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 중 여성이 많은 곳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경주지부 현대아이에이치엘(현대IHL)지회. 조합원 3백 여 명 중 2백 여 명이 여성조합원인 곳이다. 자동차 램프를 만드는 이 곳은 여성 노동자들이 제품 조립을 담당하고 있다. 여성들이 많아 소소한 재미도 있고 수다 떨 상대가 많아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속 시끄러울 일도 많다고 얘기하는 이 곳 노동자들의 얘기 한 번 들어보자.

아이에이치엘지회(지회장 윤병한)는 여성 복지가 잘 된 사업장 중 손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가장 걱정스러운 게 임신과 출산이잖아요. 다른 사업장은 임신하면 눈치 보여 그만두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임신, 출산해도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회사다.” 지회의 김규정 대의원의 설명이다.

여성복지 잘 된 곳

이곳의 여성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한다. 하지만 임신한 조합원은 주간조 근무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대의원은 “임산부들은 별도 라인을 구성해 힘든 작업은 하지 않고 물량도 다른 라인과 달리 조절해 작업한다”고 말한다. 출산휴가 1년에 생리휴가, 제사휴가 등 휴가도 잘 보장되는 편이다. “70명 정도 들어가 쉴 수 있는 휴게실이 만들어져 있고 생리대나 비데 설치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 윤병한 지회장은 “다른 사업장에 여성 복지 관련해서 좋은 내용이 있으면 좀 추천해달라”고 말한다. 올 해 단체협약을 갱신하는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인원이 적든 많든 여성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당연한 일이 이뤄지지 않는 곳이 더 많은 지금, 늘 여성노동자들에게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이 곳 지회의 활동에 눈길이 간다. 아이에이치엘지회 여성간부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동준
물론 아직도 개선할 것은 많다. 윤 지회장은 “다른 곳에 여성 복지 관련해서 좋은 내용이 있으면 좀 추천해달라”고 말한다. 올 해 단체협약을 갱신하는데 참고하기 위해서란다. 지회 조합원들은 작은 건의사항이 있어도 늘 지회로 달려오고 간부들을 찾는다. 지회는 이런 건의사항들을 수시로 회사에 제기해 개선해나간다. 인원이 적든 많든 여성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이뤄지지 않는 곳이 더 많은 지금, 이 곳 지회의 활동에 눈길이 간다.

이 곳 여성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충은 어떤걸까. 이들은 무엇보다 주야 맞교대 근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홍다혜 대의원은 “아무래도 야간작업이 제일 힘들어요. 다들 좀 쉬면서 하는 줄 아는데 2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거의 꼬박 10시간을 서서 일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주야 맞교대 근무 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생식기 질환도 많이 호소한다. 생리불순도 많고 없던 생리통까지 생겼다.

“여성복지 잘 된 곳 추천해달라”

교대 근무 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도 문제다. “12시간 일하고 회사가 시내와 떨어져 있다보니 출퇴근에 두 시간씩 걸리고.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고 나오는 것 같다”는 이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은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하고, 결혼한 이들은 살림은 거의 손 놨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맞벌이 하더라도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이를 다 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대의원은 “주말 특근까지 하고나면 개인 시간은 정말 없고 집에가서도 살림 하기가 쉽지 않다”며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부모님이 봐주시거나 그런 사정이 안되면 남편 그만두게 할 수는 없으니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한다.

▲ 김규정 대의원은 “임산부들은 별도로 라인을 구성해 힘든 작업은 하지 않고 물량도 다른 라인과 달리 조절해서 작업한다”고 말한다. 출산휴가 1년에 생리휴가, 제사휴가 등 휴가도 잘 보장되는 편이란다. “휴게실이 70명 정도가 들어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고, 생리대나 비데 설치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신동준
장시간 노동에 몸도 성할 날 없다. “대부분이 30대 젊은 여성들인데 무릎 관절 나이는 40대, 몸 나이로는 50대 씩 할 걸요.” 몇 년 새에 다들 골병을 얻었단다. “밖에서 보기에는 연봉도 나름 높은 회사 다닌다고 좋겠다고 하죠. 일등 신부감이라고. 근데 결혼해보면 다들 근골격계 질병 하나씩은 갖고 있고 병원에 갖다 주는 돈이 더 많은 상황”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한다. 긴 시간 서서 작업을 해야하고 갈수록 다루는 제품들도 무거워지다보니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 덕에 대부분이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목 디스크에 척추가 휘어서 치료를 받기까지 한단다. “일기예보도 볼 필요가 없다. 몸 좀 쑤시다 싶으면 바로 비가 오니까.”

장시간 맞교대근무의 고통

인터뷰 때 만난 여성부장과 여성 대의원 세 명은 모두 지난 해에 처음으로 노조 간부를 맡았다. 요즘 이들은 일하랴, 집안일 하랴, 시간 쪼개가면 지회 활동에 조합원들 건의사항 처리하러 뛰어다니기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두 세 명이 같이 작업하는데 계속 빠지면 다른 조합원들이 싫어하잖아요. 노조 일 한다고 농땡이 부린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갖지 않게 해야하고.” 장홍임 여성부장이 더 열심히 뛰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조합이 힘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두 세 명이 같이 작업하는데 계속 빠지면 다른 조합원들이 싫어하잖아요. 노조 일 한다고 농땡이 부린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갖지 않게 해야하고.” 장홍임 여성부장이 더 열심히 뛰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조합이 힘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신동준
김규정 대의원은 “아무리 복지가 잘 돼있다 해도 사소한 거 하나라도 여성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게 사실”이라며 “현장에서 관리자들도 휴게시간 1~2분 어기는 것 가지고도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 대하는게 다르다”고 말한다. 김 대의원은 “노동조합이 힘이 없으면 노동자들이 권리 지키고 존중받으면서 일하기 힘들다. 여성들은 특히 남성들에게 치이다보니 더 그렇다”고 강조한다. 일상적인 고충을 노동조합을 찾아 토로하고, 그것을 바로 개선하도록 만드는 과정들도 조합원들이 지회를 믿게 되는 힘이라는 것.

“노조가 탄탄하게 힘을 가지고 있어야 여성노동자들도, 또 다른 노동자들도 더 존중받으면서 살죠. 그러기 위해서 조합원들이 노조에 관심갖고 참여해서 그 힘 키워야 하고요.” 이들의 좋은 기운을 전국에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

* 15만 금속노조 조합원 가운데 여성조합원이 대략 7천 여 명에 이릅니다. ‘금속’ 하면 남성노동자만의 조직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동자>가 전국을 돌며 여성노동자나 그 모임을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를 통해 금속노조 뼈대를 이루는 여성노동자나 모임을 발굴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본 기획은 계속 연재됩니다. 전국에 소개할만한 여성노동자나 그 모임이 있으면 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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