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번호

대법원 2023. 6. 9. 선고 2017도9835 판결

2. 사실관계 요지

2014년 초 한국철도공사는 이례적으로 700여 명의 직원들을 순환전보하겠다고 일방 발표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은 인력 부족, 위험 증대, ‘보복전보’, 절차상 하자 등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전보대상자였던 조 아무개 조합원이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철도노조 전 간부이던 이 아무개, 유 아무개는 노조에 일체 알리지 않은 채 한국철도공사 조명탑에 올라 순환전보 철회 농성을 시작했다. 이 농성자들(이하 ‘정범들’)의 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와 건조물침입의 유죄가 확정됐다.

피고인들은 위 정범들의 동료들이자 철도노조 간부들이다. 피고인들은 정범들의 농성 시작을 알고, 그 아래 천막을 설치하고 정범들이 내려올 때까지 지지 집회, 음식물 제공 등의 행위를 했다. 피고인들은 정범들의 범행을 도왔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방조’로 기소됐다.

3. 판결 요지

1심은 유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피고인들과 정범들의 행위 목적이 순환전보 반대로 동일했던 점, 피고인들의 행위 장소는 정범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인 점을 들었다. 항소심은 양형과다를 이유로 1심을 파기했으나 유죄 판단은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받아들여 아래의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다.

① 정범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으로 기여하지 않고 단지 밀접한 관련이 없는 행위를 도와준 것에 그친 경우  방조가 성립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또한 노동 삼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이에 조력하는 3자의 기본권(표현의 자유, 일반 행동의 자유 등)이 위축되지 않도록 업무방해 방조의 성립 범위를 신중히 판단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② 나아가, 정범들이 피고인들과 무관하게 농성을 계획하고 실행한 점, 피고인들의 천막 설치·집회 개최는 표현의 자유, 일반 행동의 자유, 단결권의 보호 영역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정범들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들이 정범들에게 음식 등을 전달한 것은 생존과 안전을 위한 것이었던 점 등에 비춰 피고인들의 행위는 방조죄에 이를 정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4. 시사점

① 위 판결 선고  2년여 전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 최병승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5도12632 판결).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은 업무방해 방조에 대한 신중한 해석을 제시했다. 다만 공소사실의 일부에 대해 방조를 부정했다. 반면 이 사건에서 같은 법리를 반복하면서 근접 거리 지지 발언, 집회 등 행위에 대해 방조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더 엄격하게 판단한 의의가 있다.

② 나아가 대법원은 피고인들 행위의 목적이 정범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방조라고 보지 않고, 그 행위가 정범들의 범죄 실현에 현실적인 기여를 했는지 판단했다. 이 때 피고인들의 기본권 보호 영역을 고려했다. 방조죄를 폭넓게 인정하면 조력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노동3권이 터잡고 있는 단결과 연대(3자의 조력에 열려 있는)의 규범을 고려한 의의가 있다.

③ 마지막으로, 방조의 구체 내용을 살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전한 물자는 식사, 좌변기, 음료수, 떡, 물티슈, 연습장, 볼펜, 안약, 책, 신문, 세탁물 등 생명과 존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다. 대법원은 이에 비춰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범들의 생존과 안전 유지, 확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봤다.

이번 대법원 판례는 헌법정신과 노동 삼권의 보장 취지에 부합한다. 피고인들은 동료들의 안위를 챙겼다는 이유로 기소됐고 9년 만에 대법원판결을 받았다. 이름도 낯선 ‘업무방해 방조’라는 죄명을 노동3권의 세계에서 손쉽게 휘두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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