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한 문서의 제목이나 특정 제도의 고유한 명칭을 인용하는 것이 아닌 경우 현행법의 사용례에도 불구하고 ‘근로’를 ‘노동’으로 변경하여 서술하였음.


Q1. 요새 윤석열 정부의 ‘과로할 자유’ 노동시간 제도 개악안이 뜨겁던데요?

A1. - 네 맞습니다. 지난 3월 6일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이하 「개편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제도개편 방향은 크게 6개의 입법과제, 4개의 캠페인 등 행정과제, 5개의 연구과제로 나뉩니다. 

- 입법과제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근로자 건강권 보편화), 근로자대표제 정비,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선택근로제 확대, 탄력근로제 실효성 제고, 휴게시간 선택권 강화 등입니다. 

- 행정과제는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야간근로 건강보호 강화, 휴가 활성화, 일‧생활 균형 문화 확산 등입니다. 

- 연구과제는 ‘연결돠지 않을 권리’ 논의 착수, 근로시간 적용 사각지대 해소, 연차휴가 개편 검토에 행정과제와 중복해서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2. 과제들의 표제만 들으면 그럴 듯한 거 같은데요?

A2. - 아닙니다. 일부 개선 사항이 끼워팔기처럼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나빠집니다. 나빠지는데 포장만 그럴싸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 이번 「개편방안」은 집중·압축노동을 일반화하고 과로 위험을 증가시키며 사용자가 사업장 노동시간 제도를 개편하기 쉽게 만들고 노조 특히 과반수 이상 조직된 노조의 권한을 무력화합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방안입니다. 노동자를 자본의 돈벌이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자본의 노동시간 통제권만 확대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은 크게 악화됩니다. 조직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사업장 내의 노사갈등, 노노갈등을 부추킵니다.

- 입법과제와 행정/연구과제는 매우 불균형하게 제출되어 있습니다. 강제력을 갖게 되는 입법과제는 대부분 사용자에게 유리한 것들입니다. 반면에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는 행정과제와 연구과제는 대부분 강제력이 없는 방식으로 제출되어 있습니다. 정권이 법을 다루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Q3. 그러면 노동시간 개악이 완료된 것인가요?

A3. - 아닙니다. 지금은 입법예고를 한 상태입니다.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는 정부입법 과정은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국회 제출, 국회 심의와 의결 등을 거쳐야 합니다. 입법예고는 법령을 제정·개정·폐지하는 경우에 입법안의 취지와 주요 내용을 미리 예고하여 국민의 의사를 사전에 수렴하는 절차입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일 이상의 기간을 두고 입법안의 취지, 주요 내용 등을 관보·공보나 인터넷·신문·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야 합니다.

- 지난 3월 6일부터 오는 4월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입니다. 이후 6~7월에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여름까지 정부 내의 심의를 거칠 것입니다. 아직 국회에 제출할 정부안이 정부 내에서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입법예고 기간에 의견을 수렴해 정부안이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목소리를 모아야 합니다.


Q4.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선택근로제, 탄력근로제가 헷갈립니다.

A4. -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개편방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노동법의 노동시간 규율 체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헷갈릴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 노동시간 체제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체제는 법정노동과 연장・야간・휴일노동의 2단계로 구성됩니다. 법정노동을 유연하게 만드는 방식은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와 관련이 있고, 이번에 가지고 나온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연장노동을 유연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모두 노동시간 규제를 유연화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요건과 효과가 다릅니다. 

- 법정노동은 1층, 연장노동은 2층으로 비유해 보면 이해가 더 잘될 수 있습니다.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는 일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노동을 유연화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1층을 흔드는 것이고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주 12시간의 연장노동을 유연화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2층을 흔드는 것입니다. 먼저 기존에 도입되어 있는 법정노동 유연화부터 살펴보고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연장노동 관리단위 확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Q5.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는 어떤 것인가요?

A5. - 우리나라의 법정노동 체계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 체제입니다.(근로기준법 제50조) 하나의 노동일에 몇 시간 노동을 하는지, 하나의 노동주에 몇 시간 노동을 하는지를 규율합니다. 매일 그리고 매주 칸막이가 처져 있는 것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에 우리나라가 주52시간 노동제라는 얘기가 많이 돌았는데 이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주40시간 노동제입니다.

