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부 위스콘신 주를 중심으로 노동자 수십만 명이 역사상 유례없는 주 의회 의사당 점거 투쟁을 한 달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발단은 이렇다. 작년 11월 미국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난 연방 상하원과 주지사 선거에서 위스콘신 주지사로 스콧 워커라는 우파 정치인이 당선됐다. 취임과 더불어 그는 2년간 재정적자가 36억 달러에 달할 거라며 주 정부 재정의 대대적 손질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한다. 그리고 올 2월 초, 워커 주지사는 드디어 예고했던 예산개편 법안을 내놓았다.

유례없는 미국 의사당 점거투쟁

그 내용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법안 내용이 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 문제를 제외한 공공부문 노조의 단체협상권 일체 박탈하고 조합비 원천징수를 금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 노동자들 월급에서 연금 납부액과 건강보험료를 각각 5.8%와 12.6% 인상했다. 또한 지역 주민 전체가 투표로 동의하지 않는 한 물가인상률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은 불법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 위스콘신 주의회 의사당을 점거한 미국 공공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일제히 분노했다. 이들은 1959년 이래 오십년 넘게 보장되어오던 노조의 단체협상권한 박탈이 재정적자 감축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해했다. 또한 그렇게 적자가 걱정된다면서 불과 한 달 전 워커가 속한 공화당이 기업과 부자들에게 1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줄여주는 법안을 밀어붙인 건 또 뭔지 분노했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앞으로 기업과 자본가들도 물가인상률을 초과하는 이윤을 거두면 불법으로 규정할 건지 워커 주지사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17만 명의 공공 노동자 상당수의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협박이었다.

위스콘신 주지사의 노조무력화법

노동자들은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지난 2월 11일 교사, 대학강사, 환경미화원 수백 명이 위스콘신 매디슨 시내를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된 시위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 금세 몇 만 명 단위로 커져갔다. 중고등학생까지 대거 시위에 동참하는 바람에 공립학교는 일제히 문을 닫았다. 노조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농민들과 자영업자들, 이주노동자들, 지역의 프로미식축구팀 선수들까지 주 의회 의사당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선거에서 워커 주지사를 지지한 대가로 법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입은(?) 경찰관과 소방공무원들도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위스콘신 직업경찰협회의 사무총장인 제임스 팔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지사의 노조와해 공작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경찰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안다. 모든 주 경찰관들은 헌신적인 동료 공공 노동자들과 함께 도덕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이 법안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급해진 쪽은 워커 주지사의 공화당이었다. 애초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 상원에서 먼저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만, 민주당 의원 14명이 이웃 일리노이 주로 피신해버리는 바람에 정족수 미달로 실패에 그치고 만다. 그러자 공화당은 하원에 기습 상정시켜 반대토론도 없이 1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날치기 통과였다. 그리고는 다시 상원통과를 시도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을 모독죄로 체포하겠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무리수까지 두게 된다.

보수성향 경찰관까지 시위대열 합류

그런데 더 심각한 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권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비단 위스콘신 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스콘신 워커 주지사는 맨 먼저 깃발을 들고 선봉에 선 인물일 뿐이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뉴저지, 네바다, 플로리다 등 다른 주에서도 속속 비슷한 법안을 채택할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 같은 민주당 소속 주지사도 가세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일부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 왜 이렇게 공공부문 노조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미국 민간부문 노동운동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항공관제사 파업을 깡패들과 임시직들을 동원해 철저히 깨부순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뒤 오늘날엔 노조 가입률이 불과 7%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자 이제 상대적으로 강력한 결집력과 세를 유지하고 있는 교사노조 등 공공부문 노조가 그 다음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 거대한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노조만 무력화되면 그 다음엔 돈이 되는 알짜 공공 서비스와 시설들을 죄다 민영화시켜 자본과 기업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이번 반노조 법안 배후에는 스콧 워커 주지사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댔던 억만장자 코크 형제들이 있다.

반노조 법안 배후엔 자본가 조직이

워커 주지사가 임기 내에 십여 개에 달하는 발전소들을 민영화시켜 코크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트리 사에 넘겨줄 계획이란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작년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일등 공신인 티파티 운동을 국내에서는 흔히 보수 풀뿌리 운동이라고 말하는데, 이 운동도 코크 형제들이 이끄는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같은 자본가들의 조직이 그 자금을 대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들과 기업들이 보수세력을 움직여 지금의 공공노조 죽이기 작전의 전국화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마지막 주말에 12만 5천 명이라는, 미국 노동운동 역사상 유례없는 수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매디슨 시내를 함성과 피켓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주 의회 의사당 앞을 다녀간 사람만 해도 30만 명이 훌쩍 넘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시위에 합류할 거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금 미국에서는 거대 자본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총성 없는 격전을 치르고 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누가 백악관을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거리를, 공장을, 학교를 장악하느냐다”라는 미국의 역사가 하워드 진의 말을 곱씹어본다.

최재훈 / 국제연대단체 <경계를 넘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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