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만에 1백명이 1천명으로 늘었다. 6일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 1천여명이 점심을 거르고 정문으로 달려왔다. 회사는 이날 제발 폭력만은 자제하자며 노동자들을 달랬다. 지난 주 노동자들이 1백명이 모였을 때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폭력을 가했던 회사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이 정도면 노동자들 기세를 보고 회사가 느낀 게 있을 겁니다.”
정문 앞 투쟁 후 문성현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조직부장이 “주간조 조합원만 모였음을 감안하면 임단투 출정식보다 뜨거운 투쟁 열기”라며 이 같이 말했다. 문 부장은 “비정규직 해고자 출입문제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나설 줄은 회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며 “버스 차벽과 컨테이너도 회사가 수세에 몰리니까 설치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9월6일 김효찬 지회장을 비롯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전주공장 안에 진입하자 관리자들이 몰려왔다.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소속 정규직 조합원들이 관리자들로부터 비정규직 해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상철=현대차지부전주위원회

원하청 연대에 회사 태도 바뀌다

이날 전주공장에서 벌어진 투쟁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연대였다. 현대차 전주공장이 원하청 연대가 잘 되기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날 투쟁에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스스로 뿌듯해 할 정도로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투쟁에 앞서 이미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주일 동안 1시간 연장근로 수당을 포기하면서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근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과연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고 있을까.

투쟁 직후 전주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서영우 버스부 대의원은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이번 탄압이 아직까진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 목에 칼이 들어오게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회사에선 협력업체 문제에 왜 정규직이 나서냐고 조합원들을 회유하지만, 현장에선 회사 측 말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

송광태 노동안전보건 실행위원도 “우리 조합원들 자신은 정규직일지 모르나, 자식이 크면 나중에 비정규직 설움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라며 “이번 투쟁이 절대 남의 일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성철 현장위원은 “특히 회사가 비정규직 해고자 출입을 봉쇄하면서 사측 관리자가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간부까지 폭행하고 고소고발에 징계까지 추진하자 조합원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비정규직 해고자 공장진입 투쟁 과정에서 고소고발을 당한 조합원은 총 12명인 데 이 중 7명이 정규직 간부들이다. 이 중 한 명은 징계위에 회부돼 있기도 하다.

▲ 송광태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노동안전보건 실행위원이 관리자들과 충돌 당시 입었던 상처. 정상철=현대차지부전주위원회

비정규직 문제로 고소고발 당한 정규직들

게다가 이날 공장 정문에 설치된 볼썽사나운 컨테이너와 철조망 바리케이드는 조합원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에도 회사는 정문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가 조합원들의 반발로 철거한 바 있다.

문성현 조직부장은 최근 회사의 현장 통제를 강화 움직임도 조합원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주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기초질서 지키기’라는 이름 아래 조합원들 근태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 특히 전주위원회는 이 같은 통제가 아산공장에서 노무관리를 책임지던 양동걸 지원실장이 전주공장으로 발령받은 후 비정규직 탄압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양 실장은 지난 6월 아산공장 노조 간부였던 고 박종길 노동안전보건위원 자결 사건 이후 전주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주위원회에 따르면 지난주엔 양 실장이 직접 정문에서 마이크를 잡고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또한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적극적인 정규직 간부들을 찍어서 고소고발과 징계를 남발하는 방식도 양 실장이 아산공장에서 일할 때 자행됐던 노동탄압과 판박이라는 분석이다.

전주위원회는 현장순회와 선전전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냈다. 위원회의 이 같은 노력으로 현장엔 박종길 열사를 죽음으로 내 몬 자가 전주공장에 와서 원하청 연대를 박살내고 나아가 현장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합원들은 지난주 중식집회 때 양 실장에게 “살인자”라고 야유를 보냈으며, 그 후 양 실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탄압에 앞장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 9월6일 낮 12시, 현대차 전주공장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1천5백여명이 점심 식사도 마다하고 비정규직 해고자 공장진입 투쟁을 엄호하기 위해 정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정상철=현대차지부전주위원회

아산공장 방식 노동탄압, “전주에선 안 먹혀”

지금까지의 기세는 분명 노동자가 우세해 보인다. 하지만 회사가 계속해서 고소고발, 징계를 남발하며 원하청 간 분열을 시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질문에 송광태 실행위원이 바지를 걷어 며칠 전 투쟁 과정에서 피멍든 상처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도 다치기도 하고 이미 고소고발도 당했지만 그런 건 신경도 안 씁니다. 전주공장에서 원하청 연대가 깨진다? 그런 일 절대 없어요. 양동걸이 전주공장 노동자들 너무 우습게 봤어요.”

그런데 정규직을 포함한 현장통제 강화, 정규직의 자녀도 비정규직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 등 전주공장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날 전주위원회 휴게실에서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주공장 원하청 연대가 공고한 이유에 대해 특별히 명확한 분석을 내 놓지는 못했다. 그저 노동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10년 넘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던 동료가 부당하게 차별받을 때 함께 나서는 것은 어쩌면 노동자의 자연스런 본성이죠. 이 본성을 왜곡하고 억누르는 게 회사고요. 노조의 역할은 이 같은 조합원들의 본성이 실천을 통해 드러날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서영우 대의원이 내린 명쾌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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