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일이었다. 대구 달성공단 대동공업 노동자들이 지난 2002년 5월 부분파업을 시작할 때 싸움이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회사는 같은 해 8월 직장폐쇄에 돌입해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노동자들은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였다.

싸움이 길어졌지만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커피 배달, 쌀 배달, 주유소 아르바이트에 막노동까지 하며 172일을 버텼다. 당시 금속노조에서도 쌀과 양말을 모아 지원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결국 회사는 노조 요구를 수용키로 하고 직장폐쇄를 풀었다. 질긴 투쟁 끝에 얻은 성과였다.

지난 11일 대동공업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민 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당시 투쟁을 대동공업지회의 노동조합 역사에서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꼽는다. “끈질기게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죠. 노조 활동에 대한 보람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느꼈고요.”

▲ 백윤종 대동공업지회장은 대동공업지회 역사를 설명하면서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조합원들과 나누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상민

당시 투쟁은 임금인상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2001년 출범한 금속노조가 이듬해 전국적으로 벌인 산별교섭에 각 회사를 끌어내기 위한 ‘기본협약’ 쟁취 투쟁이었다. 그 해 금속노조는 기본협약에 문구 수정 없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임단협을 끝내지 않겠다며 전국적인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해 전국의 108곳 사용자들이 금속노조가 내민 ‘기본협약’을 수용했다. 금속노조는 이를 통해 2003년부터 금속중앙교섭 및 지역집단교섭을 펼치게 됐다. 이 역사적인 싸움의 정점에 대동공업 노동자들이 있었던 셈이다.

2002년 금속 싸움 정점에 섰던 이들

직장폐쇄 3개월 간 투쟁 동력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조합원들이 생계문제에 시달리게 되면 순식간에 조직력이 와해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 마련.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 많이 힘들긴 했지요. 하지만 조합원 분위기는 노조 믿고 무조건 끝까지 가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생계유지하면서도 투쟁을 이어간 거죠.” 최 수석부지회장이 당시를 떠올렸다.

노조에 대한 믿음? 말처럼 쉽게 생기는 게 아닐 텐데. 이 질문에 백윤종 지회장이 지회 역사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얘기는 2002년에서 10년 더 거슬러 92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대공공업노조는 총액임금제 분쇄투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총액임금제도는 노태우 정권이 노동자 1년 총액임금을 기준삼아 일정 비율 이하로 임금 인상률을 정하도록 강제한 제도였다.

당시 대부분 노조들이 부분파업 수준의 대응을 했던 데 반해, 대동공업노조는 회사의 직장폐쇄에 맞서 본관을 점거하는 등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해 강고한 투쟁을 벌였다. 대동공업노조를 중심으로 연대투쟁이 확산되자 노태우 정권은 노조가 파업을 벌인 지 25일 만에 소방차, 포크레인, 최루탄을 동원해 공장을 침탈했다.

92년 총액임금제 분쇄투쟁에도 앞장서

당시 노조 조합원 1백 여 명이 연행되고 7명이 구속되는 등 처절한 탄압을 겪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오히려 노조 단결력을 강화시켰다는 게 백 지회장의 설명이다. “당시 노조에는 수십 명의 조직차장, 쟁의차장들이 있었어요. 이들이 틈만 나면 현장을 순회하며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투쟁을 독려했죠.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노조의 단결력이 강해지자 구속 이후 해고됐던 조합원들도 3년 만에 모두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 최영민 대동공업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대동공업지회가 2002년 금속노조 기본협약 쟁취투쟁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험을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꼽고 있다. 김상민
조합원과 소통해 만들어진 단결력. 그렇게 노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승리한 역사를 몸으로 겪은 조합원들이었기에 10년이 지난 2002년 때도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조 간부라면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어요. 현장에 자꾸 가서 조합원들 만나야 해요.” 백 지회장은 거듭 강조한다. 근데 너무도 뻔한 얘기 아닌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백 지회장이 말하는 소통은 무작정 조합원들을 많이 만나 아무 얘기나 나누라는 게 아니다. 소통의 핵심은 ‘희망’이다. 노조와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조합원들과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2002년 투쟁도 92년 투쟁도 마찬가지였죠. 조합원들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싸웠기에 역사에 남을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겁니다.”

“조합원들과 희망을 얘기해야 승리”

92년과 2002년, 10년마다 큰 싸움을 벌여온 대동공업 노동자들. 올해가 바로 그 다음 10년째가 된 해다. 혹시 또 큰 투쟁이 벌어질까? 가능성이 있다. 이곳 조합원들은 작년 공격적인 직장폐쇄로 금속지회가 와해되다시피 한 이웃 사업장 상신브레이크 사례를 곁에서 목격했다. 대동공업 사측도 언제 칼을 빼들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긴장하는 게 조합원들 생각이다. 특히 2010년 대동공업엔 곽상철 전 쌍용차 생산부문장이 공동대표이사로 부임했다. 곽 전 생산부문장은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무책임한 좌파 세력이 쌍용차를 대정부 투쟁의 도화선으로 삼고 있다”며 강경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대동공업지회도 잘못하면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다. “조합원들이 이렇게 노조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대동공업지회가 건강하다는 증거 아닌가요. 이번 집행부 모토가 ‘현장과 소통으로 책임지는 승리와 투쟁’입니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과 소통하면서 답을 찾아야죠. 걱정보다는 희망을 더 크게 보고 있습니다. 대동공업지회 기풍과 역사가 땅 속으로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십 수 년 간 트랙터를 생산해 온 노동자들이어서 그럴까. 지회 간부들의 말에서 힘 좋은 트랙터만큼이나 우직한 힘이 느껴진다.

* 금속노조는 현재 2백40여개에 달하는 지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가 크건 작건, 역사가 길건 짧건 많은 곳들이 치열한 투쟁을 겪으면서 노동조합을 지키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우리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금속노동자>는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운동 과정에서 소중한 경험을 간직한 조합원들을 찾아 우리 지역, 우리 사업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세번째 편입니다. 본 기획은 계속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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