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화)부터 10일(수)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세계 제조업 노조들의 국제연맹인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인더스트리올)이 정보통신기술-전기전자업종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하노이 회의에 한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의 노조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40여 명이 참석했다. 금속노조에서는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 이현석 전략조직국장,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참가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주로 국내외 전기전자산업 변화와 노동조합 조직화 사례를 발표하고, 한국의 삼성 사례와 같은 노조 탄압 상황과 그에 맞선 투쟁, 그리고 국제 연대 방안도 논의했다.

금속노조 참가단은 전기전자업종 정보 공유와 조직화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금속노조는 이번 회의를 통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그에 맞선 노조 확대 사례, 반올림의 활동과 삼성의 노동안전보건환경문제를 알렸다. 더불어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에게 삼성에 맞선 국제 연대도 제안했다.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회의장 안팎에서 한국 발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글을 통해 바로 그 한국의 삼성 사례에 관심을 표명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과 우리 참가단의 교류를 소개하려 한다.

미국, 네덜란드, 베트남 노동운동가들의 열정과 자부심

가장 먼저 소개할 노동운동가는 미국노총(AFL-CIO)의 전기-통신노조(IUE-CWA)에서 활동하는 젊은 조직가다. 미국 전기-통신노조는 통신, IT, 발전, 항공, 전기·전자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40만 명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최근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동자들도 가입했다고 한다.

그 조직가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전기-통신노조는 국내 산업 부흥을 위한 바이든 정부 입법안에 개입하고 있다. 전기-통신노조는 정부 산업 정책의 변화를 분석해 에너지, 교통, 반도체 기업을 전략 조직화 대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근 전기-통신노조는 GE 미국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노조 차원의 캠페인을 전국에서 벌이는 등 현장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행동으로 GE 노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 최근 GE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및 임금 인상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하노이 회의 첫날에 박경선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삼성 사례 발표를 마치자마자, 그 젊은 조직가와 인더스트리올 전기전자업종 담당 국장이 우리 자리에 찾아와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들은 한국 삼성 노동자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노조를 결성한 계기가 무엇인지, 삼성에서 조합원들이 노조 가입 사실을 공개하고 있는지, 현재 삼성 조합원들의 활동이 어느 정도인지, 노조 결성에 불리한 미국의 노조 결성 투표와 같은 제도가 한국에도 존재하는지, 삼성의 노사협의회를 어용 노조로 보면 되는지 등을 질문했다.

앞선 질문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미국 전기-통신노조의 조직가가 하노이 회의 둘째 날에 한국 참가단 테이블로 찾아와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금속노조 참가단은 당일 현지 공항 방문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1시간이 넘도록 그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 동안 정신없이 이어지던 회의들과 달리, 다소 편안한 분위기에서 한국과 미국의 노조 활동 전반에 관해 서로 묻고 답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조합원들이 ‘조합비를 냈으니 대신 해결해주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은 '연대 먼저’(Solidarity First)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냥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우리도 ‘노조 간부가 조합원들을 대신해서 모두 해결해주며 조합원들이 수동화되는 노조, 소위 ‘자판기 노조’가 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답변했다.

우리 참가단은 미국 노동절이 세계 노동절과 날짜가 다른데(미국은 9월 첫째 월요일이 노동절이다) 세계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에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했다. 그 미국 조직가는 ‘미국은 대부분 노동조합이 5월 1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올해 5월 1일 자신과 GE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했다’라며 직접 당시 사진을 보여줬다.

그 외에도 한국과 미국의 높은 물가 문제, 각 나라 청년들의 주거 문제, 미국 스타벅스 노조의 현황 등을 서로 묻고 답했다. 30대 초반의 그 젊은 조직가가 혼자 먼 길을 날아와서(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출발해서 텍사스주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일본 도쿄에서 갈아타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까지 32시간 걸린다) 하노이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미국노총 통신노조 활동가와 네덜란드 굿일렉트로닉스 연구자들과 한국 참가단이 간담회를 진행했다.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를 노래한 판소리 공연 파일이 담긴 USB와 설명문을 미국 노조활동가들에게 전달했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미국노총 통신노조 활동가와 네덜란드 굿일렉트로닉스 연구자들과 한국 참가단이 간담회를 진행했다.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를 노래한 판소리 공연 파일이 담긴 USB와 설명문을 미국 노조활동가들에게 전달했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이 '금속노조의 삼성 조직화 방향과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해당 사례는 다른 국가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박경선 노조 부위원장이 '금속노조의 삼성 조직화 방향과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해당 사례는 다른 국가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베트남노총 국제국장과 함께 한 한국 참가단. 박경선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전태일 열사를 노래한 판소리 공연 파일이 담긴 USB와 설명문을 베트남노총 국제국에 전달하고, 간담회를 했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베트남노총 국제국장과 함께 한 한국 참가단. 박경선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전태일 열사를 노래한 판소리 공연 파일이 담긴 USB와 설명문을 베트남노총 국제국에 전달하고, 간담회를 했다. 이현석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국장

