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회사가 설마 그럴 수 있겠냐며 느긋하게 생각했다”. 회사의 직장폐쇄 공격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1월25일 낮 3시. 직장폐쇄 등 회사의 노동탄압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유경험자’들이 대구지부 회의실에 모였다. 진방스틸, 대우버스사무직, 인지컨트롤스, 발레오만도, KEC, 상신브레이크. 직장폐쇄를 경험한 노조간부들은 “평소 조합원과의 조직사업을 잘 펼치는 게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 “조합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회사가 설마 그럴 수 있겠냐며 느긋하게 생각했다”. 회사의 직장폐쇄 공격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2010년 3월, 발레오만도 공장이 직장폐쇄로 봉쇄돼있다. 신동준

이날 ‘직장폐쇄 등 노동탄압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금속노조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은 평소 회사의 태도를 가볍게 봤다고 털어놨다. 정연재 발레오만도 지회장은 “지회 전직 간부나 회사 사외감사 회계사조차 회사가 직장폐쇄를 단행할 리 없다고 내다봤다”며 지난해 2월 16일 단행된 직장폐쇄 직전까지를 회상했다.

발레오만도는 당시 간접부서 외주와 조합원 복지부분 단체협약 32개 조항 전면 축소안을 던졌고 이에 노조가 반발하자 직장을 패쇄했다. 그리고 이곳 조합원들은 지난해 5월 19일 금속노조를 집단탈퇴했다.

“직장폐쇄는 공포 그 자체”

상신브레이크 해고자이기도 한 조정훈 대구지부 사무국장도 “회사 계열사 명의의 7천평 공장부지 신설이라는 회사 현안문제 강행을 위한 겁주기 차원의 공격으로만 봤다”며 당시 노조의 판단이 안일했다고 말한다. 상신브레이크는 지난해 8월 23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어 이곳 조합원들도 지난해 11월 26일 금속노조를 집단적으로 떠났다.

지난해 6월 30일 직장폐쇄 뒤 아직까지 노사관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케이이씨(KEC)의 심부종 지회사무장은 “23년 만의 강성 노조집행부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이는 안일한 판단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심 사무장은 “반도체 산업이므로 대체인력에 의한 생산가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 봤고 한 달이면 회사가 백기를 들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3일 징계와 손해배상 최소화라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조합원 2백 80여 명은 투쟁 장기화에 시달리고 있다.

▲ 상신브레이크 해고자 조정훈 대구지부 사무국장도 “회사 계열사 명의의 7천평 공장부지 신설이라는 회사 현안문제 강행을 위한 겁주기 차원의 공격으로만 봤다”며 당시 노조의 판단이 안일했다고 말한다. 2010년 9월15일 상신브레이크 공장 정문을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이 봉쇄하고 있다. 용역들이 경찰과 비슷한 방패와 헬멧 등을 착용하고 있다. 남수정

 직장폐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항하는 사용자의 합법적인 쟁의행위다. 그런데 이것이 최근 노동조합에게 ‘공포’ 그 자체가 됐다. 이날 워크숍 참가자들은 회사가 직장폐쇄 전후 용역깡패를 투입해 조합원 회사출입을 막았고 대체인력을 생산에 투입해 생산을 정상화 하는 순서를 밟았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임금 한 푼 못 받고 바깥으로 내몰린 조합원들이 생계 때문에 회사에 알아서 ‘백기’들게 만드는 수순이 추진됐다. 극단적인 경우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노조간부를 뺀 투쟁이탈자들이 노조를 아예 탈퇴해 버릴 정도의 공포였던 셈.

노조탈퇴라는 극단적 사례까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월 12일부터 다섯 달 간의 직장폐쇄를 경험한 인지컨트롤스 조합원들과 함께 싸운 윤욱동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누구든 별도의 직업훈련 없이도 작업에 쉽게 투입할 수 있도록 산업이 고도화돼 있는 조건에서 어느 사업장이든 직장폐쇄 카드가 꺼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회사가 직장폐쇄 카드를 꺼낸다면 그 목표는 결국 노조파괴거나 노조 ‘어용화’며 여기엔 타협이란 없다고 덧붙인다. 타협이 없다면 결국 노조의 실력이 노사간 극단적 싸움의 승패를 좌우하는 셈이다.

하지만 발레오만도의 정 지회장은 “23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노동조합이 이렇게 약할 줄 몰랐다”고 털어놓는다. 정 지회장은 이어 속 깊은 이야기도 끄집어냈다. 정 지회장은 “지회 대의원 선거구가 21곳인데 지난해 열 세 구역만 대의원이 선출됐고 이것도 많이 채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안 그랬겠지만 노조활동에 앞장서는 극소수 노조활동가 몇 명이 억지로 끌고가는 최근의 노조활동으로는 회사의 치밀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 KEC지회 심부종 사무장은 “반도체 산업이므로 대체인력에 의한 생산가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 봤고 한 달이면 회사가 백기를 들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3일 징계와 손해배상 최소화라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조합원 2백 80여 명은 투쟁 장기화에 시달리고 있다. 2010년 10월27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KEC지회 조합원들에게 식량을 넣어주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강지현

“직장폐쇄 카드 나오면 타협은 없다”

대구지부의 조 사무국장도 “지회집행부는 당시 노조 쪽이 현안문제를 일정정도 양보하면 회사가 직장폐쇄를 풀 것이라고 봤다”고 말한다. 이곳 지회는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해 2~30여일씩 파업을 벌이며 매년 임단협 노사간 ‘타협’을 해왔다.

