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출퇴근 길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계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모임. 바로 우리 지역과 현장에 있는 동아리들입니다. ‘우리 동아리를 소개합니다’는 <금속노동자>가 지역과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각종 동아리를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그 첫 순서로 금속노조 경남지부 현대로템지회 통기타 동아리 ‘소달구지’를 찾았습니다. 전국에 자랑하고 싶은 동아리모임이 있으면 금속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


기차나 지하철, 전차 등을 만들기 위해 큼지막한 쇳덩어리를 다루는 노동자들. 바로 경남 창원 현대로템지회 조합원들이다. 그런데 십 수 년간 쇳덩이와 용접기를 잡던 거친 손으로 통기타를 잡는 이들이 있다. 현대로템지회 통기타 동아리 ‘소달구지’ 회원 30여명이 그 주인공.

▲ 가족들도 통기타 공연에 함께했다. 11월 22일 소달구지 작은음악회에 조합원과 가족들로 이뤄진 팀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김상민

22일 저녁 창원시내 한 호프집에서 소달구지가 ‘로뎀의 집 청소년과 함께하는 12회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말이 ‘작은’ 음악회지 호프집엔 2백5십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지회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조합원의 가족들, 소달구지와 인연이 있는 지역 주민들까지 함께하고 있다.

저녁 7시부터 세 시간 넘게 이어지는 감미롭고 흥겨운 통기타 공연. 노래와 연주 모든 면에서 이들의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다.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갖추기 힘든 실력이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모여 매일 틈틈이 연습하다보니 실력이 늘게 됐지요.” 소달구지 회장을 맡고 있는 이창두 조합원의 말이다.

▲ 11월 22일 소달구지 작은음악회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합원들이 무대 앞에서 흥겨운 춤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이 소달구지 회장 이창두 조합원이다. 김상민

거친 쇳소리에 익숙한 금속노동자들이 이렇게 감미로운 통기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 조합원은 “십수년 쇳밥만 먹다 보면 성격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라며 “통기타의 잔잔한 소리가 조합원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소달구지는 지회에선 없어선 안 될 동아리가 됐다. “소달구지가 없으면 총회나 대의원대회 등 지회 노조활동을 못한다고 봐야죠.” 이날 음악회를 관람하던 김상합 현대로템지회장이 웃으며 동아리 자랑을 늘어 놨다. 지회 조합원들도 우리 지회에 소달구지라는 동아리가 있다는 게 자부심을 느낄 정도란다.

한편 이들의 기타 소리는 공장 밖에서도 들리고 있다. 이날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음악회 입장료가 1만원인데 이 돈은 로뎀의 집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로뎀의 집’은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지역의 10대 소녀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이다. 소달구지는 이밖에도 노인들이나 결손자녀 등 지역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실력이 좋은 조합원들은 이웃 주민들에게 통기타를 교습해 준다. 이날 음악회에 지역 주민들로 꾸린 공연팀들이 함께하기도 했다.

▲ 11월 22일 현대로템지회 소달구지 작은음악회에 지회 조합원과 지역주민 등 250여명이 함께 어우러졌다. 김상민

소달구지 회장 이창두 조합원은 “금속노조가 힘을 가지려면 조합원 가족들, 그리고 지역 대중에게도 호응을 받아야 한다”며 “이것이 소달구지가 지역 주민들과 문화적으로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이 조합원은 비정규직 문제, 산업재해 문제 등 지역 노동 의제들을 결합한 사업도 기획 중이다.

“소달구지와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장님 감사합니다.” 이날 음악회에 함께한 조정혜 로뎀의 집 관장이 마이크를 잡고 청중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한 말이다. 지역사회에서 입소문을 타고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소달구지. 그리고 소달구지와 함께 알려지는 단어, 바로 ‘금속노조’다.

▲ 현대로템지회 노동자가 쇳덩이를 다루던 거친 손으로 통기타를 잡았다. 11월 22일 창원시내 한 호프집에서 열린 소달구지 작은음악회에서 한 조합원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김상민

그리고 이 조합원 꿈은 이제 지역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커졌다. “8.15 광복절에 전국 5천여명이 판문점에 모여 통기타를 연주하며 평화와 통일을 노래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정주영 회장이 소 끌고 북에 갔을 때보다 더 획기적일 겁니다.” 공장일로 삭막해진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통기타 연주 소리가 이제는 지역과 사회로 울려 퍼지려 하고 있다.

소달구지는?

현대로템은 지난 1999년 현대정공, 한진중공업, 대우중공업의 철도 부문이 합쳐져 만들어진 회사다. 통기타 동아리 소달구지는 당시 3사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던 문화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2006년 공식적으로 설립됐다.

소달구지는 우리네 노동자들 인생길을 상징한다. 자동차처럼 빠르진 않지만 느린 만큼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또 자동차와는 달리 타고 내리는 문도 없어 누구나 걸터앉을 수 있다.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느릿느릿 하지만 함께 힘을 모아 많은 것을 품고 가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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