두 번째로 소개할 사람들은 굿 일렉트로닉스(Good Electronics)라는 시만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2명의 네덜란드 연구자다. 굿 일렉트로닉스는 전자산업 노동환경 개선, 노동권 촉진, 환경 보호를 목표로 하는 국제단체다. 하노이 회의에서는 그중 한 연구자가 세계 반도체 산업 변화와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을 발표했다. 특히 최근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조립과 테스트, 패키징과 같은 노동집약 공정을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등으로 더 많이 아웃소싱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세기 석유와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 고조처럼, 21세기는 반도체와 대만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 대만, 한국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발표 이후 반도체를 둘러싼 변화와 지정학적 긴장을 ‘노동이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느냐’라는 토론이 이어졌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열정적인 조직가처럼, 네덜란드의 두 연구자도 둘째 날 이상수 반올림 상임 활동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우리 한국 참가단 자리에 찾아왔다. 그들은 이번 회의 전부터 한국의 반올림과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만약 반올림 활동가가 이번 하노이 회의에 오는 줄 알았다면 간담회를 미리 요청했을 것”이라며, 우리 참가단에게 따로 간담회를 할 수 있냐고 문의했다.

짧은 일정 동안 우리 참가단은 영어로 열리는 7개의 회의 참여, 3번의 간담회 진행, 현지 공장 방문으로서 지쳐버려, 아쉽게 네덜란드 연구자들과 따로 간담회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올해 10월에 열리는 국제 배터리 공급사슬 회의나, 12월 진행될 인더스트리올 회의 때 만나자고 말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노동운동가들은 베트남노총(VGCL) 국제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노조 간부들이다. 베트남노총 국제국은 국장을 포함해 8명이라고 한다. 베트남노총의 국제 활동 역량 투여가 참 인상 깊었다. 이번 하노이 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 국제국 간부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젊은 노조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트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베트남은 언제나 제국(중국, 몽골, 프랑스, 미국)에 맞서 싸우며 독립을 지킬 수 있었고, 자신들이 전쟁에 이긴 뒤 언제나 상대 국가에 친하게 지내자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라고 자부했다. 물론 그들은 ‘전쟁 이후 친하게 지내는 나라 중에는 한국도 있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덕분에 서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베트남의 젊은 노조 간부들은 베트남 여성들의 사회 위치와 역할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베트남 전통 신앙인 '엄마 신'(Mother Goddess) 이야기로 시작해서, 천 년 전 중국에 맞서 베트남을 지킨 두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 베트남 독립 전쟁 시기 여성 혁명가들 이야기까지, 마지막으로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베트남 여성 박물관에도 꼭 방문해보라며 추천했다.

한 간부는 자신의 딸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인 블랙핑크에 빠져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들이 회의 중 발표한 베트남 전기전자산업의 성장과는 별개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삼성, LG 등)의 명암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누지 못해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간담회 끝에 한 간부가 ‘우리는 한국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니, 다음에 또 베트남에 방문하라’라고 말해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한국 민주노조의 ‘국제 연대 사업’ 강화 필요

이번 하노이 회의에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을 만나면서, 한국 민주노조의 역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적해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번 회의에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은 인더스트리 4.0, 공정한 전환, 전기전자산업, 배터리와 반도체 조직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그에 비해 한국 민주노조는 이미 구체적인 사업과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단계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삼성 사례 발표가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다른 나라 노동운동은 다소 활력이 떨어져 있거나, 국가에 의해 노조 설립마저 탄압받는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었다. 노조를 만들었더니 노조 임원을 구속한다든가,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진출한 독일, 일본 등의 기업 경영진이 노조를 아예 무시하고 탄압하는 등 다양한 노조 파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하노이 회의 참가 이후, 국제 사업에 한국 민주노조의 역량 투여가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반도체, 배터리 등 전기전자산업을 둘러싸고 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이미 현실에서 그 국제적 긴장은 극렬하며, 한국 정치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민주노조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때다. 한국은 지금보다 더 많은 역량을 국제 연대에 투여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 노조들과 투쟁과 승리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한국 민주노조가 ‘아시아 노조 전략 조직화 네트워크'를 제안해, 정기적인 회의와 조직화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노이 회의 둘째 날 삼성 사례 발표 이후, 인도네시아 금속노조 참가자가 우리 참가단에 질문했다. “인도네시아의 삼성 공장에서 노조 설립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한국은 어떻게 가능했나?”

우리 참가단은 지난 10년을 설명했다. “그동안 수천 명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연대. 반올림과 같은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진보 정치인들, 지식인들, 활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부정부패로 인한 구속과 촛불 집회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삼성 노동조합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인도네시아에서 삼성에 맞선 투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한국의 민주노조도 언제나 여러분과 연대하고 돕겠습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 참가단의 사례 발표와 회의장 안팎에서의 대화가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란다. 다음에 이 같은 국제 연대의 자리가 다시 마련된다면 한국 기업이 진출한 다른 나라의 노조와 우리 민주노조가 더 깊이 있는 대화, 더 너른 연대를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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