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내하도급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다.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을 보면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요구에 현대차를 비롯해 사용자들이 줄기차게 얘기해온 논리다. 과연 그럴까. 최근 고용노동부가 펴낸 연구보고서와 해외 언론 보도는 이같은 국내 사용자들의 주장을 구차한 변명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 15일 이른바 경제5단체를 상대로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는 금속노조 기자회견 때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이 '간접고용 확대는 세계적 추세'라는 정부와 자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반하고 있다. 신동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펴내고 공개하지 않은 ‘외국 사내하도급 및 파견현황과 제도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노조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폭스바겐, 일본의 닛산자동차 등 세계 자동차 업체는 간접고용 노동자 숫자를 줄이거나, 노동자 파견을 아예 금지하는 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연말 펴낸 미공개 노동부 보고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 구내식당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최근 몇 년 동안 파견노동자의 약 4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파견노동자가 투입되고 있는 공정에도 정규직과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는 폭스바겐의 ‘오토5000’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토5000’은 2001년 독일 볼스부룩에 설립된 폭스바겐 자회사다. 폭스바겐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실업률을 감안, 해외공장 생산을 중단하고 지역 실업자와 청년구직자를 고용해 5천 마르크(한화 4백 15만원)를 임금으로 지불키로 했다.

▲ 하노버 알게메인 신문 2011년 2월 23일자 기사. 이날 이 신문사는 독일 폭스바겐 산하 6개 사업장 근무 2천 2백 명 파견노동자 정규직 전환 합의내용을 싣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사용자는 이같은 프로젝트를 파견노동자 투입을 대거 활용하는 사례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폭스바겐은 2008년 11월 이후 ‘오토5000’ 프로젝트를 통해 투입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단체협약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폭스바겐은 2009년 ‘오토5000’ 노동자 4천 2백 명을 폭스바겐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독일 폭스바겐 구내식당도 직영

일본의 경우도 파견노동자를 축소하고 있는 추세였다. 고용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닛산자동차는 근로자파견법 개정으로 2004년 3월 1일부터 제조업 근로자 파견이 가능해짐에 따라 직접생산공정에 파견노동자를 투입해왔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제조업의 근로자 파견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에 맞춰 지난 해 3월 제조업 파견금지를 중심으로 한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닛산자동차는 최근 직접생산공정 파견노동자 사용을 멈추고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서는 보고하고 있다. 간접고용을 최대한 줄이고 직접고용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셈. 또한 직접고용 기간제의 경우도 엄격한 기준으로 고용하고 있다.

▲ 2010년 10월 중순 현대차 강호돈 전 사장이 고용노동부 부산지청 국정감사장 때 제출한 자료 <제조업 경쟁력과 노동유연성> 21쪽에는 도요타자동차 비정규직 규모가 정규직 대비해 점점 줄고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를 분석한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일본과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이 파견노동 및 사내하도급에 대해 보다 엄격한 규제장치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의 축소 및 정규직화 전환을 실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는 지금까지 정부와 재계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제조업 파견금지 법개정 추진

보고서 결과 뿐 아니라 실제로도 해외자동차 업체의 정규직 전환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규모와 비율이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 2005년 1만9천여 명으로 정규직 대비 29.1%였던 비정규직이 2009년 8천 7백여 명(12.2%)으로 줄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러한 추세에 대해 “일본에서 파견노동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벌인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뒤 비정규노동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도요타조차 간접고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고용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도 단체협약으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적용하고, 비정규직 규모를 제한하면서 정규직 전환 등을 시행하고 있다. 2009년 폭스바겐 산하 사업장 비정규노동자 투입조건 및 보상에 대한 단체협약에 따르면 생산부문에서 근무하는 비정규 노동자는 최소 시간당 14.52유로(한화 2만1천7백 원)의 임금을 받는다. 이는 폭스바겐 정규직 월급의 4~5등급에 해당한다. 이곳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임금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셈.

독일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철저

또한 이곳 노사협약은 비정규직의 비율을 평균 2년에 걸쳐 각 사업장 총원의 5%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협약에는 “상시적 인력이 필요할 시 해당 비정규 노동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없는 경우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프랑크푸르프 알게마인 신문 2011년 3월 14일자 기사. 신문은 지멘스(Siemens)가 지난 2009년 노사합의에 따라 향후 18개월 내로 약 2천 5백 명 파견노동자를 정규직화 예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최근 독일 자동차 업체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잇따르고 있다. 폭스바겐은 2010년 4백 여 명의 파견노동자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이어 폭스바겐 노사는 올 2월 산하 6개 사업장에 근무하는 파견노동자 2천 2백 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이외에도 독일 지멘스도 2009년 향후 18개월 내로 2천 5백 명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합의했고, 아우디는 올 해 2월 2백 명 파견노동자를 정규직화했다. 아직 구체적인 정규직화 안에 합의하지 않은 아이제나흐 지역의 보쉬(Bosch), 오펠(Opel), 제트에프(ZF) 등 6개 자동차 업체도 1년 내 정규직화 방안을 마련하고, 그 전에 파견노동자에게 정규직 임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자파견 확대가 국제 추세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사실상 증명됐다. 한 발 앞서 비정규직 확산을 시도했던 국가에서 그것이 가진 사회적 폐해와 문제를 경험하고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 운운하는 정부와 자본의 그간의 주장은 이제 근거없는 떼쓰기가 돼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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