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출발한 금속노조 비정규직없는 공장 만들기 순회투쟁단이 폭염을 뚫고 22일 서울에 도착했다. 나흘동안 울산, 창원, 전주, 아산, 평택, 수원을 거쳐 도착한 이들은 얼굴도 햇빛에 많이 그을리고 피곤한 기색도 보였지만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 7월 22일 서울에 도착한 순회투쟁단이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정부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정주
순회투쟁단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 앞에서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으로 모였다. 그동안 진행된 순회 경과를 보고하고 정부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강정주
이 자리에서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은 “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시작해 STX 조선, 현대하이스코, 포스코광양, 기아차, 현대차아산공장 등 많은 곳의 비정규직을 만났다”며 “이번 6일의 순회투쟁을 기점으로 더 강고한 투쟁을 벌여나가자”고 강조했다. 김 분회장은 군산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김 분회장은 “현대중공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서 온갖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정작 정규직은 48명 뿐이고 2700명이 비정규직”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조 조차 없는 상황에서 더 안타까운 모습을 봤다”고 설명했다.

기륭전자분회 유흥희 조합원도 순회투쟁 기간 만난 노동자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유 조합원은 “금속노조 조합원이 한 명도 없는 사업장에 가도 다들 선전물도 잘 받아가고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회사 경비들은 노동자들이 선전물을 받아가기 무섭게 정문 안쪽에서 선전물을 뺏기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동자들이 뭉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찾는 것이 정말 두려운 모양”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형우 노조 부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에는 더 이상 요구하고 구걸할 것도 없다”며 “반노동, 반평화 정권은 이제 내려와야 한다. 이 정권은 노동자들이 타도해야 할 존재”라고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현대자동차지부 강정형 조직강화실장도 참석해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필요하다며 “승리할 때까지 지부도 투쟁에 동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명박 트위스트' 노래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하고 있다. 강정주
기자회견을 마친 투쟁단의 다음 목적지는 한나라당 당사. 이날 순회투쟁단이 이동하는 내내 이들이 탄 버스 앞 뒤로 경찰차가 따라붙어 감시했다. 동사무소 앞 기자회견 장소에도 경찰 버스가 줄줄이 배치돼있기도 했다. 한나라당 당사 앞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입구를 경찰 버스로 막은 것은 물론이고 경찰이 인도 사방을 모두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통행을 봉쇄했다.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면담을 하고 요구서한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친서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외치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나와서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무슨 근거로 인도로 걷는 것 조차 막는 거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경찰 몸에 손대지 마라. 욕하지 마라. 채증하고 녹음하겠다”는 방송을 하며 길을 비키지 않았다.

▲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지만 경찰은 인도 사방을 막았다. 강정주
한 시간 30분을 길거리에 앉아 기다렸지만 한나라당은 “대표는 없고 민원국장만 만날 수 있다. 면담을 하려면 절차를 밟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길거리에 앉혀뒀다. 순회투쟁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비정규직 고용 기업에 불이익 처분 등을 얘기하며 대책을 마련하겠다더니 역시 한나라당은 해결 의지가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며 한나라당에 전달하려던 요구서한을 불태우고 돌아섰다.

▲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이 한나라당에 전달하지 못한 요구서한을 불태우고 있다. 강정주
이날 서울에서도 일정은 바쁘게 진행됐다. 순회투쟁단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피해자 농성장을 방문해 연대집회를 진행했다. 저녁 7시에는 대학생들과 청계광장에서 문화제를 열고 반값 등록금 실현과 비정규직 철폐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에 알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 5일. 23일 전국 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규모 집회도 진행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오히려 순회투쟁에 결합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번 기회로 다시 투쟁을 다짐했다고 얘기한다.

▲ 순회투쟁단은 22일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피해자 농성장을 방문해 연대집회를 진행했다. 강정주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난 처음에는 이번 순회투쟁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직접 비정규직만 있는 공장, 하지만 노동조합도 없는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다”고 말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도 “잠시 주춤하고 침체돼 있던 우리들이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침체된 분위기를 깰 때가 됐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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