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횡포와 고용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현장을 지키기 위해 금속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크린팩토메이션지회. 크린팩토메이션은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관련 자동화 설비와 공정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황병희 지회장은 지회를 설립한 9월 24일을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황병희 지회장을 만나 지회를 세운 배경을 들어봤다.


금속노조에 가입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회사는 돈으로 부서 간 갈등을 조장하고 인사권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줄 세우기를 강요했습니다. 회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일방적인 횡포를 심하게 저질렀고, 특정 부서를 분사한다는 소문이 수시로 돌아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수많은 동료가 꿈을 접고 떠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점차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회사가 망하겠다는 위기의식에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으로 나와 동료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럼 방법이 뭘까?’ 답을 찾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크린팩토메이션 노동자들이 지난 9월 24일 금속노조 가입 총회를 열었다. 지회 제공
크린팩토메이션 노동자들이 지난 9월 24일 금속노조 가입 총회를 열었다. 지회 제공

조직 대상 노동자 중 반수 이상의 동료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한 요인이 있을까요?

-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규선 경기지부장 등 지부 동지들과 가까이 있는 사업장인 비테스코지회의 전폭 지원이 있어 어려운 고비에서 흔들림 없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박동진 지부 조직부장 등 지부가 열성적으로 교육해 지회의 기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부와 조합원 확보전략을 토론하면서 회사·조직상황 등을 공유하고, 상황 발생 즉시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했습니다.

셋째, 설립추진위원회에 함께 결의를 모아준 일곱 명의 동지들이 흔들림 없이 밤낮으로 뛰며 조합원을 만나고 설득한 결과물이 지금의 크린팩토메이션지회라고 생각합니다.


노조 가입총회에서 지회 설립을 선포했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 9월 24일은 회사에 다닌 19년 중 가장 설레고 벅찬 날이었습니다. 가입총회는 제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노조를 만들려면 아직 인생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 인생에서 그만큼 절실하고 치열한 6개월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립추진위원장으로서 준비하면서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낀 치열함이 있었다면, 지회장으로서 설립총회에서 앞으로 더 치열한 투쟁을 결심했습니다.

자랑스럽고 당당한 금속노조의 조합원으로서 19만 동지들이 크린팩토메이션지회와 연대하고 있다는 든든함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뜻을 모아준 지회 동지들이 있어서 가입총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크린팩토메이션지회가 지난 9월 29일 아산공장에서 노조 가입 선전전을 벌였다. 지회 제공
금속노조 경기지부 크린팩토메이션지회가 지난 9월 29일 아산공장에서 노조 가입 선전전을 벌였다. 지회 제공

9월 24일 지회 설립 이후 현장에서 선전전을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내용은 무엇이고, 조합원과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9월 29일 출근시간 둔포 공장과 점심시간 아산공장에 방문해 지회 설립을 알리고, 가입을 독려하는 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노조 가입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보았지만, 눈치 보는 와중에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직원들이 있어 희망을 봤습니다. 회사 일부 공장, 특정 부서만 참여하는 반쪽짜리 노조보다 회사 전체 직원이 참여하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조직화 투쟁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회와 회사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지회는 어느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 지회는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6차 교섭까지 했습니다.

11월 17일 4차 교섭에서 노·사가 기본협약 합의서에 사인하며 본교섭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지회장, 수석부지회장, 사무장 등 세 명의 유급 전임 임시상근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지회 업무를 하고 있으며, 조합 사무실 개소를 위한 준비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 25일부터 26일까지 벌인 첫 지회 확대간부 수련회를 통해 지회를 선봉에서 이끌 간부들의 결기를 확인하고 소통하며 뜻깊은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지회는 현재 조직력이 약한 부서를 찾아가 조합원을 만나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황병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크린팩토메이션지회장이 지난 11월 17일 4차 교섭에서 기본협약에 합의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지회 제공
황병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크린팩토메이션지회장이 지난 11월 17일 4차 교섭에서 기본협약에 합의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지회 제공

금속노조 가입으로 현장에 변화가 있다고 보십니까?

- 철옹성 같은 회사에 맞서 두려움을 떨치고 사내에서 당당히 금속노조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크린팩토메이션 노동자를 대표해 단체협약 체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자체로 회사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조합원 동지들은 당당하게 회사에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사무실에 앉아 지시만 하던 관리자들이 현장에 찾아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부서 간 이해충돌에 따른 반목이 조금 있었는데, 금속노조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지로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긍정의 분위기로 현장이 바뀌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크린팩토메이션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마디 부탁합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노조를 만들고 활동하려면 인생까지 걸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크린팩토메이션지회가 금속노조와 함께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활동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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