아자동차 시절이던 지난 1990년 노조 민주화에 발맞춰 창립했다.
* 공장 출퇴근 길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계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모임. 바로 우리 지역과 현장에 있는 동아리들입니다. ‘우리 동아리를 소개합니다’는 <금속노동자>가 지역과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각종 동아리를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에 자랑하고 싶은 동아리모임이 있으면 금속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