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해 사업장 목표 730일, 달성 606일’. 세진 공장 정문에 들어서면 휴게소 한 편에 붙어있는 표지판 내용이다. ‘무재해, 안전한 사업장’, 말은 좋지만 공장 안 현실은 전혀 달랐다. “최근에도 압착기에 손가락 절단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기계에 어깨가 찢어져서 몇 바늘 꿰맸구요. 다들 영광의 상처처럼 꿰맨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조합원들의 증언도 회사가 말하는 안전이 허울뿐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 11월15일 강건우 세진지회 노동안전부장이 심각한 현장 작업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금속노조(위원장 박상철)는 지난 달 12일 금속노조에 새로 가입한 경주 세진 지회에 대한 노동안전보건실태조사를 지난 15일 진행했다. 일단 노조는 현장을 돌아보기 전 지회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강건우 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작업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안전 사고도 많다. 개선해야 될 부분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지만 산재 보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증언이다. 한 조합원은 최근 기계 온도가 170도까지 오르는 곳에서 작업하던 조합원이 데여 살이 패이는 사고를 당했고 산재 처리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회사는 공상 처리 했다고 전했다.

▲ “최근에도 압착기에 손가락 절단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기계에 어깨가 찢어져서 몇 바늘 꿰맸고요. 다들 영광의 상처처럼 꿰맨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조합원들의 증언도 회사가 말하는 안전이 허울뿐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회사 정문 옆에 버젓이 무재해 기록판에 606일째 무재해라는 거짓 현황판이 걸려 있다. 신동준

공상도 중대 재해일 때나 가능하고 대부분은 개인 사비로 병원비를 내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아무리 다쳐도 작업에 직접 필요한 손, 발 다치지 않는 이상 쉬지도 못하고 무조건 출근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세진은 법으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고 산업재해예방 및 작업환경에 대한 관리 등을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진행했다는 얘기를 들은 조합원은 없었다. 산업안전교육도 대부분 입사 이후 한 두 번 받았을 뿐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입사 9년차 조합원도 두 차례만 교육받았고 이후에는 교육받지도 않은 채 교육 확인 서명을 한 경우도 있었다.

▲ 도장 공정에서는 에어건으로 신나를 분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 실장은 “희석도 하지 않은 100% 신나로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이 곳 노동자들은 신나 외에도 경화제, 페인트 등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진 노동자들이 도장작업을 하고 있다. 신동준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2급 발암물질이라는 것도 방금 들었다. 우리가 그런걸 알 수가 있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작업하는 거지.” 노후된 설비와 안전장치 미비 등으로 다치고 병드는 것이 일상인 세진 노동자들, 이것이 무재해 사업장 세진의 현주소다.

무재해 606일 사업장의 현주소는?

간담회를 마친 뒤 문길주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과 경주지부, 지회 조합원들은 실제 조합원들이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살펴봤다. 세진 노동자들은 금형, 사출, 도장 등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곳곳에서 화학물질과 위험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에는 안전표지판과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비치돼 있는 MSDS는 2007년 자료였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커터칼과 본드 등을 이용해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실태조사를 하면서 확인한 본드는 발암물질이었지만 정작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대에는 위험성을 알리는 표시가 없었다. 문길주 실장은 “자동화 설비 없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고 장시간 서서 일하는 통에 대부분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이 의심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도장 작업 전 플라스틱 제품을 다듬는 곳에서도 소음과 분진, 발암물질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문길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장시간 소음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소음성 난청과 근골격계 질환 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연마기로 자동차 스포일러를 다듬는 공정은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신동준

사출기는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혀야 함에도 언젠가 고장난 이후 회사가 수리를 하지 않아 모두 수동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작업을 하던 노동자에게 제일 힘든 점이 뭐냐고 묻자 “문을 매번 열고 닫는 통에 팔과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다. 사출기 아래는 기계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조합원은 “조치를 취해달라고 해도 계속 방치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작업자들이 맨 손으로 기름을 닦고 천으로 막아두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도장 공정에서는 에어건으로 신나를 분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 실장은 “희석도 하지 않은 100% 신나로 작업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이 곳 노동자들은 신나 외에도 경화제, 페인트 등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열거하기조차 힘든 위험사례들

환풍기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작업장 곳곳에서는 심한 화학물질 냄새가 났다. 현장을 돌던 조합원은 “냄새도 나고 먼지도 심해서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머리도 아프고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는 환풍기 중에는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야외에서 페인트 도색을 하는 노동자들은 아무리 마스크에 작업복을 입고 안전장비를 갖춰도 바람에 페인트, 분진 등이 날려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장 작업 전 플라스틱 제품을 다듬는 곳에서도 소음과 분진, 발암물질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문 실장은 “장시간 소음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소음성 난청과 근골격계 질환 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 야외에서 페인트 도색을 하는 노동자들은 아무리 마스크에 작업복을 입고 안전장비를 갖춰도 바람에 페인트, 분진 등이 날려 힘들다고 토로했다. 바람에 날린 페인트가 공장 경계를 넘어 인근 지역으로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신동준

현장 실태조사를 마친 문 실장은 “발암물질, 근골격계, 작업환경 등 금속노조가 제기하는 모든 노동안전 문제가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세진”이라며 “이러한 작업환경에 장시간 노동까지 하는 노동자들이 안죽는게 이상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 실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을 것이다. 세진도 노동조합이 없으면서 문제가 있어도 개선하지 못해왔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제 노동조합이 적극 나서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적극 참여 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후 지회와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회사에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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