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사관 앞. 차가워진 바람을 버텨가며 11일째 아스팔트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닥에 스폰지 몇 장을 깔아놨지만 저녁이 되면 온 몸에 서늘함이 밀려온다. 노숙 농성이지만, 농성장에 필히 갖추어야 할 천막조차 없다. 대사관 앞이라 1인 시위 밖에 허용되지 않아 천막도 치지 못한 채 홀로 버티고 앉아있어야 한다.

▲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비닐을 덮고 노숙을 하고 있다. 김용욱/<참세상>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는 투쟁 1년을 맞았던 지난 10월 27일부터 프랑스 대사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6년간의 싸움을 해 왔던 기륭전자, 1500일 농성중인 재능교육, 150일간 현대기아차 앞에서 농성을 벌였던 동희오토 등의 장기농성장이 많아지는 만큼 1년 투쟁, 또는 10일 농성은 주목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발레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앉았을 때부터 그들의 삶은 다른 해고 노동자와 똑같은 절박함에 시달렸다. 겨울에 접어들며 밤새 싸늘해진 바람을 맞는 것 역시 똑같이 고통스럽다.

대사관 앞 농성장을 찾으니, 빨간 담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택호 지회장에게 ‘춥지 않느냐’고 묻자 “이제 추위도 단련시켜야지요”라며 웃는다. 일본과 프랑스 원정투쟁, 그리고 전국 도보투쟁을 마치고 프랑스 대사관 앞에 자리를 잡은 이택호 지회장. 그에게 지회가 만들어가고 있는 초국적 자본에 대한 투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발레오의 기만, 한국은 노동자 탄압 성지?

프랑스 발레오 자본에 맞서 투쟁한 지 1년. 사실 해고 투쟁은 1년째지만, 발레오에 맞서 싸운지는 벌써 5년째로 접어들었다. 2005년, 프랑스 발레오 자본이 충남 천안에 위치한 발레오공조코리아를 인수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노조탄압에 나섰다.

급기야 지난 2009년,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다가 결국 노동자 전원 해고를 결정했다. 공장 폐업에 따른 해고였다. 하지만 발레오 자본은 발레오공조코리아를 인수한 후 수년간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였다. 폐업 과정역시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폐업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와 노조는 2005년을 전후해 분위기의 반전을 경험하게 됐다. 초국적 자본에 대항하는 노조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노조가 1990년 2월 1일에 처음 출범했어요. 충남지역에서의 최초의 민주노조였죠. 전노협부터 시작해서 민주노총 출범, 산별노조 출범도 함께 지켜봤어요. 그래서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당연히 사측에서 노조를 길들이기 위한 시도도 있었고, 초창기 노조를 만들 때 갈등도 있었고, 쟁점 사안에 관련한 투쟁이나 정치파업도 일 년에 두 번씩은 있기는 했지만 사측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위기였어요. 사측과 노조 각각 1년에 2번 노조 체육대회와 1박 2일 야유회가 있었어요. 때문에 사무직들과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고, 가끔 술도 마시고 지냈어요.

노조는 노조 나름대로의 공동체 문화가 있어서, 조합원사무실 앞에 모여 운동도 하고, 쟁의때 천막투쟁에서도 2-3개월 조합원들이 함께 꼬박 투쟁하고 그랬어요. 저희 사업장이 드물게 100% 정규직 사업장이었거든요. 근속년수가 15정도 돼요. 안정적이기도 하고, 조합원들 사이의 끈끈한 문화가 있어서 한 번 들어오면 잘 나가지 않는거죠.”

하지만 발레오 자본이 공장을 인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사를 비롯한 노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그 전까지의 싸움이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을 받기 위해 싸웠던 것이라면, 발레오와의 싸움은 ‘노동자’라는 자기존재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 발레오 노동자들이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김용욱/<참세상>

“발레오는 들어오자마자 인원조정, 비정규직화를 실시한다고 발표했고, 비용 절감을 한다고 복지비용을 절감시켰어요. 심지어 회식비까지 일방적으로 자르고, 단협까지 중단시켰죠. 그들은 우리를 절대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사무직 직원들의 멱살도 잡았어요.

