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올해 7월 1일 교섭 중이었던 노동조합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교섭대표노조로 인정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와 상반된 개정 노조법 해석을 해 파문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3일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가 KEC를 상대로 낸 단체교섭응낙가처분에 대해 KEC 사측은 노조가 요구하는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 같은 결정의 핵심 근거로 금속노조 KEC지회가 올해 7월 1일 회사와 교섭 중이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또한 ‘이 법 시행일 당시 단체교섭 중인 노동조합은 이 법에 따른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 본다’고 돼 있는 노조법 부칙 4조의 ‘이 법 시행일’을 올해 7월 1일로 해석했다. 법원은 이에 따라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1회당 강제금 1백만원을 납부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5일 노조가 입수한 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법원은 우선 “법률 문언 상으로만 봤을 때, 부칙 4조의 ‘이 법 시행일’이 2010년 1월 1일인지 2011년 7월 1일인지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부칙 1조에 개정법의 원칙적인 시행일이 2010년 1월 1일로 명시돼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하지만 부칙 4조는 ‘교섭대표노동조합’에 관한 규정이며 이와 관련된 모든 규정은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부칙 1조에 병기돼 있기 때문에, 2011년 7월 1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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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에 따라 “부칙 4조의 의미는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 다른 규정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법원이 주목한 부칙 4조의 입법 취지는 “교섭 중인 노조가 교섭요구권을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과조치”라는 것이다.

법원은 먼저 부칙 4조의 ‘이 법 시행일’을 2010년 1월 1일로 볼 경우 교섭 창구 단일화가 시행되는 2011년 7월 1일 전에 예외규정이 먼저 적용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돼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경우 “2010년 1월 1일부터 2011년 7월 1일가지 계속해서 단체교섭 중인 노조를 제외하면, 사용자가 올해 7월 1일가지 교섭을  해태해 교섭 중인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다”며 이 역시 취지와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이 법 시행일’을 지난 2010년 1월 1일로 보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어서 복수노조를 둘러싼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전망이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는 그간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법 부칙 4조의 ‘이 법 시행일’을 2010년 1월 1일로 해석해 교섭 중인 노사에 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행정지침을 내렸다”며 “법원의 이번 판단이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부당한 행정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상환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KEC 외에도 유성기업, 엔텍, 파카한일유압, 청우 등 사용자가 복수노조를 앞세워 교섭을 해태하거나 금속노조의 교섭권 박탈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들이 최근 늘고 있다”며 “이 같은 사례들을 모아 추가로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가처분 결정 피신청인인 KEC 사측은 지난해 장기간 공격적 직장폐쇄로 노조 탄압 물의를 빚었었다. 지난 6월 KEC지회가 1년만에 파업을 철회함에 따라 회사 역시 직장폐쇄를 풀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7월1일이 되자 금속노조 탈퇴자를 중심으로 한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이에 회사는 지회가 이 기업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회의 교섭 요청을 묵살해 왔다. 하지만 이번 법원 결정으로 이 같은 회사의 주장은 근거를 잃게 됐다.

한편 회사는 교섭을 해태하며 KEC지회 교섭위원들이 모두 해고자이기 조합원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교섭에 참여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도 펼쳐왔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권을 가지는 단일조직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가 교섭의 당사자이고, 지회는 노조의 하부 조직일 뿐”이라며 금속노조와의 교섭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법원은 “해고자들 역시 조합활동과 관련해 해고된 것으로 보이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금속산업에 종사했던 사실이 명백해 금속노조 규약 2조에 따라 조합원으로 봐야 한다”며 교섭원원 자격이 없다는 회사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속노조 규약 2조에는 △조합활동과 관련해 해고된 자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사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구직중인 실업자도 조합원의 자격을 부여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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