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조합원들이 복지관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왼쪽 다리를 약간 절룩거렸고 또 누군가는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통증을 호소한다.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대화 속에 깊은 한숨 소리도 들려온다.

이 날 낮 회사 출입문 세 곳에서 심한 싸움이 있었다. ‘희망버스’ 행사를 핑계로 사측은 용역 4백 명을 앞세워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조합원들을 밀어냈다. 조합원들은 ‘아들뻘’ 되는 용역들에게 얻어맞았고 그들이 휘두른 방패에 찍혀 병원에도 실려갔다.

▲ 용역 폭력이 자행됐던 10일 밤 영도조선소 복지관 1층. 한진중 조합원들은 이날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박향주

근속 27년차인 안현달 조합원은 귀를 다쳤다.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안 조합원은 “살짝 긁혔는데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 표정은 씁쓸하다. 그는 1984년부터 일 해온 곳에서 벌어진 이 날 사건들이 믿기지 않는다. “27년이나 일했는데 나가라는 회사가 원망스럽지 않냐”고 물었더니 안 조합원은 “나는 해고되지 않은 비해고자예요”라고 말한다. “이삼십 대 젊은 애기아빠들이 많이 해고됐는데 못 챙겨서 미안하다”는 그는 “동생들 좀만 더 고생하자”며 후배들을 독려한다.

“나는 비해고자예요”

후배 노동자들은 분통해한다. 한진중공업과 아무 상관없는 용역들에게 얻어맞고 또 그들에게 출입문 세 곳을 모두 내줬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사람들만 많았더라도. 투쟁에서 이탈해 회사가 실시하는 교육을 받으러 간 조합원들만 같이 있었더라도.” 이들을 선배 노동자들이 다독인다. 그 선배들 가운데 정순철 조합원도 있다.

28년을 일한 정 조합원은 이번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해고사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회사가 기술점수 영(0)점을 매겼다고 한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음직한 세월을 일한 그. “28년을 일했는데 기술점수 영점이면 도대체 몇 년을 더 일해야 하노”라고 말하는 정 조합원. 선배의 농에 그제서야 후배들도 피식 웃는다.

▲ '비해고자' 안현달 조합원(왼쪽)과 근속 28년차 '해고자' 정순철 조합원. 유장현=부산양산

정 조합원은 “조선소 수주를 필리핀으로 빼돌린 조남호 회장은 그 나라에서 국빈 대접을 받는다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이렇게 고생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회사 뒤에 전경련, 경총, 이명박이 있다면 우리 뒤에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있는 거 아이가. 노조가 적극 붙어줘 우리 외롭지 않게 해 달라.” 그가 주문하는 바다.

“우리 외롭지 않게 해 달라”

‘희망버스’ 일행이 도착한 12일 새벽 1시. 이곳의 농성 조합원들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사람에 목말라 있었던 이들은 ‘얼마나 많이 올까’ 기대감이 컸다. 반면 사측의 원천봉쇄에 행사 여부가 불투명해 불안하기도 했다.

일명 ‘사다리 작전’으로 회사 담장을 넘은 희망버스 일행들을 만나게 된 진상우 조합원은 이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다리 작전이 실패하면 어쩌나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지. 담장 위에 올라갔는데 와 정말 놀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내 편이구나 생각하니 힘이 났다.”

▲ 한진중 노동자들이 외벽에 올라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사다리를 내려주고 조선소 진입을 돕고 있다. 박향주

진 조합원은 “지역뉴스에 10일 몸싸움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고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한참을 울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이 걱정 많이 하고 나 역시 힘들지만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회사가 잘못 했는데 왜 그가 나가야 하느냐 말이다.

이 곳 농성장에는 이른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다. 진 조합원은 “성주라는 친구가 있는데 비해고자다. 5월 지노위에서 부당해고 기각되고 나니 더 못 붙잡겠더라. 성주야,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정리해고자들은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비해고 조합원들에게 큰 힘을 얻고 있고, 그런 만큼 이탈한 동료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이 많은 사람들 모두 내 편이구나”

진 조합원은 “4월에 많이 빠져나갔는데 그때야 솔직히 원망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 그는 “개학하고 한참 돈 많이 나갈 때인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떠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진 조합원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형님들 보고 싶고, 내는 행님들 끝까지 안 버릴 낍니다”라고 말하는 진 조합원의 심정은 해고자들 전체의 마음이다.

▲ 자신의 사물함 앞에 선 진상우 조합원은 "하루빨리 복귀해 다시 형님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향주

투쟁이 길어지니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커진다. 비해고자로 이번 싸움에 동참하고 있는 안현달 조합원은 “당장 월급이 안 나오니 가족들이 힘들어한다. 아내가 전화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얘기할 때마다 그저 미안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애가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계속 다니는데 아빠가 이러고 있으니 더 불안해한다”고 털어놓는다.

이곳에는 여성 조합원이 딱 2명 있다. 그들 모두 이번에 해고됐다. 그 중 한 명인 문 숙 조합원은 둘째가 고3이다. 그는 “공부에 관심 없던 녀석이 갑자기 대학이라도 가야 사람 대접받고 살 것 같다며 수능준비를 시작했다”며 “엄마가 못 챙겨줘서 미안하지만 너 대학공부 시켜주기 위해서라도 이번 싸움 꼭 이길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들 마음만큼은 항상 농성장을 향해 있다. 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는 도정경(33세)씨의 남편은 근속 9년차인 김동섭(35세) 조합원이다. 물론 해고자다. 결혼한 지 3년 된 이들 부부에게 11개월 된 아들 성민이도 있다. 출입문 봉쇄 소식에 도 씨가 11일 새벽밥 먹고 회사에 왔지만 외부인이라며 출입을 거부당했다. 도 씨는 성민이를 안고 “애 아빠 얼굴 보게 해달라”며 종일 정문 앞에 앉아 있었다.

‘희망버스’ 보고 엉엉 울다

▲ 12일 희망버스 행사 중, 한진중 가대위 도정경 씨가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명익=노동과세계

12일 새벽 ‘희망버스’ 사람들을 보고 도 씨는 엉엉 울었다. “외로웠어요. 회사 아파트에 살다보니 파업 참여 안하는 사람들 계속 만나거든요. 그 사람들 주말에 유모차 끌고 가족 나들이 나가는 거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어요. 그런데 희망버스 분들이 다 우리 가족 되어주겠다고 여기까지 오신 거잖아요.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가족들이 생긴 거니까 너무 고맙고 든든해요."

도 씨는 “흔들리기도 하고 가족 어른들 걱정도 많지만 성민이한테 당당한 아빠,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는 “건강해야 투쟁도 할 수 있다. 우리 남편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형님들, 가족들 모두 건강 잘 챙겨서 끝까지 싸우자. 이기고 난 다음에 희망버스 분들 다시 초대해서 고기파티하고 싶다”고 말을 잇는다.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동지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다”고 말했다.

며칠 후면 첫 생일을 맞는 성민이와 성민이 아빠 엄마를 다시 그 소박한 일상 속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 2003년 6월 27일, 홀로 85호 크레인 위에 있던 고 김주익 지회장에게 힘을 주기 위해 영도조선소 담장을 뛰어 넘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또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연대물품 보낼 주소 : 부산 영도 봉래동 5가 29번지 한진중공업 복지관 4층 한진중공업지회
*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후원계좌 : 부산은행 259120436107 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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