발레오 자본의 자체 헌장을 보면 민주노총의 강령에도 뒤지지 않을 내용들이예요. 소수자들의 인권을 비롯해, 협력회사 노동자 노동권 까지도 언급을 한다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은 노동자를 탄압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국에서는 노동자에게 어떤 대우를 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노동자들을 무시해요. 때깔이 덜 하얘서 그럴까요?

그들은 들어와서 곧바로 회사 운동장을 20억에 팔아치웠어요. 불용자산이라는 거죠. 심지어 노동자들의 기숙사까지 문제 삼았어요. 사무실의 컴퓨터부터 복사기, 가구까지 모조리 렌탈이었고, 그들은 단지 도장 하나를 가지고 다니면서 서류에 도장을 찍기만 했죠.

그 나라에서는 노동권을 존중하고, 단체협약의 합의 내용을 성실히 준수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할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니잖아요. 대통령부터 외자유치를 한다고 나서지만 그들을 강제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역사업운동’에서 ‘프랑스원정투쟁’까지

1년 전, 이택호 지회장의 집으로 퀵서비스 배달원이 서류 한 통을 배달해 왔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은 그 서류에 싸인을 했다. 아들이 싸인을 한 그 서류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해고통지서였다.

발레오자본은 지난 1년 전, 일방적으로 공장을 폐업한 뒤 노동자들에게 문자와 퀵서비스로 해고를 통보했다. 공장 폐업의 이유조차 노동자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발레오 자본은 일명 ‘먹튀’의 사례로 꼽혔다. 그들은 2005년 공장 인수 뒤, ‘브랜티 지급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월 매출액 3.9%를 송금해 왔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은 140여 명의 조합원들은 초국적 자본을 향한 투쟁을 시작했다. 자국의 기업을 상대로 한 투쟁이 아닌 만큼, 그 내용과 방식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택호 지회장은 지금까지의 견고한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지역연대사업’을 꼽았다.

▲ 이택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장. 김용욱/<참세상>

“산별노조나 현장조직의 활동의 대안이 지역운동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실천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노동운동이 지역과 함께하지 않을 때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지회는 지속적으로 지역적 사업과 결합해 왔어요. 조직내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제 정당들과 대화를 하며 이런저런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죠. 그래서 저희 사업장에는 정치부에서 지역연대와 관련한 전담부서를 가동시키기도 했어요. 그래야 기업을 넘어설 수 있는 산별노조의 근간인 지역운동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지역대책위에는 지역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민주당 등의 제 정당과 학부모단체, 여성단체, 농민회 등 200여 개의 단체들이 결합 돼 있어요. 엊그제도 농성장에 대책위가 다녀가기도 했는데, 함께 지역적으로 묶여 있으면 많은 힘이 돼요.

이들이 나서서 지방정부 단체장들의 항의서한을 프랑스 발레오 본사로 전달하기도 하고, 임시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 발레오 자본을 규탄하기도 했어요. 저희 지회가 지금 지역 여론을 선점하고 있는 입장인데, 이 역시 지역연대사업이 발판이 됐습니다. 지역 언론을 비롯한 여론에서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어요.”

현재 발레오 지회는 지역연대사업과 프랑스 원정투쟁, 그리고 프랑스 정부를 압박하는 투쟁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특히 프랑스 원정투쟁의 경우, 초국적 자본에 맞서는 국제연대투쟁으로 발전하고 있어 많은 관심과 집중을 받고 있다. 지회는 벌써 4번째의 원정 투쟁에 나선 상태다.

“프랑스 원정투쟁으로 성과가 나타났냐, 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너무 답답하죠. 성과가 있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단시간에 발레오가 백기를 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때문에 지금 우리의 원정투쟁은 가시적 성과를 내는 투쟁이라기보다는, 국제적 거점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프랑스 원정투쟁에서 얻은 가치라고 한다면, 국제연대운동의 희망을 봤다는 것이고 또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각국의 노동운동 세력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합원들도 현장에서 피부로 각국의 노동운동을 느끼고 있어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원정투쟁을 진행하며, 프랑스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역시 프랑스나 일본에서 주시하고 있어요. 미디어충청에서 나온 쌍용차 77일간의 투쟁과 관련한 책을 그들에게 주기도 했는데, 많이 놀라더라고요.

