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동행정에 대한 회의나 분노가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노동부의 몇 가지 행태는 그 수준을 넘어서 당혹감이나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직종별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상담 의뢰를 받았다. 노조설립을 위한 각종 신고 서식과 노조 규약을 검토해 줬다. 설립하고자 하는 노조가 직종별 노조이고 해당 직종의 성격상 단기 근무와 이직이 잦기 때문에 조직 대상에 구직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약을 작성하도록 조언했다.

그런데, 며칠 후 설립신고가 반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조합 규약 상 조직 대상에 노동자가 아닌 ‘구직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직 대상에서 ‘구직자’를 빼고 다시 신고하거나, 아니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시라는 친절한 안내를 덧붙였다고 한다.

물론 얼마 전에 세간에 뜨거운 화제가 되었던 ‘청년유니온’이 동일 사안으로 설립신고 반려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당해봐야 안다고 막상 노동부에서 구직자‘도’ 조직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설립신고를 반려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 노조 규약 상 조직대상에 노동자가 아닌 ‘구직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신고가 반려되고 있다. 노동부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시라는 친절한 안내를 덧붙이고 있다.
이것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구직자의 노동3권 문제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4년에 대법원 판결로 정리된 쟁점이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별 일반노조인 서울여성노동조합이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명쾌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대법원 2004.2.27, 2001두8568판결 노동조합설립신고반려처분 취소)

“근로기준법은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에 대하여 국가의 관리, 감독에 의한 직접적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인 반면에,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은 '노무공급자들 사이의 단결권 등을 보장해 줄 필요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그 입법목적에 따라 근로자의 개념을 상이하게 정의하고 있는 점, 일정한 사용자에의 종속관계를 조합원의 자격요건으로 하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경우와는 달리 산업별, 직종별, 지역별 노동조합 등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일정한 사용자에의 종속관계를 조합원의 자격요건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점에 비추어...(중략)...노조법 제2조 제1호 및 제4호 라목 본문에서 말하는 근로자에는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그 범위에 포함되고, 따라서 지역별 노동조합의 성격을 가진 원고가 그 구성원으로 '구직중인 여성 노동자'를 포함시키고 있다 하더라도 '구직중인 여성 노동자' 역시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

논란의 여지없이 명확하고 분명한 결론이다. 다른 쟁점을 다 떠나 ‘구직자’도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점에는 어떠한 다른 해석의 여지도 없다. 노동부가 이 대법원 판례를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대상에 ‘구직자도’ 포함한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행정부가 법원 판단을 무시하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와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 정부의 성향이 이전보다 보수적이어서? 또는 친기업적이어서?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최소한의 기본만 하면 역사를 거꾸로 간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거꾸로 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조제희 /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삶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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