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에 2007년 시작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경남제약지회가 그 주인공. 회사 매각 과정에 재매각과 해고금지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시작했고, 합의서에 도장 찍자고 철썩같이 약속했던 회사는 2007년 9월 21일 직장을 폐쇄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직장폐쇄, 단협해지, 해고, 고소고발…. 노조만큼은 확실히 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회사는 할 수 있는 탄압을 다했다. 최근까지 1백 15차례나 임단협 교섭을 펼쳤지만 고작 합의된 문구는 열 개뿐이다.

지난 19일 충남에서 만난 박혜영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5년을 넘게 싸우는 이유를 “노조의 필요성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들 조합원은 쉰 한 명. 싸움을 시작하고 나서 회사 회유에 노조를 탈퇴한 사람은 서 너 명 뿐이다. 정년퇴직하거나 집안 사정으로 퇴사를 한 사람 외에는 이탈자 없이 똘똘 뭉쳐있다.

이탈자 없이 51명 똘똘 뭉쳐있다

“2008년 회사가 직장폐쇄를 철회해 현장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투쟁의 승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조합원들은 오히려 패배감이 컸어요. 현장 복귀한 뒤에 교섭도 하고 소송도 계속 했는데 뭔가 진전이 없었으니까요.” 박 지회장은 현장복귀 뒤 시급한 문제가 지회의 조직력을 키우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 지회장이 생각한 게 ‘전조합원 단결의 날’ 행사였다.  

▲ 박혜영 경남제약 지회장

지회는 매 달 한 번 전체 조합원 단결의 날을 진행한다. 2008년 4월부터 시작해 벌써 4년째다. 투쟁 상황도 공유하고 교육도 한다. 가끔 단합대회를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서로 다독인다. 박 지회장은 “복귀하고 난 뒤에 조합원들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서로 갈등도 생겼다”며 “그런 걸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모여서 조합원들끼리 친목도 다지고 서로 얘기하면서 이해하고 설득하는 거죠”라고 이 행사의 성과를 설명한다.

지회 조합원은 모두 여성이다. 이 중 대여섯 명 외에는 결혼하고 아이도 있다. 단결의 날 행사 때 이들은 어린 아이를 집에 두고 올 수가 없어 스무 명 정도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다. 박 지회장은 “4년 전 기어다니던 애가 요즘 보니 많이 컸더라구요. 애들 커가는 걸 보면서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만큼 오래되다 보니 이제 해야 할 프로그램도 바닥났죠”라며 웃는다.

3년 째 모든 조합원이 매일 일지 쓴다

박 지회장은 조합원 스스로 움직이고 참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직장폐쇄 때 50명 다 같이 철야농성을 했어요. 집에 아이들 두고 농성하러 매일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다 했어요. 조합비로 밥 사 먹는 거 안된다고 그 추운 날 도시락 싸와서 먹으면서 했어요”. 박 지회장은 당시 상황을 얘기한다.

지회는 그런 실천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현장 복귀 뒤부터 조합원들은 매일 일지를 작성한다. “사실 조합원들이 매일 이걸 쓴다는 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법률 소송을 하고 워낙 회사가 악독하게 탄압을 하다보니까 이런 기록 하나하나가 중요하더라구요.” 말 그대로 일상이 싸움이다.

단협해지 뒤 회사가 조합비를 일괄공제를 해주지 않아 조합원들 직접 돈을 내야 한다. 조합원들은 월급날이 되면 급여명세서를 복사해 지회의 전직 사무장에게 가져오면 일일이 계산해 조합비를 낸다. 간단해 보이지만 잊어버릴 수도 있고 귀찮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4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것이 지회의 저력을 보여준다.

▲ 지난 18일 저녁 6시 반. 경남제약지회 상집간부들이 충남지부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의 모임은 퇴근 뒤에야 가능하다. 신동준

투쟁기금도 따로 내고 있다. 조합원 한 명이 1년 동안 투쟁기금으로 내는 돈만 90만 원 정도다. 법률비에 단결의 날 행사 하고나면 남는 돈 하나 없지만 “돈 없어 회사에 굴복하는 것 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더라도 우리 힘으로 싸우는 게 낫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뜻이라고 박 지회장이 설명한다.