- 탄력근로제는 2주, 3개월, 6개월 등 단위기간을 평균해서 주 40시간을 지키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넘게 노동을 시켜도 된다는 제도입니다. 그렇지만 한도가 있습니다. 단위기간이 2주 이내인 경우에는 주48시간, 단위기간이 3개월 이내거나 6개월 이내인 경우에는 주52시간을 넘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연장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입니다. 

- 여기에 연장노동을 더하면 단위기간이 2주 이내가 아닌 경우 최대 64시간 노동을 하는 주가 생깁니다. 탄력근로제로 한 주에 52시간을 몰아 넣은 다음 연장노동 12시간을 더한 것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하면 현행 제도만으로도 최대 40주 연속으로 64시간 노동할 수도 있습니다. 단위기간을 6개월(26주)로 두고 주 40시간의 소정노동시간 합의를 20주 동안 52시간, 6주 동안 0시간으로 하면 26주 평균이 40시간이 됩니다. 이때 52시간 노동하는 20주에 12시간의 연장노동을 더하면 20주 동안 64시간, 나머지 6주 동안 0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단위기간을 두 개 붙여 전반부 6개월은 뒤쪽 20주, 후반부 6개월은 앞쪽 20주에 64시간 노동을 할 수 있습니다. 미친 소리 같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3개월 이내까지였을 때 고용노동부가 직접 이런 식의 사용 예시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선택근로제는 원칙적으로 1개월, 예외적으로(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 3개월의 정산기간을 평균해서 주 40시간을 지키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넘게 노동을 시켜도 된다는 제도입니다. 탄력근로제는 1주 48시간 또는 52시간 한도가 있지만 선택근로제는 1주 노동시간의 한도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매주 월, 화, 수요일에 13시간, 13시간, 14시간(합계 40시간)을 노동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가능합니다. 칸막이가 없기 때문에 악용되면 매우 위험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요건이 좀 더 까다롭습니다. 먼저 취업규칙에서 ‘업무의 시작과 종료를 노동자의 결정에 맡긴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실제로도 매일의 노무제공이 노동자 개인의 의사에 맡겨져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가 있어야 시행할 수 있습니다.

- 1개월 정산기간의 선택근로제는 노동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 조항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면 새벽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반에 퇴근하는 생활(13시간 + 휴게 1.5시간)을 첫째 주, 둘째 주에 6일씩 몰아서 하더라도 셋째 주, 넷째 주에 출근하지 않도록 하면(총 156시간)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1달 28일 가정, 160시간 이내) 사실 이론적으로만 하면 더 많은 시간을 계산해 낼 수는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선택근로제가 1주 노동시간 한도를 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1주 12시간의 연장노동시간을 입맛대로 배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근로제의 경우 이렇게 위험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출퇴근의 자유가 노동자 개인에게 부여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됩니다.

- 참고로 탄력근로제는 ‘단위 기간,’ 선택근로제는 ‘정산 기간,’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관리단위’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Q6.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어떤 내용인가요?

A6. - 이번 개악안의 핵심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즉 총량 관리 도입입니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우리나라 연장노동시간은 주 단위 칸막이만 있고 일 단위 칸막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있는 주 단위 칸막이를 ‘제거’하고(고용노동부의 표현입니다) 연장노동 관리 단위를 ‘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고 다만 관리 단위를 늘리는 경우 총량을 감축하고 보호조치(노동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를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주 12시간을 월 52시간(100%), 3개월 140시간(156시간 대비 90%), 6개월 250시간(312시간 대비 80%), 1년 440시간(625시간 대비 70%)으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 경우 11시간 연속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을 지키면 됩니다. 관리 단위를 3개월 이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4주 평균 64시간 상한도 지켜야 합니다.

