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5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비정규직파업투쟁 징계사건의 판정을 하고서 그 결과를 통보했다. 판정서는 나오지 않았다. 1공장, 3공장은 불법파견으로 인정하고, 2공장 등 나머지 공장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45명의 해고자 중 23명만 구제하고 나머지 해고자를 포함한 정직 등 징계자 400여명은 구제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울산공장에서 1공장, 3공장과 나머지 공장이 뭐가 달라서 이렇게 판정한다는 것인가. 엑센트의 문짝을 달면 불법파견이고 산타페의 문짝을 달면 도급이라는 것이라니. 그리고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1공장, 3공장 징계자는 전원 구제해야 마땅하지 왜 해고자 일부만 구제한다는 것인지. 사내하청업체의 징계가 원청 현대자동차의 징계로 인정된다고 본 것이겠는데 이것이 말이 되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울산공장 사내하청근로를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이미 2007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아산공장 사내하청근로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아산공장사건의 항소심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했고, 그 뒤 올해 초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위 울산공장사건에 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최근 동일한 현대자동차비정규직파업투쟁의 아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사건에서 충남지노위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약 200명 징계자의 거의 대부분을 구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산공장사건에 관해 부산지노위가 판정을 한 것이다.

말이 안되는 12.15 부산지노위 판정

불법파견이어서 원청의 근로자로 인정된다면 현대자동차의 취업규칙에 따른 징계절차를 거쳐야 했다. 적어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1공장, 3공장 비정규직노동자는 현대자동차 근로자인 것인데 사용자도 아닌 사내하청업체가 제멋대로 징계한 것이 된다. 이건 징계처분으로서 유효할 수 없다. 아직 판정서가 나오지 않아서 판정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부산지노위 판정결과는 황당하기만 하다. 도대체 판정서를 통해 어떤 궤변을 늘어놓을지 알 수가 없다. 과연 부산지노위는 무슨 사실왜곡과 가당치 않은 이유를 들어 2공장 등을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불법파견 인정된 공장에서 어떻게 수백명의 징계자 모두가 아닌 해고자 중 일부만 구제된다고 판정서에서 판정이유를 적시할 것인가. 이제 현대자동차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황당한 판정을 통보받고서 궤변인 판정서까지 송달받게 됐다.


도대체 어쩌다 이 나라 노동자들은 오늘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일까. 판정결과를 통보받고서 현대자동차울산공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판정에 항의하여 부산지노위 앞에서 집회를 했다. 노동위원회는 법원이 존재하는데도 사용자의 해고 등 불이익처분으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하겠다고 설치된 국가기관이다. 그렇다면 법원보다 노동자권리구제에 유익해야 존재이유가 있다. 그저 신속하게 판정받을 수 있다고 노동위원회제도가 합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인지대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노동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

노동위원회가 왜 필요한가

단순히 법적 잣대로만 판단하는 법원과는 달리 구체적인 노동현장의 실태를 살펴서 사용자로부터 해고 등 불이익처분을 당하는 노동자를 구제하기 위해서 노동위원회는 존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원이 존재하는데 그에 선행하는 노동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을 둘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시간과 비용만 소요될 뿐이다. 노동자에겐 고통일 뿐이고,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서는 폐지되어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판정기능이 도입된 이후 그 동안 사용자로부터 해고 등 불이익처분을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했었다. 그 판정결과가 노동자의 권리구제에 유용했다면 오늘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를 심판하자고 외치대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가 아닌 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집회하는 일을 없을 것이다.

오늘 노동자 대부분은 노동위원회가 법원보다 사용자의 해고 등 불이익처분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해고 당했으니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법원은 변호사 선임료에 인지대 등 비용이 드니 그 보다 적은 비용으로 구제받기 위해서, 빨리 판단을 받아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노동사건에 관해 노동자 위해 비용 적게 들면서 신속하게 판결하는 법원이 있다면 노동위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필자는 노동위원회를 폐지하고 노동법원을 도입하자고 주장해왔다.

노동위 폐지하고 노동법원 도입하자

노무현정권의 사개추위에서는 노동법원법안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노동법원이 단순히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현재의 법원제도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노동위원회 대신 법원이 노동자권리구제에 미흡하다고 노동자의 비난받게 될 것이다. 공익위원 대신 판사가 판결한다고 해서 노동자권리가 보호될 수 없다. 노동자권리 보호를 위한 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이 설치되어야 한다. 법원의 운영, 판사의 임면, 재판진행 등 노동법원의 조직 운영과 재판에서 노동자(대표)가 참여해야 한다. 노동법원이 노동자권리구제를 위해서 존재하는 법원임을 명확히 법률로 선언해야 한다.

▲ 필자
그러고서 이를 위한 조직 운영과 재판 절차 등을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제대로 된 노동법원을 도입할 수 있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를 대신해서 법원 앞에서 집회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며 집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노동자들이 사용자로부터 침해된 자신의 권리를 구제해주는 기관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제대로 된 노동자권리구제기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처럼 무용한 노동위원회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대표)가 참여하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원을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투쟁에 달려 있다. 노동자가 심판당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가 현재의 노동위원회제도와 법원제도를 심판함으로써 도입할 수 있다. 역시 노동운동의 일이다. 따라서 금속노동자의 일이다. 심판을 심판하여야 한다.

김기덕 /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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