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같은 재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제조업 강국으로, 아이티 등처럼 외부의 도움 없이 재기가 불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6천여 명이 사망했던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에도 일시적으로 타격은 있었지만 곧 회복됐다.

이번 일본 대지진의 피해 규모는 대략 25~30조엔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는 일본의 GDP 약 4백40조엔의 5~7%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극복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국가 부채가 GDP의 2백%에 달하지만, 대부분의 부채를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외환위기 가능성이 적고, 해외 자산이 6조 달러에 달해 재건 자금 조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본을 위해 모금을 한다는 게 어색할 정도다.

▲ 일본의 한 자동차 야적장에 지진해일이 덮쳐 출고대기 중이던 승용차들이 부서져 있다.

물론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일본 정부가 ‘재해’ 국면을 ‘재건’ 국면으로 전환했을 때 이야기다. 현재 일본 정부는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이 넘었지만 우왕좌왕하면서 위기를 키우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 문제에 대해 은폐와 축소를 반복하며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신뢰를 모두 잃어버렸고, 원전에서는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될 위험이 여전히 높다. 이러한 상황이 악화된다면 일본 경제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당분간 생산차질, 당분간 경기침체

당분간의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다. 현재 일본 자동차, 전자, 철강 산업의 주요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며, 일본 내 공장에서 생산되는 핵심 부품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해외 공장의 생산 차질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공장의 직접적 파손과 더불어 물류 시스템 마비로 생산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로 인한 전력 부족으로 제한 송전이 실시되고 있다. JFE, 신일본제철 등 철강업체들은 제한 송전으로 최소한의 생산을 유지하는 상태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일본 전체 전력의 8% 가량을 감당해왔음을 감안하면 상당 기간 동안 제한 송전이 예상된다.

▲ 지진해일이 덮친 일본의 한 공장 화학물질 보관 탱크가 폭발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주요 부분인 내수소비 역시 천재지변에 대한 심리적 충격과 제한 송전, 방사능 누출에 따른 영향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일본은 당분간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엔화 가치, 단기간 강세 뒤 약세 전환예상

일반적으로 재해가 닥친 나라의 통화가치는 외국투기자본의 자산 투매로 약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일본대지진 직후 엔화가치는 도리어 초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재해로 인해 천문학적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 보험사들이 해외자산을 매각해 엔화를 들여와야 하고, 자금이 필요해진 일본인들이 해외 자산을 팔며, 폭락한 자국의 주식이나 자산을 ‘저가 매수’하는 경향도 강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러한 상황을 노린 투기꾼들이 가세한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대지진 직후 엔화가치는 사상 최고치인 76엔선을 기록했고, 일본은행과 G7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80엔 부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일본 정부가 재건을 위해 대대적으로 돈을 풀 것이기 때문이다. 지진해일로 인해 일본 동북부 지역은 사실상 완전히 초토화됐다. 처음부터 다시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내수가 다시 부양될 것이다. 그간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이에 따른 내수 침체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 온 일본에게 이번 ‘재건’ 사업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다시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일본 정부는 금융완화를 위해 80조엔에 달하는 긴급 자금을 방출했고, 피해 복구에 30조엔 가량의 돈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당연히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게 되고, 엔화 가치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재정적자와 인플레 가능성

재건을 위해 일본 정부는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해외 자산을 팔거나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 해외자산 매각 후 받은 달러를 엔화로 환전하면 엔화가치가 올라간다. 현재 악화된 수출을 더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일본 정부는 국채 발행을 중심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지진 영향으로 한국 조선업계에 LNG선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LNG선들이 건조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누적 부채는 GDP의 2백%에 달하지만, 대부분의 부채를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외환위기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재건용 국채 발행은 그 한계로 점점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시중에 푼 엔화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달러가 그랬던 것처럼 신흥 개도국들의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물가 상승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제조 산업에 미치는 영향

도요다, 혼다, 닛산 등 주요 경쟁사들의 생산 중단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 다시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그동안 얻었던 ‘엔고’의 수혜를 당분간 더 누리게 되었다.

금융위기 이전 1백엔당 8백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금융위기 직후 1천6백원대까지 올라갔다가 지금까지 1천3백원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현대기아차, 삼성전자 등이 지난 2년간 기록한 사상 최대 실적의 숨은 근원이다.

반면, 일본 부품업체들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일제 부품 공급 차질로 인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반도체와 LCD 쪽에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대부분의 주요 기업들이 1~3개월 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직까지 생산 차질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일제 부품 수입이 상대적으로 많아 생산 차질에 대비해 주말 특근과 야근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일제 부품 의존도가 낮지만, 1~3차 협력업체들이 일제 부품이나 기계에 의존하는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경우, 이번 사태로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부품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하게 되면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조선 산업의 경우, 연간 2백만톤의 일제 후판을 사용해왔는데, 일본 철강업체들의 생산 차질에 따라 향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는 1~3개월 치 재고가 확보돼 있는 상황이며, 각 기업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전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일본이 LNG 수입을 대폭 늘릴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LNG 운반선의 발주가 늘어날 것이며, 이 부문에서 경쟁력이 높은 국내 조선업계에 수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철강산업의 경우 이번 대지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일본의 복구 사업에 대한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 윗 글은 노조 정책연구원에서 매달 발행하는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뉴스레터 4월호에 실린 ‘산업동향’ 글입니다.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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