- 주 69시간, 주 80.5시간, 주 90.5시간 등 언론들이 다양하게 쓰고 있는데요, 일단 이것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1시간 연속 휴식이 아니라 1주 64시간 보호조치를 택하는 경우에는 쟁점 없이 주 64시간입니다.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택하는 경우가 계산의 영역입니다. 11시간 연속 휴식을 하게 되면 24시간 중에 최대 13시간 동안 회사에 있게 됩니다. 4시간마다 30분의 휴식을 줘야 하기 때문에 1.5시간은 빼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 최대 11.5시간 노동이 가능해 집니다. (예: 7시 출근 ~ 20시 퇴근) 이걸 6일 동안 진행하면 69시간(11.5×6=69)입니다. 일요일 특근을 하게 되면 80.5시간(11.5×7=80.5)까지 가능합니다. 혹자는 90.5시간도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첫 날은 11시간 연속휴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주에 한해서 이론적으로는 10시간을 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날인 월요일에는 24시간 내내 회사에 있다고 가정하는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Q7. 한 주에 80.5시간, 69시간을 하더라도 이걸 계속 이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A7. - 그렇습니다. 관리 단위를 1개월로 하게 되면 1달 총 52시간이 한도이기 때문에 첫 주에 69시간을 소비하면 다음 3.345주 동안 23시간을 나누어 써야 합니다. 당장 둘째 주에 몰아 쓴다고 해도 63시간이 한계입니다. 첫 주에 80.5시간을 일하게 되면 둘째 주에는 최대 51.5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총량 관리 단위를 3개월 이상으로 하게 되면 3주 연속 69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하는데 이때도 4주차에는 49시간만 일하게 됩니다. 4주 평균 64시간 제한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년으로 하고 이를 최대로 모는 경우 주 64시간이 약 36주 간 계속 지속되게는 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보면 좀 이상합니다. 선택근로제에서도 한 주에 80시간 노동이 가능했고 탄력근로제에서도 40주 동안 내내 64시간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왜 굳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도입하겠다는 걸까요? 고용노동부는 1주 단위의 획일성이 서비스업 등에서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경직성이 평소보다 바쁠 때 유연한 대응을 막고 사업주를 범법자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탄력근로제에서도 충분히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었고 미리 법위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자본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노동시간 계산에만 매몰되면 안됩니다.


Q8. 특히 장시간 노동이 장기화되는 것이 아닌데 정부는 왜 총량 관리를 도입하나요?

A8. - 윤석열 정부의 의도는 바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절차를 무력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정부의 목표는 사전협의 없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고무줄처럼 변경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6일, 총량 관리 도입을 홍보하면서 ‘탄력근로제(근로시간 사전 확정 등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특별연장근로(개별근로자 동의+정부 인가)와 달리 복잡한 절차 없이 활용 가능’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복잡한 절차가 문제라는 본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려면 미리 법정 노동시간을 어떻게 변경할 것인지 미리 합의해야 합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3개월 이내인 경우에는 단위기간의 노동일과 노동일별 노동시간을 미리 서면합의해야 합니다. 중간에 마음대로 변경하기 어렵습니다. 자본은 줄기차게 서면합의의 변경권을 요구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화답해 2020년 12월 단위기간이 6개월 이내인 탄력근로제를 신설하면서 사전에 서면합의해야 하는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단위기간의 주별 근로시간’으로 바꿉니다. 촘촘하고 자세하게 합의해야 되는 것을 대강 두루뭉술 합의하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 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근로일별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합니다. 서면합의를 포괄적으로 해도 되게 만들고 게다가 이를 변경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에도 비슷한 내용이 제출되었습니다. 기존의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에도 변경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도 같은 의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일단 총량관리를 도입한다는 수준에서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게 되면 그 이후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 내에서 노동일별, 노동주별 연장노동은 마음대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총량관리 도입에도 탄력근로제와 마찬가지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다는 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총량관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연장근로 관리 기간을 늘린다’는 정도로 충분하지만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까지도 미리 합의해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서면합의가 아닙니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안전장치 자체를 미리 계획하고 서면으로 합의하는 과정 때문에 노동시간을 자본의 마음대로 신축하기 어려웠던 것이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명령하고 강요하기 쉬워집니다. 이것이 노동시간 계산에만 매몰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Q9. 그러면 장시간 노동 장기화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A9. -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가 핵심적으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절차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이번 「개편방안」이 새롭게 창출하는 위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일단 요건이 까다로운 선택근로제 아래에서 아주 예외적으로만 가능했던 64시간 초과의 노동이 아무 사업장에서나 가능해 진다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연속 주64시간 노동 역시 탄력근로제가 요구하는 서면합의의 내용과 절차에 따라 통제될 경로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편방안」은 이런 빗장을 활짝 열어 모든 사업장에 일반화시키는 것입니다. 

- 특히 제출된 총량 관리, 즉 연장노동의 유연화가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 즉 법정노동의 유연화와 결합하게 되면 파괴적 힘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앞선 건물의 비유를 활용하자면 이미 1층(법정 노동시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휘청휘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2층(연장 노동시간)까지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니까요. 