주변 남성조합원 시선에 상처

5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길어지는 투쟁은 조합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자신감보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일체 노조활동 하지 말라는 회사를 상대로 연차휴가, 생리휴가 써가면서 1인 시위 다니고,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위반으로 1억 원이 넘는 벌금 내느라 임금 한 푼 손에 못 쥐어 본 달도 몇 번 있다.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조합원들에게 노조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07년 매각이 결정되면서 교섭하고 투쟁에 돌입하던 시기, 이영순 부지회장은 출산휴가 중이었다. 하지만 교섭위원으로 참석하기 위해 백일 조금 넘은 아이를 집에 두고 농성에 결합했다. 남은주 부지회장도 그때 당시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했던 상황. 저녁이면 집에 가 아이들을 재워두고 다시 회사에 와 농성을 했다. 새벽에 다시 집에 가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 박혜영 경남제약 지회장

특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다른 사업장 조합원들의 시선이었다. “우리는 여자들끼리 있으니까 유행에도 민감하고 꾸미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농성하거나 집회할 때 예전에 사둔 가방이나 옷 입고 오면 다른 곳에서 ‘무슨 투쟁사업장이 저러냐, 저래서 어디 이길 수 있겠냐’고 욕 많이 했어요.” 이영순 부지회장은 당시 상황을 얘기하며 상처가 컸다고 얘기한다.

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경남제약지회 싸움이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 박 지회장은 “투쟁이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일이 터지면 우르르 몰려가고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곳들은 자꾸 잊혀지잖아요. 우리 싸움도 끝난 줄 아는 사람이 있어요. 활발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장에서, 밖에서 계속 싸우고 있거든요”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투쟁사업장 잊혀지고 있어 또 상처

현장복귀 뒤 현장 분위기를 묻자 박 지회장은 “예전에는 현장이 우리 것이었는데 이제 회사가 주인이 됐다. 예전에는 봄날이었는데”라고 말한다. “경남제약은 복지도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현장에서도 노조가 얘기하면 안 되는 게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2008년부터 현장은 완전히 변했다. 회사는 비조합원을 동원해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일상적인 대화까지 녹음하고 메모하는 수준이었다. 이 부지회장은 “정말 매일매일 관리자랑 싸우는 일 뿐”이라며 “요즘은 아침 조회 때 직원들 모아놓고 ‘요즘 화장실 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얘기까지 한다니까요”라고 현장 상황을 설명한다.

▲ 경남제약 공장 전경.

“처음부터 복지며 뭐며 아예 안 해주는 곳도 문제지만 있던 게 없어지니까 다들 많이 힘들어하죠. 봄날이던 시절 생각도 많이 하구요.” 박 지회장 얘기처럼 봄날 얘기하는 조합원들 말투에 웃음이 가득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감상적으로 그 시기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것, 복지도 좋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다 싸워서 만들었던 거예요. 그냥 얻은 게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노조를 포기할 수 없죠.”

5년째 차디찬 겨울이다.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하며 기다리기에는 추위가 매섭다. 노조가 있어 너무 좋았지만, 지금은 그 노조를 지키기 위해 힘든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믿고 싸울 수 있는 건 이런 저런 얘기로 웃음꽃 피울 수 있는 조합원들이 옆에 있어서다. 또 조합원들이 몸으로 부대끼며 만들어온 ‘단결’이라는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남제약 공장에 다시 봄이 찾아오는 날까지 손 꼭 잡고 같이 한 번 가보자.

경남제약은 레모나를 비롯해 비타민,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경남제약지회는 2007년 HS바이오팜이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특별단체교섭을 진행했다. 회사와 협의를 하던 중 2007년 9월21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투쟁 끝에 2008년 4월 직장폐쇄를 철회했다.

현장 복귀 이후 회사는 CCTV설치, GMP규정(의약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보증하는 기본조건) 강화를 얘기하며 조합원들의 복장과 장신구 착용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2008년 5월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2007년 12월 법원이 회사가 낸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본사와 아산공장 50미터 내 집회 금지, 사무소 점거 금지 등 10여개의 금지항목을 정해 노조활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박혜영 지회장은 해고돼 공장출입도 금지되고 있다.

지회는 회사와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임금협상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주1회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회는 매일 아침 조회와 주 2회 중식보고대회 등을 진행하며 현장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아산공장 근처 신창삼거리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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