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둔포면의 비닐하우스. 지난 달 26일부터 유성기업 노동자 5백여 명의 숙소가 됐다. 5분만 걸어가면 2~30년을 드나들던 공장이 눈 앞에 있는데 갈 수가 없다. 지난 2일 비닐하우스 농성장에서 만난 홍완규 조합원은 그저 억울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홍 조합원은 20년을 유성기업 충북 영동공장에서 일했다. 영동에 처음 공장을 지을 때부터 일한 일명 ‘창단멤버’로 회사에 대한 애착도 컸다. 주야간 근무를 뛰면서 가족과 다섯 살짜리 딸을 부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일터다. 하지만 며칠 전 공장을 찾아갔던 홍 조합원은 분통 터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20년을 내 집처럼 출입했던 공장 앞에 용역 30명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정문에 쇠사슬 걸어놓고 일일이 얼굴 확인해가면서 출입시키고. 우리는 공장 안에 있는 옷 꺼내오겠다는데도 절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정말 너무 억울하고 화가 어찌나 나던지…”

▲ 6월3일 저녁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있다. 지회는 공장 근처 농가 비닐하우스를 빌려 농성장을 만들었다. 조합원들 옆에 농기계와 모판 등 농자재가 보인다. 신동준

홍 조합원은 이번 기회에 회사 본색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됐다고 말한다. 노조를 깨겠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철저히 준비된 탄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전에는 같이 웃고 즐기고 일도 열심히 하고 좋았지. 근데 알고 보니 사장도 관리자도 그게 본색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이겨서 현장 들어가면 사장이 아니라 우리가 생산의 주인이라는 거 똑똑히 보여 줄거다”라고 주먹을 꼭 쥔다.

“이겨서 돌아가면 두고봐라”

홍 조합원이 가장 화가 나는 건 형님들, 후배들과 같이 살아온 터전, 지켜온 민주노조를 하루아침에 빼앗겼다는 것. “돌아가신 김동암 형님이 그렇게 생각이 나더라. 형이 만든 민주노조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고 꼭 좀 도와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한다. 고(故) 김동암 조합원은 홍 조합원에게 노조가 무엇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었다.

▲ 취사담당 조합원들이 저녁 국으로 민물매운탕을 끓이자 맛난 냄새를 맡고 조합원들이 솥단지 옆으로 모여든다. 국자를 들고 있는 이가 ‘짬장’ 최병문 조합원이다. 신동준

홍 조합원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어느 날 꿈에 동암이 형이 나왔다. 얼굴에 살도 붙고 편안해 보이더라. 그러고 나니 이제 뭘 해야겠는지 딱 마음이 정리됐다”며 “민주노조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든다. 우린 반드시 이길 거”라고 두 세 번씩 강조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날 때도 있고 힘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파이팅을 외치며 동지들이 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간다.

비닐하우스에는 조합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가족도 가족대책위원회(아래 가대위)를 구성하고 한 켠에 텐트를 쳤다. “집 걱정 말고 투쟁만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 조합원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농성장을 찾았던 부인이 집에 돌아갈 때면 손을 꼭 잡고 배웅도 한다. 농성장에 같이 있어도 각자 집회하고 선전전 하느라 얼굴 제대로 볼 시간도 없지만 투쟁하면서 사이가 더 좋아졌다.

▲ 조합원들이 저녁밥 배식을 받고 있다. 신동준

“집 걱정 말고 열심히 싸워라”

지난 달 31일 구속된 유성기업 아산지회 김순석 쟁의부장의 부인 백영미씨도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백 씨 옆에는 8살과 5살 난 두 딸도 함께였다. “남편이 딸을 안고 있었는데도 연행했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도청한 거 아니면 그렇게 따라올 수가 없었다”고 심정을 털어놓는다.

남편이 구속까지 된 상황에 괜히 남편에 대한 원망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처음에는 노조다, 투쟁한다 탐탁지 않았던 백 씨도 공장에서 농성을 하던 날 와보고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백 씨는 “와서 직접 보니까 착잡하더라.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알겠고 더 열심히 하라고 응원밖에 할 게 없더라”고 말한다.

▲ 조합원들이 조별로 모여 저녁밥을 먹고 있다. 비닐하우스 바닥은 젖어 있고 먼지가 풀풀 날린다. 신동준

백 씨는 자기 주변에도 일부 언론 보도만 보고 “너희 살만하다던데 왜 그러냐”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고 알면 그런 소리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이 야간을 마치고 퇴근하면 운전하면서 너무 졸리니까 뺨을 때려가면서 왔다. 목숨 걸고 일한 셈”이라며 “오히려 자기 살 생각만 했으면 이렇게까지 안하고 잡혀갈 일도 없었을 거 아니냐.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말도 덧붙인다.

집회를 마치고 농성장으로 돌아온 조합원들. 비닐하우스 안, 창고 처마 아래 곳곳에 모여 얘기를 나누다 “배식 시작합니다” 소리에 재빠르게 식당으로 가 줄을 선다. 음식 재료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매 끼니마다 맛있는 국과 반찬이 준비된다. 먹는 사람들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재료 가지고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정말 잘 먹었다”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 지회 확대간부들과 김호규 노조 부위원장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신동준

“야간 마치고 뺨 때려가며 운전길”

16일째 5백 여 명 조합원들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최병문 조합원이다. 올 해 54세에 29년 근속자로 고참 형님이지만, 국을 만들고 배식하는 것 까지 모두 최 조합원의 몫이다. “맛있게 먹고 힘내서 싸우기만 하면 더 바랄게 없지. 내가 살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밥은 얼마든지 해 줄테니까 많이들 먹어.” 이날 저녁 메뉴로 최 조합원이 끓인 매운탕도 인기 만점이다.

최 조합원은 기능장이다. 기능장이라고 하면 회사에서 기술도 좋고 웬만한 기계는 다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하루 빨리 선별 복귀 시키고 싶은 사람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결코 혼자서 복귀할 마음은 없다. 최 조합원은 “내가 지금 들어가면 여기 있는 후배들한테 비수 꽂는 거 밖에 안 된다. 그럼 다 죽는 거다. 나만 살자고 그럴 수는 없지”라며 “나는 여기 같이 있는 게 좋아. 같이 웃고 즐겁게 공유하고. 내가 회사 그만둬도 내 모습 본 후배들이 또 나처럼 하지 않겠냐”고 웃어 보인다.

▲ 희미한 등불에 의지해 조합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휴식하고 있다. 신동준

“‘짬밥 먹고 힘내서 민주노조 사수하자.’ 내가 늘 외치는 구호야.” 든든한 밥심에 지회 투쟁에도 힘이 붙는다. 전국에서 유성기업지회 투쟁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밥 심에 보탤 일이 생겼다. 지회가 공장 안에 쌀을 준비해뒀는데 회사가 용역에 경찰까지 공장 문을 걸어 잠궈 가져나오지 못하고 있단다. 5백 명 든든하게 챙겨먹고 싸움하려니 드는 쌀도 만만치 않고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이겠는가.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 앞 5분거리 비닐하우스 농성장으로 동지들의 연대를 보내자.

* 연대물품 보낼 곳 :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충무로길 2081번지 유성기업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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