연대 행동도 많이 했어요. 학생 단체나 노동운동 단체들의 세미나도 참석했고, 같이 토론을 하기도 했어요. 발레오 노사협의회에서도 한국의 발레오 정상화를 문제시 했고, 각 사업장별로 합의서명을 받아 발레오그룹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르노자동차 역시 적극적으로 연대해줘서 간담회를 열기도 하고, 집회를 같이 하기도 했어요. 정말 국제 노동자들의 연대 가능성을 본거죠.

발레오 공장이 정상화되면 꼭 아시아 발레오 평의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유럽평의회와 함께 활동하고 싶고요. 초국적 자본에 대항하는 싸움은 이렇게 연대를 통해 힘을 쌓아야만 가능합니다.”

“조합원들과 저는 끝까지 갑니다”

발레오 자본에 의한 180여 명의 해고. 그들 중 지회 소속 조합원들만 14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투쟁 1년이 지나가면서 조합원 수는 79명으로 줄었다. 물론 이례적이도록 많은 인원이 조합을 떠나가지 않고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조합원이 떠날 때 마다 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속앓이를 했다.

남아있는 79명의 조합원들은 오늘도 공장 점거, 1인 시위, 집회, 출근투쟁, 연대투쟁, 도보 투쟁, 노숙 농성 투쟁 등을 벌이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이 유독 정이 많아요. 뭐 특별히 목소리가 큰 사람도 없고 고만고만하게 어울리며 서로를 위해요. 저 역시도 특출한데 하나 없는데도 지회장을 하면서 조합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 중심에는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애정이 있었고요.

▲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 김용욱/<참세상>

원래 작년 9월 30일이 제 임기가 끝나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작년 9월 임시총회에서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제가 지회장을 맡기로 결정이 됐어요. 조합원들 덕분에 이제 저와 조합원들은 끝까지 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이 전국 투쟁 사업장을 무지하게 다녔어요. 조합 교육이나 간담회도 많이 참여했고요. 그러고보면 조합원들이 정말 정세판단을 잘해요. 작년 쌍차때도 사실 우리 사업장도 어려우니까, 결합하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죠. 그런데도 해야하지 않겠냐고 독려하고, 또 그렇게 결정이 나면 현장 조합원들은 모두 결합해요. 정말 조합원들은 결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뭐든지 다 해줘요.

물론 현장을 떠나는 조합원들을 보면 가장 힘이 들죠. 20년을 같이 했던 동지들인데요... 그런데 떠난 동지들은 무엇보다 생계가 어려워서, 또는 가정에서의 트러블 때문에 떠나는 거예요. 1년을 꼬박 투쟁만 하니,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거죠. 그래서 조합원들도 아프지만 이해합니다. 떠난 조합원들도 노조 울타리를 벗어나면 그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떠올릴거예요. 이 투쟁이 끝나면 우리 함께 조합활동 했던 동지들 모두 모아서 소주라도 같이 마시고 싶습니다.”

투쟁이 1년 이상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발레오 지회는 여전히 희망적인 승리를 꿈꾸고 있다. 이택호 지회장은 “이 싸움으로 반드시 회사가 정상화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지회장 뿐 아니라,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조합원들 역시 의지로 가득 차있다. 이는 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자본의 공격에 대해 노동자가 당연히 싸워야 한다는 것이 이 싸움의 의미가 아닐까요? 원래 노동자는 자본에 대항해 저항하고, 싸우는 주체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투기자본을 고발하고 현장 투쟁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발레오 자본은 분명 신종위장폐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에서 완성차에 자동차용 에어컨 컴프레셔 영업과 판매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먹튀’와는 분명히 다른 ‘신종위종폐업’입니다. 무엇보다 이를 진상규명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역연대운동부터 프랑스 원정투쟁, 그리고 지금 프랑스 대사관까지 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농성 투쟁은 한국정부와 프랑스정부가 직접 나서서 발레오와의 교섭을 추진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위장폐업을 진상규명하고, 발레오로 인한 프랑스 반감 형성을 해결하라고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G20을 앞두고 프랑스와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투쟁을 벌일 겁니다. 11월 9일, 한국에서의 집중투쟁에 맞춰, 프랑스 원정투쟁단도 집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정말, 공장이 정상화 되는 날까지 우리 끝까지 가볼 것입니다”  윤지연 기자. 참세상(www.newscham.net)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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