Q10. 정부는 만성과로 기준을 준수한다고 하던데요?

A10.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정부가 산재 만성과로 기준을 ‘준수’한다고 거짓말하고 있다는 점부터 짚어야 합니다. 정부는 「개편방안」에서 ‘산재 과로인정 기준인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 준수’라고 하여 마치 4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업무상 질병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듯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이 업무상 질병인지와 관련한 1차적 판단기준을 밝힌 고용노동부 고시가 있습니다.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주는 부담을 유발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라고 하면서 이것은 고려하라고 밝힌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줄이자면 만성과로의 업무상 질병 관련성입니다. 언제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는 크게 2가지 요소로 판단합니다. 첫째 12주 평균 60시간, 4주 평균 64시간이 초과하면 업무강도나 형태를 따지지 않고 바로 과로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합니다. 둘째 12주 평균 52시간이 초과할 때 근무일정 예측이 어렵거나 교대제 근무거나 휴일이 부족하거나 온도변화나 소음에 노출되어 있거나 육체적 강도가 높거나 출장이 잦거나 정신적 긴장이 크거나 하면 과로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합니다. 이 외에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도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관련성이 증가합니다. 관련성이 ‘강’하지 않아도 업무로 인한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점은 당연합니다. 실제 통계를 보면 과로 질병 인정 사례들 중에 20% 이상이 4주 평균 52시간 미만인 경우입니다. 

- 정부는 이 중에 4주 평균 64시간만 달랑 가져와 놓고 ‘근로자 건강권 보편화’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미 상당히 위험한 구간에 있는 노동자들을 절대로 넘기면 안되는 위험선에 바짝 붙여 세워 놓고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 정부가 관철하고자 하는 총량 관리는 필연적으로 근무일정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정부 스스로도 긴급 물량이나 프로젝트에 집중노동을 할 수 있게 하려고 제도를 도입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52시간만 넘어도 업무관련성이 강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업무관련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봐야 합니다. 애초에 일단위 주단위 법정 노동시간이나 주단위 연장노동 상한이 바로 그 안전판인데 그걸 제거하면서 건강권을 운운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입니다. 


Q11. 정부가 제시하는 건강권 보호방안, 건강권 보편화로 위험이 줄어들지 않나요?

A11. -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건강권 보편화’라는 표제를 내세우며 3중의 건강보호조치를 시행한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모두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부수하는 보완조치들입니다. 애초에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정부가 자랑하는 3중 건강보호조치는 별도의 입법과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관철시키기 위한 장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옛부터 독약은 약이 아니라 다만 독일 뿐이라 했습니다. 

- 그 외에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야간근로 건강보호 강화, 근로시간 적용 사각지대 해소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용노동부의 집행을 들여다 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몇 차례 보여주기식 기획감독을 한다거나 실효성 없는 신고센터 개설 등 생색내기로 그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Q12. 정부는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비판이 극단적인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A12. - 고용노동부는 「개편방안」을 발표한 3월 6일 이후 연일 해명자료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명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상대방의 주장을 약점이 많은 주장으로 바꾼 다음 이를 비판하는 방식)입니다. 주 80.5시간이 가능하게 된다고 비판하는 데에 대해 주 80.5시간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걸 주 80.5시간제라고 부르냐’고 하고 주5일제임을 전제로 7일 연장노동이 가능하다고 하자 ‘주5일제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고 수당만 지급하면 주7일 노동은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자 ‘합의 없는 주휴일 근로는 강제근로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의도된 동문서답으로 쟁점 흐리기입니다. 실제로 개발팀이 크런치모드에 들어가면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도 모른 척하는 것입니다.

- 연장근로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도 반만 맞습니다. 일단 법정 노동시간도 연장 노동시간의 총량 한도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단위 총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 등 법정 노동시간에 대한 합의 없이도 단기간 집중노동이 가능해 짐으로써 특정한 주의 총 노동시간이 현재 허용되지 않는 정도로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정주의 상한만 부각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하는데 특정주의 상한을 늘리는 것이 이 제도의 시행 목표입니다. 다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장시간 노동 자체보다 집중·압축 노동, 몰아치기 노동이 빈번해 지는데, 이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무력해진다는 지적이 더 핵심적입니다. 