때문에 지난해에도 여느 해처럼 노사 간 대립과 양보를 거듭하면 쉽게 타협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지회는 여느 해처럼 투쟁을 노조간부가 대리했고 직장폐쇄 뒤에도 조합원을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모이게 하는 수준이었다”. 조 사무국장이 당시를 떠올린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1998년 이래 수십년간 관성적으로 펼쳐온 교섭 및 투쟁패턴만 되풀이한 것이 ‘패착’이었다.

회사의 공격에 노조가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 지 오히려 회사 쪽이 훤히 알고 있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기형 진방스틸지회장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사측변호사와 사측노무사들이 노조 내부를 다 알 정도”라 말한다. 심지어 이 지회장은 “조합원이거나 전직 노조간부가 시간이 지나 회사 관리자가 돼 있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한다.

노조가 오래 될수록 회사 쪽이 노조활동 생리를 더 잘 알 수 있는 허점도 있다. “혹시나 해서 칼 꺼내들고 살짝 찔렀더니 푹 들어가더라”. 발레오만도의 정 지회장은 회사의 어느 관리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요컨대 노조의 역사와 그 노조의 실력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최근 회사의 직장폐쇄 카드에 노동조합이 무너졌거나 위태로워진 발레오만도, 케이이씨, 상신브레이크 등도 모두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모두 20여 년 동안 지난해와 같은 회사의 극단적인 공격은 없었다. 바깥에서 보기엔 그저 평화로운 노사관계였다.

노조역사=노조실력, 절대 아니다

한편 경기지부 윤 수석부지부장은 인지컨트롤스지회는 5개월간의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20여명만 이탈하고 1백 여명의 조합원이 조직력을 유지했다고 전한다. 결국 회사로 하여금 지난해 5월 13일 직장폐쇄를 조건없이 풀게 만들었다.

인지컨트롤스지회는 지회 출범과 동시에 1백 여 명의 조합원 중 17명의 대의원을 뽑았고 대의원 구역별로 소의원 한명씩 더 둬 모두 40명이 노조간부가 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직장폐쇄 내내 이들 40명은 매일 점검시스템을 갖고 매주 토요일 회의를 통해 회사의 각종 회유 및 협박 등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씩 전체 조합원 교육도 펼쳤다.

▲ 인지컨트롤스지회는 지회 출범과 동시에 1백 여 명의 조합원 중 17명의 대의원을 뽑았고 대의원 구역별로 소의원 한명씩 더 둬 모두 40명이 노조간부가 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직장폐쇄 내내 이들 40명은 매일 점검시스템을 갖고 매주 토요일 회의를 통해 회사의 각종 회유 및 협박 등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씩 전체 조합원 교육도 펼쳤다. 2010년 1월12일 경기 안산 인지컨트롤스가 직장폐쇄를 단행하자 인지컨트롤스 안산지회 조합원들이 공장 정문 앞에 모여 출입을 막는 용역강패들과 대치하고 있다. 조건준

 아울러 이들은 직장폐쇄 내내 이들이 있는 경기도 반월시화공단 20만 노동자를 상대로 선전전도 펼쳤다. 이들이 당시 지역주민을 상대로 한 주장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공단 미조직 노동자 전체가 당하는 고통이니 우리가 반드시 이기겠다”는 기조였다. 사업장 바깥과 효과적으로 소통해 여론화하는 투쟁도 벌인 셈이다.

포항의 이기형 진방스틸지회장도 “투쟁의 필수요건은 조합원 토론이었다”고 강조한다. 진방스틸지회는 투쟁전술을 노조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잡아 조합원에게 알려주는 방식보다 조합원들이 그 전술을 제출하도록 전조합원 토론을 만들었다.

이 토론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임금을 받는 조합원과 그렇지 못한 조합원이 서로 임금을 나눠쓰자고 제출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결국 지회 조합원들은 2008년 9월과 2009년 12월 두 차례에 걸친 회사의 직장폐쇄를 극복했다. 이들 조합원들도 새벽 6시마다 지역시민을 상대로 한 선전전에 죄다 나올 정도였다. 진방스틸지회는 2002년 설립됐다.

회사탄압 극복한 ‘젊은’ 곳들

결국 일부 노조 간부만의 투쟁에 국한됐던 ‘노땅’들은 무너졌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조합원 전체가 함께 싸웠던 ‘젊은 곳’은 회사 탄압을 극복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시연 경주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회사가 비집고 들어올 조직력의 허점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며 “노동조합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큰일나겠다고 여길 만큼 평소 조직활동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기지부 윤 수석부지부장도 “노사간의 싸움은 결국 조직력 싸움”이라며 “회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각종 탄압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노조가 자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두 처음 노조 만들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대우버스 사무직들의 직장폐쇄 사례도 전하는 뜻이 크다. 이창배 노조 조직국장은 “이들은 회사 전산망과 부품조달 관리자들이어서 누군가 대신와서 대체인력으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전한다. 회사는 결국 2009년 1월에 직장폐쇄 하고 일주일만에 철회했다.

신시연 경주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결국 사무직 등 비조합원의 문제도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생산직이 떠난 자리를 대체해 쉽게 생산에 투입될 수 있는 조건이 생산직 중심의 노조탄압 빌미가 되기도 한다. 2011년 복수노조 시대를 맞이해 대부분 비조합원일 것이 뻔한 사무직 노동자들을 관성적으로 ‘적’으로 치부하고 말지 고민이 짙어져야 하는 시기다.

이날 워크숍을 진행한 송보석 금속노조 조직실장은 “노동조합 일상활동의 성과는 결국 위기상황에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민주노조 운영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11년을 시작하는 지금. 점검해야 할 게 참 많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초창기 때의 활동을 다시 들춰볼 일이다. 이날 워크숍 참가자들은 일제히 “직장폐쇄 등 노조탄압은 어느 사업장이든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운 노사관계인 듯 보이는 전국의 많은 사업장들은 과연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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