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물질의 38%가 1, 2급 발암물질”
“1급 발암물질인 벤젠과 석면도 발견”
“유럽에서 금지된 물질을 우리는 1천여개나 사용”

작년 한해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가 64개 소속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발암물질 진단사업의 충격적인 결과다. 노조는 이미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진단사업 결과를 대내외에 공개한 바 있다. 노조의 발암물질 진단사업은 생산현장의 발암물질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으며,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암물질 목록을 확대 고시하는 등 일정부분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새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암물질 정보만 제공할 뿐 법적 실효성이 없다. 제도가 개선돼 현장에 적용되길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여전히 조합원 대다수를 비롯한 금속노동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의 위험성도 모른 채 발암물질로 오염된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조는 올해 단체협상으로 암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노조가 이와 관련해 올해 중앙교섭에서 사용자 측에 요구하는 것은 전 금속 사업장 발암물질 우선대체원칙 수립이다. 발암물질 우선대체원칙이란 현장에서 발암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를 안전한 물질로 바꾸자는 것이다. 다만 대체물질이 없을 경우 밀폐하거나 사용을 제한해 노출을 최소화 하는 등 엄격한 환경관리를 해야 한다.

노조는 이와 함께 직업성 암 피해자 배상과 퇴직이후 직업성 암 대책마련도 사측에 요구하기로 했다. 이 요구안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직업성 암이 발생한 경우 회사는 치료와 보상 책임을 져야 하며, 퇴직 이후 발생한 경우에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가 ‘직업성 암 대책기금’을 적립하게 하고 이를 노사가 공동 관리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 지난해 11월16일 열린 '발암물질 현장조사결과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성락 노조 기아차지부장, 박유기 노조 위원장, 이경훈 노조 현대차지부장(사진 왼쪽부터)이 "현장에서 발암물질 추방하자"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발암물질 진단 여부를 떠나 사전에 암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작업장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현장에는 발암위험성이 미처 확인되지 않거나 조사사업 과정에서 미처 발견되지 않은 제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노조는 △발암물질 조사사업 매 2년마다 의무 실시 △노조 주관 발암물질에 대한 안전교육 분기별 1회 실시 △가족의 2차 오염을 방치하기 위한 사내 세탁소, 샤워장, 탈의실 의무 설치 △사내 친환경급식 등을 사용자 측에 요구한다.

일터만 암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된 제품에 발암성 유독물질이 함유돼 있다면 노동자를 비롯해 소비자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건강하고 안전한 제품 만들기’ 노사 협약 체결을 올해 중앙교섭에서 요구할 예정이다. 배현철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 같은 요구는 회사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노조가 아니라 사측이 먼저 제기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조는 이 같은 요구들을 조합원뿐 아니라 동일 사업장내 사내하청 비정규직 및 부품업체에 대해서도 동일 적용하도록 강제할 계획이다. 공장 전체와 생산공정 전반을 바꾸지 않고서 조합원들만 암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다. 또한 이에 앞서 건강권은 원하청을 떠나 모든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한편 노조는 올해 정부를 상대로도 발암물질 문제에 대한 요구를 제기하기로 했다. 배 실장은 “현재 우리나라 직업성 암 인정 비율은 프랑스나 독일의 1/10 수준”이라며 “이는 발암물질에 대한 우리나라 법제도 수준이 유럽에 비해 많이 열악하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노조는 올해 △발암물질 노출기준 강화 및 작업장 환경 제도개선 △발암물질 목록 전면 확대 △발암물질 전면 공개 및 금지를 위한 대책 마련 △직업성 암 산재 인정 및 선진국 수준 인정기준 수립 △사업주의 발암물질 우선 대체 의무 부여 △사업주의 퇴직노동자 암 추적관리 의무화 △직업성 암 검진 의무화 등을 정부에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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