Q13. 어쨌건 결국 당사자가 연장노동에 동의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A13. 그렇습니다. 결국 근로자대표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합의하더라도 개별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현행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 회사에 따라 연장노동에 대한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를 미리 받아 두고 회사가 필요할 때마다 연장노동을 지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개별 노동자가 상급자의 연장노동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상급자와의 인간적인 관계, 매번 상급자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 불편함, 혹시 업무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내가 일하지 않으면 내 주변 동료의 노동강도가 높아진다는 미안함, 회사가 필요할 때 회사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매번 마주해야 합니다. 결국 작업장 힘 관계에서 열위에 서는 노동자들은 원치 않더라도 연장노동으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Q14. 1주 단위의 연장노동 규율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아서 바꾼다던데?

A14. - 정부는 계속해서 1주 단위의 연장노동 규율이 너무 획일적이고 경직적이라고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획일성은 서비스업이나 사무·연구직 등에는 다른 규율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얘기고 경직성은 갑자기 일이 몰렸을 때 연장노동 몰아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해외 사례를 살펴보니 오히려 1일 단위의 연장노동 규율이 많았습니다. 1주 단위가 아니라 1일 단위의 규율이 더 경직적인데도 말입니다. 

- 노동시간에 관한 EU 지침은 24시간당 최소 연속 11시간의 휴식시간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1일 노동시간의 상한이 원칙적으로 13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6년 한국경총이 노동시간법제를 조사한 16개국 중에 9개국이 1일 연장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6개월 평균 1주 48시간 내 연장근로’라고 탄력성의 사례로 들은 독일의 경우에도 1일 노동시간은 최대 10시간입니다.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대만은 1일 12시간, 벨기에는 1일 11시간(1주 50시간)의 노동시간 제한을 뒀습니다. 중국은 연장노동시간이 1일 1시간이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1일 3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합니다. 연장노동시간의 총량은 1개월 36시간을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규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을 정도로 경직적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환경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글로벌하지 않은데 규제가 글로벌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많이 줄어들어 1,900시간대입니다.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연간 노동시간이 1,300시간대에서 1,400시간대에 분포합니다.(독일, 덴마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프랑스, 벨기에, 영국) 총 노동시간이 1,300시간대인 가운데에서의 연장노동과 1,900시간대인 가운데에서의 연장노동이 동일하게 규율되는 것 자체도 문제입니다. 전혀 다른 것을 동일하게 규율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장노동이 야기하는 위험성, 탄력적 적용으로 인한 최대 노동시간 총량, 역사적으로 쌓여 온 건강 침해 등 많은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Q15. 노동시간 선택권과 시간 주권이 확대된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A15. - 네. 고용노동부는 ‘노사의 노동시간 선택권’을 이번 개편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비슷하면서도 조금 어감이 다른 말로 ‘시간 주권’이라는 단어도 등장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권리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봅시다.

- 고용노동부 표현에 따르면 노동시간 선택권의 주체는 ‘노사’입니다. 여기서 ‘노’는 집단으로서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 개인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선택의 대상은 노동시간인데 좀더 엄밀히 말하면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노사’에서 ‘노’는 근로자대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 개인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라는 제도의 도입을 선택할 수는 없고 근로자대표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선택한 이후에 해당 총량 관리 제도 아래에서 연장노동을 수행할 것인지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주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노동시간 선택권은 마치 노동자 개인이 여러 가지 선택권을 가지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 근로자대표가 회사와 공동으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를 선택할 권한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상태보다 더 나쁜 선택지가 추가되었을 때 통상 이를 선택의 자유가 넓어졌다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사의 자율적인 선택권 존중 운운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편 ‘시간 주권’이라는 표현도 더러 보입니다. 시간 주권이란 노동시간에 대해 주인이 되는 권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는 한정된 시간 동안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 한정된 시간 동안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하고 노동자는 이에 대항해 작업당 필요노동시간의 결정과 분배, 작업순서의 조정과 노동시간의 배열, 해당 노동시간 동안의 노동 환경 등 자율적 결정의 영역을 넓히고자 투쟁해 왔습니다. 과히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라고 할 만합니다. 따라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이번 정부 입법안은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는 말은 무식한 소리입니다. 시간 주권의 주체는 오직 노동자이고 ‘노사’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이를 ‘노사의 자율적 결정’이라고 이해해 주더라도 무식한 소리입니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역사의 방향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규격화입니다. 여기서 규격화란 완전한 노사간 자율이 아니라 법제도에 의한 최소한의 기준설정으로 제한된 자율을 의미합니다. 연장노동에 대한 상한이 바로 그 제한입니다. 이처럼 정부가 말하는 노동시간 선택권과 시간 주권은 사용자의 연장노동에 대한 선택권이라는 실체를 가리기 위해 동원된 선동일 따름입니다.


