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등록금반값’ 싸움이 뜨겁다. 등록금 천 만 원 시대. 재산이 58억이라는 오세훈 서울 시장도 딸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는 줄 알았다니 말 다했다. 대학생들은 지난 달 29일부터 연일 서울 광화문에 모여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광화문 청계천 광장 인근에 모인 학생들에게 왜 집회에 나왔는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 비싸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 '반값 등록금 실현, 청년실업 해소'문화제에 참가한 한 대학생이'조건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단순히 올 해 등록금이 몇 % 올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돈 걱정없이 공부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올 해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은 7백 68만 6천 원이다. 제일 비싼 학교는 1학년 학생이 입학할 때 내는 부수비용까지 포함해 1천 만 원이 넘는 돈을 내야한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대학 등록금은 국립대가 82%, 사립대가 57% 올렸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31.5%에 비하면 엄청나다.

등록금 10년간 82% 인상

얼마 전 아르바이트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를 홍보하는 광고에서 “나? 등록금은 내 손으로 번다”는 문구를 사용한 적 있다. 광화문에서 만난 대학생 김수진씨는 이를 놓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꼬집는다. “제 친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 마련하느라 1년 휴학해서 돈 벌고 1년 학교 다니고 또 휴학하면서 학교 다닌다”며 “학교 다니면서 수업 다 듣고 일하면서 등록금 번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연세대 학생은 학교가 주는 장학금조차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나도 1학년 때는 장학금을 받았는데 성적이 기준에 못 미쳐서 장학금이 끊겼다. 결국 1년 다니고 지금은 휴학한 상태”라며 “정말 저소득층만 등록금 마련이 힘든 게 아닌데 성적이나 가정 형편 기준 따지면서 주는 장학금은 혜택 받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말한다.

▲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가 적힌 손피켓을 든 대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이렇다보니 최근 정치권에서 내놓고 있는 ‘반값 등록금’ 관련 대안제시에도 학생들은 반발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학점으로 잘라 우수학생 위주로 장학금을 주는 방안 등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강다영 씨는 “아직도 정치인들은 등록금 문제를 단순히 어느 학교, 어느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당장 어떻게든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학자금 대출제도다. 하지만 이 또한 대학생들을 빚쟁이로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최근 학자금 대출을 담당하는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대출받은 뒤 제 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대학생이 2006년 670명에서 2010년 2만5366명으로 급증했다. 4년 만에 38배나 증가한 셈이다.

학자금 대출제도? 4년 새 빚쟁이 38배 증가

졸업 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상황인데다, 취업 후에도 학자금 대출 빚은 이들을 따라다닌다. “휴학하는 것도 힘들고 집에서 낼 형편은 안되서 학교 다닐 때 대출을 6번 정도 받았어요. 졸업하고 2년 지났는데도 아직도 빚이 천 만 원 가까이 남았어요. 매 달 월급 받아도 반은 이자에 원금에” 광화문 등록금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도 더 이상 학생들에게 이런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거든다.

▲ '반값 등록금'실현을 외치며 종로2가 일대에서 가두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이 경찰에 강제 연행된 후 호송차에 올라 "반값 등록금 실현"구호를 외치자 제지당하고 있다.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등록금은 졸업생 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집회에 나온 대학생 강다영씨는 “부모님은 집회 나가는 걸 걱정하시지만 사실 내가 이 자리에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대출받거나 일을 해서 본인이 등록금을 마련하는 학생도 있지만 부모님이 마련해주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은 자녀가 대학을 다닐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몇 년 전 등록금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딸의 대학 입학식을 며칠 앞둔 날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뉴스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 적이 있다. 2010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하위 1분위 가구 연간 소득은 769만 8천원이었다. 올 해 평균 등록금을 내고 나면 딱 1만 2천 원이 남는다. 1년 동안 1만2천원으로 살 방법은 없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대학 등록 여부

특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자식 대학 보내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교육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되풀이된다. 한 학생은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안간다 그러면 안 그래도 직장 구하기 어려운데 대학 안가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한다”며 “그런데 막상 대학에 합격했는데도 돈이 없어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는 친구도 있다”고 현실을 설명한다. 이어 “돈이 있는 사람만 교육 받을 수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대학은 무조건 가라고 하면서 돈은 다 알아서 책임지라는 건 무책임하다”고 토로했다.

▲ 2008년 여고생 촛불소녀들이 대학생이 돼 '반값 등록금'집회에 다시 광화문에 나온 것처럼 2011년 에도 여고생 촛불소녀들이 다시 광화문에 나섰다. 2011년 다시 한번 촛불의 바람이 몰아칠까?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명익 기자(노동과세계)
대학생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후보 당시 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도 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후보일 때는 하겠다더니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고 서민도 학생도 다 죽으라는 소리”라며 “이명박 정권 하에서 해고되고 임금은 인상되지도 않고, 학생이나 노동자나 힘든 건 매한가지”라고 강조했다.

“학생이나 노동자나 힘든 건 매한가지”

대학생 강다영 씨도 “등록금 때문에 시작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이명박 정부에 다들 절절하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지금 너무 비싸니까 반값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공약으로 낸 거니까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있구요. 하지만 반값이어도 비싸요. 그리고 언제 또 이만큼 올릴지 누가 알겠어요. 저나 친구들이 말하고 싶은 건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교 포기하고 뼈빠지게 알바하고 부모님한테 미안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어느 학생의 말이다.

또 다른 시민도 “나 좋으려고 대학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학에서 배운 거 어디 나 좋으려고 써먹나요?”라며 “이것저것 다 사고판다지만 학생들 교육받는 것도 상품 가격 정하듯이 이러는 건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반값도 말고 다 무상교육으로 해야 돼”라는 말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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