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으로 쌍용차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치유되기는커녕 더 심각하게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무급휴직자 및 정리해고자 1백93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4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이 없는 사람은 4.3%에 불과하며 중등도 우울증이 30%, 고도 우울증이 50%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등도는 심리상담이 요구되는 수준, 고도 우울증은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할 정도의 수준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 정도가 지난 2009년 파업시기와 파업종료 직후 실시한 1, 2차 조사 때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것. 1차 조사 때 54.9%였던 중등도 이상 우울증 환자는 2차 때 71.1%로 늘었으며, 최근 조사한 3차에서는 80%로 증가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치유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상처는 더 곪아가고 있었다”며 “매우 충격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중등도 이상 우울증 54.9%에서 71.1%로 늘어
노동자 정신건강의 악화는 자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을 불러왔다. 파업 이후 1년 동안 자살한 노동자는 4명이었는데, 이는 일반인 자살율의 3.74배에 달한다. 또한 심근경색사망률은 30~40대 일반인에 비해 무려 18.29배가 높았다. 임 소장은 “심근경색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빨리 치료받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며 “30~40대 젊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질환으로 쌍용차 노동자의 경우 매우 심각한 지경”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고 노동자들의 40.9%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32.6%는 현재 직업이 아예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타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는 3.6%에 불과했다. 또한 해고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82만2천8백원으로 법정최저임금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대상자의 86.2%가 빚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중 83.96%가 구조조정 이후 빚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생활조건의 악화는 노동자들의 가족 및 사회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 부부관계가 악화됐다는 응답은 95.9%로 늘었다. 1차 조사에서는 70.1%였다. 자녀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도 각각 79.0%, 96.2%, 94.2%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가족 및 사회관계, 갈수록 악화
한편 이번 조사 보고서에는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 실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스웨덴에서 1992년~1994년에 90일 이상 실직을 경험한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실직자가 일반인에 비해 1.91배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 소장은 “특히 이 연구 결과를 보면 처음 4년의 사망률이 높았다”며 “쌍용차의 경우 2년이 채 안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2008년 영국의 정리해고자 5백4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를 받은 사람의 정신병 발병률은 일반인에 비해 1.36배 높은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3.27배나 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자살로 이어지는 해고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사회적 서비스와 관심이 절실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임 소장은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무급휴직자 복직 합의 이행 △지자체의 긴급 생활자금 지원 △해고자에 대한 직업교육 서비스 제공 △해고자 및 가족에 대한 정신적, 심리적 치유 △해고자의 정신건강, 경제 여건, 취업 상황 등에 대한 주기적인 조사와 대책마련 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