Q16. 정부가 근로자대표제를 정비한다고 하던데 어떤 영향이 있나요?

A16. - 기존 근로기준법에는 정리해고 조항에 정의(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 없는 경우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역할만 규정하고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번 「개편방안」에는 누가 근로자대표가 되는지(과반수 노동조합→(없으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없으면)노동자 과반 참여 선출), 어떻게 뽑는지(직접·비밀·무기명 투표), 활동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해고나 불리한 처우 금지 등), 어떤 권한과 책무가 있는지(성실 협의, 권한 남용 금지, 다양한 의견 수렴·반영, 비밀누설 금지), 이를 어겼을 때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 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담겼습니다. 

- 근로자대표제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근로기준법 상에서 근로자대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앞세우고 있는 ‘노동자 대표성과 노동조건 자기 결정성 강화’라는 목표 이외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근로기준법 상에서 근로자대표의 권한은 정리해고 등에 대한 성실 협의(제24조), 3개월 이내, 6개월 이내의 탄력근무제 도입 서면 합의(제51조, 제51조의2), 선택근무제 도입 서면 합의(제52조), 30인 미만 사업장의 추가 8시간 연장노동 서면 합의(제53조제3항; 22.12.31.까지 한시 적용), 유급휴일 사전 대체 서면 합의(제55조제2항), 보상 휴가제 서면 합의(제57조), 사업장 밖 간주근무제 서면 합의(제58조제2항), 재량근무제 도입 서면 합의(제58조제3항), 특례사업 추가 연장노동 또는 휴게시간 변경 서면 합의(제59조), 유급휴가 대체 서면 합의(제62조), 임산부와 18세 미만자 야간노동·휴일노동 인가 전 성실 협의(제70조제3항) 등입니다. 대부분 사용자가 장시간 노동이나 유연하고 탄력적인 노동을 도입하려 할 때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서 일종의 정당화, 합리화 절차인 셈입니다. 근로자대표 제도의 정비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로자대표는 누구를 대표하는 자일까요? 과연 노동자의 대표성이 근로자대표를 통해 강화될까요? 이를 노동자의 노동조건 자기결정권이 강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 고용노동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고도 말하고 있는데요, 장시간 노동 도입이나 사용자에 유리한 유연화에 민주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해당 안건 자체를 노동자들의 투표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그게 노동조건에 대한 집단적 자기결정의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일단 먼저 근로자대표를 선출하게 하고 이후에 근로자대표가 마음대로 합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두고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에 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특히 이번 「개편방안」이 모순덩어리인 이유는 겉에서는 이렇게 근로자대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속으로는 오히려 근로자대표를 무력화하는 경로 설계를 목표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선출과 활동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경우를 제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시정명령 불이행에만 벌칙이 있다는 점, 그래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시정명령이 나오기 전까지 일단 개입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놓게 되면 이후에 구제의 실익이 사라지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점 등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부분 근로자 제도입니다. 


Q17. 부분 근로자 제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정하는 것인가요?

A17. - 이번 「개편방안」에서 근로자대표제도를 정비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부분근로자 제도 도입입니다. 제출된 입법예고에는 △ 사용자가 ‘부분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부분 적용 사항’에 대해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하려는 경우 근로자대표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부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서는 안되고 △ 서면 합의 여부, 내용, 사유에 부분 근로자나 ‘사용자’가 이의가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 노동위원회가 부분 근로자와 사용자가 직접 협의해서 부분 적용 사항을 정하라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근로자대표의 의사에 반하여) 직접 협의해 과반수 동의를 얻은 내용을 ‘서면합의로 간주’합니다. 즉 부분 근로자 제도는 근로자대표의 서면 합의 권한을 무력화하기 위한 경로로 설계된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앞에서는 근로자대표의 대표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이를 무력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의 고기를 파는 모양새입니다. 

