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내 물건을 사 달라’ 혹은 ‘내 기업을 좋아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우 과학적이고 계산된 방법이다. 광고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잘 결정해야 하는데 ‘what to say(무엇을 말할 것이냐)’와 ‘How to say(어떻게 말할 것이냐)다. 예전에는 무엇을 말할 것이냐(what to say)가 중요했던 시대였다면 요즘은 어떻게 말할 것이냐(how to say)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말하는 스타일과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현대그룹 기업PR-계단편>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높은 계단길을 건강한 운동길로 바꿉니다. 나는 긍정입니다. 긍정의 시대를 열어갑니다. 현대그룹”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손톱만큼이라도 진지한 ‘내용’을 이야기하면 정말 손톱만큼의 관심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을 조금 재미있게 패러디 하거나 조금 리듬 있게 음악으로 만들거나 조금 다르게 포장을 해 그들 코드에 맞아 떨어지면 자발적으로 퍼져나가고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된다. 그 만큼 형식이 중요해졌다.
변화된 세상을 탓하지 말라. 세상은 늘 변화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지 못할 뿐이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이라고 시대의 변화에 약삭빠르게 잘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현대그룹에서 준비한 기업피알(PR) 광고 캠페인 세 편을 보면 그들도 마찬가지인 듯.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있는 에피소드인 고장난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그걸 투덜대지 말고 건강을 위해 좋은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계단편’. 패션쇼 현장에서 신발이 벗겨지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아예 맨발로 무대를 마무리짓는 ‘패션쇼편’. 막히는 차에서 노을지는 석양을 감상하라는 ‘러시아워편’까지. 세 편 모두 “긍정의 시대를 열어갑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현대그룹의 기업철학을 전달하고 있다.

▲ <현대그룹기업PR-러시아워편>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답답한 운전석을 멋진 관람석으로 바꿉니다. 나는 긍정입니다. 현대그룹”
전달하고 싶은 내용(what to say)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전달하는 방법이(How to say)가 너무 구태스럽다. 8~90년대 학교에서 배우던 국민윤리나 도덕 교과서에 등장하는 철수도 아니고 누가 요즘 고장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하~ 건강에 도움이 되겠군’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루 종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퇴근 때가 되면 파김치가 되어 지하철에서 시달리는 우리네 삶에게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긍정적으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통하겠느냐 이거다.

고용노동부에서 지난 6일 발표한 자료만 봐도 완성차 5개사 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41.7시간)보다 15시간 이상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 외국의 자동차 업계(1500~1600시간)보다 연간 800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게 우리네 삶이다.

택배 물건 한 개라도 더 배달하려고 목숨을 건 질주와 차선위반, 주차딱지로 몸살을 알고 있으면서도 소위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택배기사들에게 과연 러시아워의 막히는 도로가 석양 노을을 감상하는 ‘멋진 관람석’이 될 수 있느냐 이거다. 한가한 소리 하고 있는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내용은 좋다. 하지만 결국 현대그룹의 기업PR캠페인은 어떻게 포장할 것이냐(how to say)를 놓치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기득권을 잔뜩 가지고 있고 돈이 많고 좋은 학교를 나온 쟁쟁한 직원들을 두고 있다고 해서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돈도 없고, 머리 좋은 사람도 없고, 주류 언론에서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늘 패배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보라! 거대한 자본과 똘똘 뭉친 보수 언론의 탄압을 이겨낸 희망버스라는 형식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노동의 역사가 세상을 바꾼다’는 한줌의 내용과 그것을 어떻게 새롭게, 공감되게 전달할 것이냐는 다양한 형식이다. 형식에 주목하라.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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