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라는 세월은 참 길다. 시작할 때 뜨거운 마음이 서늘하게 식어 다시 타오르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국민들의 한미FTA에 대한 학습량은 상당하다. ‘미래를 담보로 한 서푼도 안 되는 오늘의 현찰’, ‘신자유주의 영속화’, ‘망가진 미국식 경제구조 이식’ 등. 국민들의 한미FTA에 대한 일갈은 명쾌하고 정확히 꽤 뚫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한미FTA 반대투쟁 전선의 힘이다.

이명박 정권도 급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국회 비준도 안 됐는데 미국으로 날라가 “내년 1월에는 무조건 협정이 발효될 것”이라 선무당 짓을 했겠나. 뿐만 아니라 정권은 최후의 경호실장 어청수와 촛불투쟁 시기 치안담당이던 이강덕을 서울경찰청장으로 앞세웠다. 그 뒤 정권은 불법 시위 엄청대처, SNS를 이용한 한미FTA괴담 유포자 사법처리 등 너무나 익숙한 탄압 매뉴얼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을 향해 꼬막을 찢고 뇌진탕으로 혼절시키는 물대포 직격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한미 FTA 저지 2차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국회 방향으로 행진에 나선 범국민 대회 참가자들이 국회 북문 한강 둔치에서 국회 방향으로의 행진을 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참가자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노동과세계=이명익기자
북핵 협상 할 때, 통일외교 관료들이 스스로 그러지 않았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그래서 국가 간 협상을 통한 협정문은 보고보고 또 봐야 한다고. 한미FTA협정문 곳곳에 노동자서민을 암울하게 만들 악마가 수도 없이 틀어박혀 있다. 대표적인 문제점 몇 가지만 짚어보자.

협정문 곳곳에 있는 암울한 악마들

먼저, 한미FTA가 발효되면 한국의 법과 제도는 무력화된다. 미국은 한미FTA협정이 미국법에 저해되면 협정효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반면, 한국은 한미FTA협정이 한국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거나 특별법을 설치하여 한국법보다 협정이 우선 효력을 갖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실상 법 적용 순서가 ‘미국법->한미FTA협정->한국법’ 순이 된다. 이러면 한미FTA를 타고 들어오는 미국 초국적자본과 그 부수적 요소에 대해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는 한미FTA에 맞추기 위해 손대야 하는 법률이 각 산업에 걸쳐 수 십 개(23~25개)고, 그 수많은 지방자치조례들이 한미FTA와 어떻게 충돌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국가주권의 핵심 근간인 법제도들이 제 구실 못하게 하니, 과연 식민지협정이라고 불릴만하다.

다음으로, 한미FTA는 완전 손해 보는 장사다. 2007년 한미FTA 협상 체결 당시에도 쇠고기, 스크린쿼터, 약가 등은 아예 본협상이 아닌 전제조건으로 개방이 약속된 상태였다.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조건도 대폭 완화시켰다. 2010년 재협상으로 자동차 분야 이익마저도 축소됐다. 그 결과 미국 농무부는 수출이 연 평균 19억3,300만 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반면, 한국 농식품부는 4억 2,400만 달러로 추정하여 4.2배의 차이를 였다. FTA 협상 없이도 비교적 순조로운 자동차 산업의 재벌 이익을 위해 한미FTA를 비준할 실익은 없다.

식민지협정이자 실익도 없다

다음으로 한미FTA는 국민을 위한 공공정책, 복지정책보다 미국기업 이윤을 우선하게 된다. 이는 소위 ISD(투자자-국가 중재제도 Investor-State Dispute)라는 조항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정부 정책으로 외국 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정부를 제3의 중재기구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실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의해 캐나다는 최상위법인 헌법에 따른 공공적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8월, 1억 3천만 캐나다 달러의 배상금을 미국 투자자에게 지불했다. 공공정책, 복지정책 확대는 한미FTA에 의해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공공영역 축소는 필연적으로 공공기관의 민영화(사유화)로 이어져 미국을 비롯한 초국적자본의 돈벌이 거점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크다.

▲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관련 전운이 흐르는 국회 주위를 경찰버스가 둘러쌓고 있다. 노동과세계=이명익기자
그외에도 한미FTA는 서비스 시장 개방 방식을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 적시하는 네거티브 목록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 생존의 터전과 권리를 미국자본에 내맡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산업 민영화, 영리화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지금은 인천이나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와 건강보험제도를 망치면 영리병원제도 자체를 폐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미FTA협정은 경제자유구역내의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권한을 포기했기 때문에 한번 영리병원을 설립하면 아무리 의료비가 폭등하고 건강보험 제도를 훼손해도 영리병원을 취소할 수 없다. 한국의 중요한 보건의료정책 결정권이 한미FTA에 의해 제한되고 그 피해는 서민의 경제적 부담과 생명권 훼손으로 직결된다.

한국, 미국자본 돈벌이 거점된다

이렇듯 현재 정부와 한나라당이 비준하고자 하는 한미FTA협정은 얻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고, 수많은 미래의 손해와 손실만을 예고한 협정문일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모든 독소조항들은 한번 발효되면 되돌릴 수 없다. 한미FTA협정문에는 한번 개방하면 아무리 손해가 커져도 되돌릴 수 없도록 한 역진방지조항(Rachet)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한미FTA 폐기투쟁은 체제변화를 수반하는 격변기 정세인 2012년을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여는 해로 만들어가는 출발점으로 의미가 매우 높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문을 여는 내년의 승리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두 가지 전선이 있다. 강력한 대중투쟁전선과 노동자민중의 요구에 맞는 야권연대전선이 바로 그것이다. 한미FTA 폐기투쟁은 이것을 구축하는 시작점이자 핵심적 고리다. 이 투쟁, 반드시 승리로 결속해야 한다.

김성란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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