- 이로써 과반수로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도 해당 노동조합의 ‘민주적 자기 결정’에 대해 특정한 부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이탈하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특정한 부분의 노동자 집단이 그들의 특정한 노동환경을 고려해 장시간 노동이나 유연한 노동시간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이를 노동조합 내부에서 제기하고 설득해 나가는 것이 민주적 결정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부분 근로자 제도는 사업장 내 노동형태간 직무특성간 입장 차이를 스스로의 내부 토론으로 해결하는 민주적 방식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구하는 사법적 방식,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노사자치의 영역에 개입하는 후견적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것이고 사업장 내 갈등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적 성격이 또다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 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이 부분 근로자에 해당하느냐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제출된 입법예고에는 ‘사용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 내 근로형태, 직무의 특성에 따라 근로시간 등을 달리 정할 필요가 있는 특정 직종, 직군 등 단위의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에 대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려는 경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을 두고 부분 근로자의 범위를 사용자가 정한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용자’ 부분은 ‘서면합의’와 호응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고 부분 근로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 내 근로형태, 직무의 특성에 따라 근로시간 등을 달리 정할 필요가 있는 특정 직종, 직군 등 단위의 근로자’라고 하여 사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Q18. 선택근로제 활용 제고도 있던데요?

A18. - Q5에서 확인한 것처럼 선택근로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일(고용노동부는 서면합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입장)과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제도이지만 1주 노동시간의 한도가 없고 따라서 법정 노동시간의 조정을 통해 주단위 연장노동 제한도 무력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제도입니다. 특히 포괄임금제와 결합하는 경우 제한없는 노동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간만을 노동자 자율에 맡기는 자유출퇴근제(1일 8시간 법정 노동시간 적용됨, 초과노동은 연장노동), 출근시간이 통상의 시각(예: 9시)가 아닌 때로 달리 정해져 있는 시차출퇴근제와는 다릅니다. 이번 「개편방안」에서 윤석열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것은 △ 현재 1개월 또는 3개월(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 단위의 정산기간을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확대하고 △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선택근로제 적용을 신청하면 사용자가 협의를 위해 노력할 의무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선택근로제의 실제 도입률은 6.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핵심적인 이유를 예상해 보자면 법적으로 노동시간 선택권이 개별 노동자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회사 입장에서 선택근로제를 활용할 유인은 단기간 집중노동입니다. 정산기간이 1개월인 선택근로제는 이론적으로 제한없는 특정주 집중노동(일 21.5시간, 주 7일)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선택근로제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단기간 집중노동을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단기간 집중노동을 시킬 수단이 없다면 이를 활용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정산기간을 확대하면 활용도가 높아질까요? 아닙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활용도는 높아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개편 방안에 제기된 선택근로제 활용 제고는 노동자의 선택권을 증진시키는 결과로 귀결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개별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에 대한 자율권을 주지 않으면서 모양새만 그럴 듯하게 취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생길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제로 사용자단체들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를 요구하던 2020년 6월 당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선택근로제를 이 형태 그대로 3개월로 확대하면 근로자가 자율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제도라기보다 주 52시간제를 회피하는 형태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일본의 경우에는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면서 1주일에 할 수 있는 근로시간의 상한 제한을 뒀다”고 했습니다.

- 한편 노동자의 선택근로제 적용 신청 제도의 경우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근로자대표화 협의를 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이를 적용해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선택근로제를 통한 노동자 선택권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크게 미흡할 것입니다. 


Q19. 탄력근로제 실효성 제고는 무엇인가요?

A19. - 역시 Q5에서 확인한 것처럼 탄력근로제는 법정 노동시간의 유연화 제도입니다.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를 시행하기 위해서 사전에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는 노동일, 노동시간을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정한 경우에 변경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6개월 이내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서 유연화한 부분(근로일과 근로일별 근로시간 → 주별 근로시간으로 변경한 부분,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 하루 전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규정 도입; A8 참조)을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정한 경우에도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를 확인해 보고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 탄력근로제도 선택근로제와 비슷하게 현장 도입률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럼에도 사용자단체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탄력근로제를 활용해 압축노동과 장시간노동을 유지하고자 하고 사용자의 할증임금 부담을 덜어주는 면이 큽니다. 그렇지만 핵심적으로 노동시간과 노동력 활용에 대한 재량권이 사용자에게 넘어가기 때문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 지금의 탄력근로제 실효성 제고 논의가 통상 외국에서 탄력근로제가 도입되거나 확대되는 국면과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탄력근로제는 주 40시간 미만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단축된 시간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해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되거나 확대되었습니다. A14에서도 다루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상시적 장시간노동 체제 아래에서 자본의 요구로 탄력근로제가 도입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탄력근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추가고용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자와 실업자 간 연대를 부정하는 방향이라는 게 우리 금속노조의 기본적인 입장이어야 합니다.


