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강원도청 앞에 차려진 골프장 반대 농성장 말이다. 환경단체 활동가 두셋에다 젊은 편에 속하는 4~50대 몇 분을 제외하곤 다들 6~70대의 어르신들이 한겨울 내내 그 농성장에서 눈을 맞아가며 주무시고 밥을 해 드신지 얼마 뒤면 100일이 다 되어간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최문순 도지사가 있는 강원도청 앞에서.

신규 골프장 40여 개가 들어설 예정인 강원도 곳곳에서 골프장 반대싸움이 진행된 지 수년째다. 지난 해 초 치러 진 도지사 선거과정에서 골프장 반대 주민들은 최문순 도지사가 당선 이후 골프장 문제를 논의하는 도지사 직속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민관협의회에서 골프장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래서 최문순 지사 당선에 다같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게다가 다른 정치인도 아닌 언론개혁의 산증인, 늘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자였던 최문순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약속에 대해 단 한 점의 의구심도 없었다.

▲ 지난 해 초 치러 진 강원도지사 선거 때 최문순은 골프장 문제를 논의하는 도지사 직속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민관협의회에서 골프장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헛약속'이었다는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다. 사진=강원도 골프장 범대위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민관협의회 구성도 늦어졌지만, 민관협의회의 논의와 무관하게, 또 불법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골프장 인허가절차는 계속 진행됐다.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명백한 불법을 확인해도 주민들이 몇날며칠을 항의해야 겨우 단 며칠간 공사가 중단될 뿐이었다. 최문순 지사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한 해를 넘긴 도청 앞 농성장에 최문순 지사는 단 한번 지나가듯이 들러 사업자들을 만나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한다. 적어도 주민들에게 최문순 지사는 마구잡이로 골프장 사업을 허가해 준 지난 시절의 도지사와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바뀌어도 다를 바가 없다?

최근 탈핵운동을 벌여온 환경단체들은 민주통합당 당대표와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아홉 명 후보들에게 핵발전소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아홉 명 중 다섯 명의 후보(문성근, 박용진, 박지원, 이인영, 이학영)가 단계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답했고, 두 명의 후보(김부겸, 박영선)는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고 했으며, 나머지 두 명(한명숙, 이강래)은 핵발전소 축소나 확대에 관한 입장은 없고 단지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리고 며칠 전 한명숙 후보가 당대표로 새로 선출됐다. 한명숙 대표는 과거 총리시절 핵발전소 확대정책을 펼쳐온 분이다. 물론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당시 일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입장이라면 문제는 좀 다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현지 주민들의 피해상황이나 현장수습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문제, 무엇보다 이번 사고로 드러난 돌이킬 수 없는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라면, 핵발전소에 관한 질의에 재검토 수준으로 답변을 보내온 것은 조금 걱정스럽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새 대표. 한 대표는 과거 국무총리 시절 핵발전소 확대정책을 펼쳐온 이다.사진=민중의소리

나는 한명숙 대표와 민주통합당이 정권교체나 정치개혁에 크게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 특히나 환경문제에 관한한 민주통합당이나 한나라당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늘 환경은 ‘비상’이었으며, 정부나 정치인들이 대규모 국책개발사업과 토건사업에 거는 환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골프장 주민들에게 최문순 지사가 이전의 도지사들과 다를 바 없듯이, 핵발전소에 관한 한 한명숙 대표가 다른 당의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식의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정권교체가 중요하지만, 어떤 내용을 담은 정권교체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겪었다.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면 정권교체가 이뤄져도 우리는 늘 같은 싸움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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