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까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진보해 왔다.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제도는 이제 나무랄 게 없어졌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지만 영화나 광고에서 보여지는 ‘표현의 자유’ 역시 많이 진보했다.

▲ '간 때문이야~'로 유명세를 탄 우루사 TV광고

사실 한번 물고가 트였으니 이제 앞으로 ‘표현의 자유’는 계속 진보하고 또 진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극단적으로는 곧 ‘포르노’도 합법화되고 특징적 행위예술이나 성적 소수자들의 방송출연 제한 등도 없어지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MB정권 4년은 이 모든 진보의 역사를 후퇴시켰다. 역사는 전진만 있는 줄 알았는데.

MB정권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킨 주범은 바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와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박선이)라는 심의규제기구다. 지난 늦가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대웅제약의 우루사 씨에프(CF)를 방송한 지상파 세 곳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다. 바로 대웅제약의 우루사CF 말이다.

2011년 최고 대박 광고로 남녀노소 모두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던 그 광고가 문제가 있었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주장은 “피곤한 간 때문이야”라는 표현이 모든 피로가 간 때문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이를 “방송심의규정의 ‘진실성’ 규정에 어긋났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주범은 방통심의위와 영상물등급위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이런 판단을 하는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의 ‘간’을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최근 JYJ라는 최고의 아이돌 스타그룹을 활용해 촬영한 종근당의 ‘펜잘’도 수정요청을 받았다. 약사가 아닌 자가 약을 전하고 있어 약사법 위반이라고 한다.

▲ 2011년 상반기에 개봉했던 영화 <밴티지포인트> 광고벽보

놀랍지 아니한가? 80년대 군부독재정권하에서나 존재하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심의규제가 2011년 MB정권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심의는 영화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상반기에 개봉했던 <밴티지포인트>라는 영화는 광고 헤드라인으로 “대통령이 저격당한다”는 도발적(!) 제목을 사용했다.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화광고라는 사실을 눈치 채는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후 모든 영화 광고물에 대한 사전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후 심의가 아니라 사전심의 말이다. 엄연히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NS와 앱을 심의하는 전담부서를 신설했고 뉴미디어 정보심의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나꼼수’와 같은 뉴미디어를 제어하기 위한 방법이다. 트위터-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은 물론이거니와 이대로 가다가는 매일쓰는 일기장도 검사받아야 할지 모른다. 역사는 늘 앞으로 전진하는 줄 알았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리 피 볼 줄 정말 몰랐다. 뒤늦게 정말 반성한다.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