Q20.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도입한다고요?

A20. - 이번 「개편방안」에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제안되어 있습니다. 연장·야간·휴일노동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저축계좌에 쌓는 방식입니다. 개별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을 것인지 계좌에 적립했다가 휴가로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이때 휴가는 1.5배 이상 가산합니다. 적립된 연장노동은 원칙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저축휴가로 사용하도록 규정하지만 연차휴가와 마찬가지로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정산기간에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노동시간은 임금으로 소멸시키거나 차기로 이월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해두고 있어 아주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 현장에서는 물량이 많을 때 연장노동을 잔뜩 시키고 물량이 없을 때 강제로 휴가를 사용하게 해 물량 유동성으로 인한 리스크를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그 결과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는 효과가 있음을 우려합니다. 저축계좌에 연장노동시간을 열심히 저축했는데 회사가 파산하면 가산임금만 날린 꼴이 될까봐 걱정도 합니다. 

- 무엇보다 저축휴가를 노동자가 원하는 시기에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큽니다. 저축휴가를 몰아서 사용하려고 할 때 회사가 순순히 그러라고 할 것인가? 내가 장기휴가를 가게 되면 나 대신 업무를 처리할 사람은 있는 것인가? 하나의 업무를 여러 사람이 함께 수행하는 대기업에서는 그나마 대체할 자원이 있는 편이겠지만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는 중소기업에서 그게 가능한가? 연차휴가도 똑바로 못 쓰는데 적립된 휴가를 어떻게 쓸 수 있다는 것인가? 의문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저축한 연장노동시간을 휴가로 소진하지 못하게 되면 정작 휴식이 늘어나지는 않으면서 연장노동수당만 몇 달 늦게 받는 꼴이 됩니다. 계속 차기로 이월하는 방식의 악용도 우려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연장노동이 근절되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발생한 연장노동은 금전으로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건강으로 보상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저임금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물량 유연화에 대응해 신축적으로 노동력을 조절하는 제도로 활용될지 실노동시간을 단축해 신규고용을 촉진하게 될지를 가르는 여러 변수들 중에는 노동조합의 입장과 대응도 한 몫 할 것입니다. 저축휴가 사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대체인력 채용 제도, 원하는 시기의 휴가 사용을 회사가 방해하는 경우에 대한 강력한 불이익 부여 등 제도 개선에도 책임감을 갖고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Q21.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대해서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고 하던데요?

A21. - 네, 노동시간에 대한 철학과 방향 없이 갈팡질팡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계속 스스로를 부정하며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습니다. 작년 6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을 때가 시작입니다. 당시 발표에 관리 단위 확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도어스태핑에서 ‘보고 받지 않은 게 언론에 나왔다’며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진행한 브리핑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 작년 말에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방안을 권고안으로 제출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월 6일 이를 공식발표합니다. 그런데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특히 아끼는 MZ노조도 이에 반대하자 열흘이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마치 남 얘기하듯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을 지시한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멘붕에 빠졌습니다. 주 60시간 상한을 씌워 정부안을 확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흘 만에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 발언은 개인적 생각이고 가이드라인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정부의 기조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큰 프레임에서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역시 백지화는 아니며 탄력적 조정은 여론을 수렴해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자본의 요청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정부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속도가 조금 조절될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Q22.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노동조합 간부들은 무엇을 하면 됩니까?

A22. - 입법예고 기간 안에 먼저 조합원 교육과 현장 선전을 통해 이후의 싸움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자본의 노동시간 통제권만 확대한다는 점, 집중노동과 압축노동을 유발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크게 위협한다는 점, 노노갈등을 유도하고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단결을 저해한다는 점 등을 조합원들과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 이번 「개편방안」은 특히 노조없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발간한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비판과 대안」에 따르면 현재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취약 계층들입니다. 무노조 사업장(4.4%), 파견용역(7.9%), 특고(6%), 여성(4.3%), 5인 미만(8.9%), 55세 이상 고령(5.4%), 소득 하위 20%(3.9%), 유급휴가 미적용(7.7%)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비율이 비교집단 중에 가장 높았습니다. 취약하고 불안정하고 사각지대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조직노동은 이런 장시간 노동체제에서 고통받는 동시대의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는 새로운 노동시간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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