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옛 대우자동차)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들이 한 식구가 됐다. 지난 29일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훈 사무지회장은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이 이제야 하나가 됐다”며 “더 큰 힘이 모인 2012년 임단투를 기대하라”고 말한다.

한국지엠지부와 한국지엠사무지부로 따로 있던 두 조직의 통합 성사는 한국지엠에서 묵혀온 문제였다. 지부 대의원대회 안건 통과 여부에 대해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조직 통합 안건은 지부 대의원 만장일치로 지난 11월 29일 통과됐다. 이 지회장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점까지 결합된다면 더욱 강력한 노조가 될 수 있다고 생산직 조합원들 정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창훈 사무지회장이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있는 지부 역사 현황판 앞에서 투쟁을 상징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동준

“자본을 상대하는 데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자본인 지엠을 상대하는데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 현장의 투쟁력과 사무직의 정보력을 합쳐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 생존권을 지킬 수 있다.” 이 지회장은 이른바 ‘조직통합’이 필요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생산직과 사무직이 함께 뭉치면?

이곳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지난 2005년 금속노조에 가입해 일명 ‘사무지부’를 꾸렸으나 지금까지 생산직과 사무직은 별도의 조직이었다. “금속노조 가입 처음부터 회사는 사무지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우리는 온전히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이 지회장의 말이다. 그래서 현 사무지회는 상근 간부조차 한 명 없다. 지난 6년 동안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했기 때문. 그리고 노조활동을 하는 사무직 간부들은 해고 등 징계를 당하고 인사평가에서 불이익도 당해왔다. 이 지회장은 “태풍 앞의 촛불 같은 존재였고 회사와 (생산직인) 한국지엠지부가 맺은 단체협약 적용 등조차 논의되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 “자본을 상대하는 데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자본인 지엠을 상대하는데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 현장의 투쟁력과 사무직의 정보력을 합쳐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 생존권을 지킬 수 있다.” 이창훈 지회장은 이른바 ‘조직통합’이 필요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신동준

이 지회장은 기본적인 노조 활동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난 7월 별도의 복수노조 설립도 고민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단결할 때만 자본을 상대로 한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에 ‘1사 1조직’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11월과 12월 한국지엠지부와 사무지부 대의원대회를 각가 거치면서 조직통합이 성사된 것. 이 지회장은 이를 두고 “지엠 노동운동 역사에 남을만한 큰 성과”라고 밝혔다.

사무직들, 태풍 앞의 촛불 존재

사무직-생산직 노동자들이 단결을 위해 내딘 첫발. 하지만 내부적으로 과제가 많다. 서로 다른 업무를 하니 정서상 차이도 있고 오랜 시간 별로도 노조활동을 하면서 벌어진 차이와 불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2012년)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갱신 투쟁(임단투)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 지회장은 강조한다. “지난 10년 동안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단결해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하지만 말로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제대로 같이 싸움을 하고 실천했을 때 바뀔 수 있다.”

“조합비만 내고 아무것도 안하거나, 회사가 갈라치기 하면 금방 떨어져 나갈 집단이 사무직이라 생산직들이 우려할 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 지회장은 “우려를 깨기 위해서도 사무직 노동자 최소 1천 명을 모을 것”이라고 다짐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어 이 지회장은 “회사와 한국지엠지부가 맺어온 단체협약에서 조합원 범위를 확대해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 내년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한다.

▲ 이창훈 사무지회장은 “회사와 한국지엠지부가 맺어온 단체협약에서 조합원 범위를 확대해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 내년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한다. 신동준

“사무직 최소 1천 명 모을 것”

“내년에는 사무직 파업도 포함한 투쟁을 만들 생각입니다. 1사 1조직 통합 기운을 바탕으로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지회장은 올 해 금속노조 가입 이후 처음으로 인천 부평, 경남 창원, 전북 군산 등 한국지엠 전체 생산 공장을 돌며 사무직 노동자들도 만났다. 이들과 함께 이 지회장은 성과급 미지급과 차별인사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집회도 열었다. “예전에는 사무직 노조가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가졌고 노조 자체에 대한 불신도 있었지만 이제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조합원들의 기대와 신뢰가 생기고 있다.” 이 지회장은 내년 투쟁에 기대를 내비쳤다.

최근들어 자녀들을 앉혀두고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벌써 150편 째 이야기로 해주고 있다는 이 지회장. 세월이 흘러 손자가 생기면 더 많은 얘기를 해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년, 한국지엠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의 ‘단결투쟁’과 노동3권을 쟁취한 얘기도 손자들에게 해줄 잊지 못 할 얘기가 될 것이다.

* 한국지엠지부(지부장 민기)는 지난 11월 29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무직 노동자들과의 1사 1조직 통합을 위한 규정개정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로써 지부는 창원, 군산, 정비부품지회와 함께 사무지회를 두게 됐다. 이어 한국지엠사무지부도 12월 12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로 편제 변경과 규칙 개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재 지부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지부는 이후 회사에 단체협약 개정을 요구하고 조합원 범위를 사무직 노동자들까지 확대해 실질적인 통합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지부는 정기대대에 앞서 성명서를 내고 “생산직과 사무직의 차별은 없어져야 하며 사무직 노동자들의 정보와 역량까지 노동조합으로 모아 자본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높여야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편집자 주>

이 지회장이 말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현실
“인사철 때면 저와 얘기도 안하려고 했죠”

한국지엠 사무직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들은 금속노조 가입 전인 1999년 사무직노조 설립을 목표로 사무노동직장발전위원회(아래 사무노위)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때 사무노위에는 노무관리팀 사원들도 포함돼 있었고 이들은 노조 가입에 대한 나쁜 여론을 만들며 적극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어렵게 금속노조에 가입했지만 이후 상황도 좋지 않았고 2009년 유길종 전 사무지부장은 해고통보를 받기도 했다. 회사는 이전의 사무노위와 맺었던 합의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사무지부의 모든 활동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창훈 지회장은 “노조도 인정하지 않고 단협조차 없어 업무 끝난 새벽 1~2시까지 남아 노조 일 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곳의 노조간부들은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승진 누락, 임금 동결 등의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인사철 되면 동료들이 저와 얘기도 안하고 커피도 안 마시려고 했다. 불이익 당하니까. 그때 정말 힘들었다.” 이 지회장이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회사 탄압에도 노조를 지켜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사무지회 홈페이지에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당직 제도 문제있다”, “제발 돈 좀 제대로 주고 일 시켜라”, “차별적인 인사정책 더는 못 참겠다”, “식사시간 일방 변경 말도 안된다”, “강제 인력 배치 철회하라”.

이 지회장은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면 뭔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는 회사 인사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무직은 개별연봉제예요. 회사가 인사평가 하는데 평가라는 것이 객관적일 수 없지 않습니까. 회사는 공개적으로 무조건 충성해라, 보스에게 잘 보이라고 강조하죠. 결국 그런 사람들만 평가를 잘 받게 돼있는 상황이죠.”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사무직은 생산직노조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사는 올 8월과 연말에 지급키로 합의된 성과급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지회장은 ‘1사 1조직’ 통합이 사무직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에 나서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 말한다. “내년(2012) 반드시 회사 전체 사무직 6천 여 명이 생산직들과 함께 ‘나도 노동조합 조합원’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 이 지회장의 새해 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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