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갖고 해석하면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낸 사실이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아울러 대법원은 노사 간에 맺은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한 정리해고도 정당하지 않다고 최종판결하기까지 했다. 대법원은 지난 달 26일 “포항 진방스틸 노동자 16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는 2심 판결을 최종 확정하면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판결문은 지난달 31일 공개됐다.

이번에 대법원이 최종확정한 지난 2월 9일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에는 이른바 ‘노사 고용안정협약서’의 의미와 진방스틸이 정리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는지가 중점적으로 담겨 있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회사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정리해고를 한 점 △정리해고 당시 회사 적자 폭이 대폭 줄고 급격한 매출감소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열거하며 ‘고용안정협약’을 어긴 정리해고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 진방스틸지회 이기형 지회장이 지난해 7월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노동부 포항지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펼치고 있다. 포항=이상섭

여기서 일단 법원이 주목한 것은 노사 간에 맺은 ‘고용안정협약서’였다. 진방스틸지회(지회장 이기형)는 회사가 매각된 지난 2007년 진방스틸 및 인수예정자인 한국주철관과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시 노사합의서에는 “휴직자를 포함해 전 직원에 대한 전원 고용을 승계하고 인수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담았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단체협약에서 구조조정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있고 내용에 있어 법률적 제한은 없다”면서 “단체협약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에 이뤄진 단체교섭 결과 성립된 합의사항을 문서화한 것으로 강행법규나 공서양속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 내용에 대한 법적 제한은 없다”고 봤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안정협약은 유효”하다며 협약을 위반한 회사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이번에 대법원이 이 같은 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확정한 셈이다.

▲ 지난해 7월 20일 진방스틸지회 등 포항지부 조합원들이 정리해고철회 등을 촉구하며 포항시내에서 삼보일배 행진을 벌이고 있다. 포항=이상섭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고용안정협약이 직접적으로 인정되면서 정리해고 요건이 강화된 판결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그간 법원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일반 민사계약의 원칙을 특히 정리해고 문제를 대할 때는 유독 인정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받아들여 왔었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정리해고와 관련해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직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판례가 나온 셈이다.

노사협약위반 부당…경영상 긴박한 이유 요건도 강화

▲ 포항 진방스틸 현장 전경. 신동준

아울러 이번에 대법원은 정리해고 요건도 대폭 강화시키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이 판시하고 이번에 대법원이 확정한 판결문에 따르면 “진방스틸은 기업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거나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 변화가 있는 경우 등 고용안정협약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부당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기존 법원의 입장은 “도산 우려가 없는 단순 경영 합리화 조치를 위한 정리해고도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이번 대법 확정판결로 인해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해석이 사실상 대폭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지난 2008년 11월 28일 조합원 25명을 정리해고 했고 다음 해 3월 3일 추가로 한 명을 또 정리해고 했다. 이에 진방스틸지회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2009년 2월 19일과 3월 9일 두 차례에 나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시켰다.

하지만 당시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같은 해 4월 16일 조합원들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지방노동위원회가 지회 주장을 기각한 논리는 △정리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인정 △이른바 단협 상 해고 시 ‘노사합의’ 규정은 노조에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려는 취지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지회는 또다시 같은 해 5월 7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지회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지회는 같은 해 서울행정법원에 “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중앙노동위원장을 피고로 하는 행정소송에 돌입하게 됐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해 5월 14일 노동위원회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불복한 지회 조합원들은 또다시 서울고등법원에 2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비로소 서울고등법원은 “진방스틸 사측이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정리해고 요건을 다 갖추지 못했다”며 지난 2월 9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1심 판결 중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한 부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같은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를 한 것이다. 소송과정에 끝까지 임한 조합원은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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