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정글>이라는 미국드라마를 기억하는 분이 혹 계신지? 맥가이버, A특공대 같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드 중의 하나로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전장의 한 복판에 있는 미군들의 전우애 같은 게 단골 이야기였다. 늘 결정적인 순간에 헬기가 나타나 미군을 구하는 장면과 한 편의 에피소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바로 미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을 다뤘던 에피소드였다.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어떤 병사가 베트남 마을 주민들을 베트콩으로 오인하고 사살 명령을 내려 결국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줄거리는 드문드문 남아있지만 선명하게 머리에 남는 대사가 있다. 재판에 회부된 미군이 “나는 미군이다. 미군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말이 좀 충격이었다. 머나먼 정글 같은 반공드라마를 보고 자란 어린애 머리에 미군은 정말 좋은 군인, 우리 편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 뭐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그 병사의 항변이 맞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이 같은 80년대 ‘초딩’이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경북 칠곡의 캠프캐럴기지에 고엽제가 다량 매립되어 있다는 퇴역미군의 증언이 공개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환경부장관 예정자의 청문회가 열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동안 이름한번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이고 환경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인지 알 길이 전혀 없어 지켜보자 했던 장관 내정자 유영숙. 알고보니 이 사람의 배경은 바로 ‘소망교회’였다. 여성 인사, 과학자, 전문가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닌 어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이, 장관 내정자가 된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여하튼 소망교회 다니는 이 분이 청문회장에서 캠프캐럴 기지의 고엽제에 대해 “미군이 자국민 보호차원에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초딩’같은 생각

요즘은 동네에 모인 애기엄마들도, 고령의 우리 시어머니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반환된 미군기지에 국회의원들이 들어가 땅을 파보니 유전처럼 기름이 고이고, 심지어 거기에 불이 붙기까지 하는 장면이 신문이고 방송이고 할 것 없이 나왔었는데, 그걸 보고도 설마 미군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서울의 용산기지 바로 옆에 있는 녹사평역 지하수에선 여전히 기름이 새어나오고 서울시는 해마다 이 지하수를 정화하고 그 비용을 국가에 청구한다. 아직 미군이 비용을 배상한 적은 물론 없다. 최근 20년동안 확실한 증거가 있는 미군기지의 환경사고만 해도 47건이다. 물론 정황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거나 아예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숫자일 것이다.

▲ 유영숙 환경부장관 내정자
비단 우리 경우처럼 해외에 주둔한 미군기지만 문제는 아니다. 자국에서도 미군은 미국 최대 환경오염의 적이라고 불린다. 91년 미 국방부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1,579곳의 군사시설에 14,401곳이 시급히 환경을 복원해야 할 곳으로 정해졌다. 게다가 거의 100곳이 넘는 곳은 미국 환경청의 ‘슈퍼펀드’ 사이트였다. 슈퍼펀드는 미국 최악의 환경참사 ‘러브캐널’ 사건 이후 만들어진 제도이다. 나이야가라 폭포 근처에 러브캐널이라는 운하가 만들어졌는데, 운하로서 기능은 하지 못하고 폐기물 매립장으로만 쓰였다. 이곳에 온갖 화학물질과 중금속이 10여년간 매립되었고, 이후 이곳을 흙으로 덮어 땅을 만든 뒤 그 위에 학교가 만들어졌다.

오염된 땅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온작 중병에 시달리며 앓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일들이 반복되자 1978년 땅 밑의 중금속과 화학물질, 유류 등으로 인한 오염이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땅을 정화하기 위해 미 정부가 만든 기금이 바로 슈퍼펀드이다. 슈퍼펀드는 주로 치명적인 유해물질매립지역에 대해 오염자가 부담할 수 없는 정도의 비용이 드는 정화작업을 위해 쓰이는데, 그 대상지 중 100곳이 넘는 곳이 바로 미군기지라는 것이다. 이렇듯 미군의 군사기지는 자국 내에서도, 또 해외 주둔지에서도 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오염자라는 것이 이미 잘 아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군이 그랬을까요?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앞으로 반환될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협상도 해야 하고, 기지 정화도 촉구해야하고, 나아가 SOFA 개정도 해야 할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진한 분의 생각 때문에, 결국 피해를 볼 사람들은 우리인데,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라도 그 분을 그 자리에 앉혀야 하는 걸까?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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