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후반 삼성중공업에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로 구성한 팀이 있었다. 현장에서 특공대로 불렸다. 정주노동자(한국에 사는 노동자)가 하기 힘든 일을 도맡아 했으나,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정주노동자 열 명이 닷새 작업하는 물량을 나흘 납기로 강요해도 변변한 항의를 못했다. 팀이 쉬겠다고 하거나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업체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퇴사 처리할 테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비슷한 시기에 STX조선에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자기 나라에서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노동자였으나,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어서 조선소에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일부 관리자는 이주노동자가 욕설을 알아듣지 못하는 점을 악용해 욕설을 섞어서 작업을 지시했고, 저소득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저소득국가 출신 이주노동자가 저임금으로 살기에 한국 사회는 고물가 사회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는 유목민족답게 거칠어 보였다. 몽골 이주노동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이주노동자가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 만나보면 순박하고 놀라울 정도로 시력이 좋았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는 몰려다니며 시끄러웠는데 휴게실에 들어오면 피할 정도였다. 알고보니 가족, 지인 등을 잘 챙기는 민족성과 언어 특성 때문이었다. 이런 문화 차이에 소통과 인식 부족이 더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시각이 현장을 지배했다.

조선소 미숙련공은 보조공 역할을 한다. 갖은 청소, 자재 운반 등 힘든 일을 한다. 작업환경이 열악해 숙련공이 거부할 우려가 큰일은 보조공 몫이다. 여기에 정주, 이주노동자 구분은 없다. 다만 정주노동자는 몇 개월 후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항의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고용이 불안해 묵묵히 일하는 경우가 많다.

탱크 안에 분진이 많아 1m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인데 분진 마스크 하나 착용하고 장시간 청소한다. 분진 마스크 필터는 20~30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탱크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먼지를 마시며 교체하거나, 그냥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송기 마스크를 공급하면 된다. 송기 마스크에 밖의 공기를 공급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하청 현장에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송기 마스크를 착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 논리로 안전보건을 무시하는 대표 사례다.

정주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의 저임금 구조 때문에 정주노동자의 임금인상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주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불만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명료하다. 현장 안전보건 보장과 저임금 타파이고,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 해소이다. <자료사진>

조선소 하청 현장은 매우 위험하다. 위험의 외주화와 일상화가 완전히 자리잡아 하청노동자는 불안전 현장에 무감각하다. 위험하더라도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시 시간과 비용이 문제다. 저임금, 고용불안에 처한 하청노동자에게 책임과 희생을 전가해 위험을 외주화하고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하청노동자는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위험작업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조선소 인력난 원인 중 하나가 ‘고위험’이다. 이주노동자의 안전 지수는 더 심각하다. 언어장벽과 무경험으로 ▲ 정주노동자보다 더 위험한 현장에 노출돼 있으며 ▲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안전교육과 안전의식은 다르다.

안전시설 보강과 시스템 전환을 지속해서 해야 한다. 모두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조선소 하청 현장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 적발과 경고 위주로 안전투자를 대신한다. 시간과 비용 투자 없는 안전교육은 사고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 그 수단마저 여의찮다. 자국어 통·번역 시스템 부재와 문화 차이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해소 없이 이주노동자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본다.

2000년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정주노동자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배타적이었고 무시하거나 무관심했다. 2010년대에 이주노동자와 직접 대화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주노동자의 전직이 자국에서는 대우받는 교사, 장교, 공무원 등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신기해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같은 일을 하면서 차등 임금을 주는 차별이 현장 생산과정에서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주노동자가 일당 10만 원을 받으면 이주노동자는 일당 6만 원을 받는 구조다. 정주노동자는 이주노동자가 똑같은 기량공이기 때문에 비슷한 물량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주노동자가 결정 물량 이상을 쳐내는 건 높은 노동강도와 피로도를 동반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생각은 다르다. 6만 원어치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보해서 7만 원어치 일하면 신사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자본이 임금으로 현장을 갈라놓고, 그 피해와 희생을 노동자 몫으로 돌려놓았기에 발생한 원초적 문제이다.

정주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의 저임금 구조 때문에 정주노동자의 임금인상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주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불만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명료하다. 현장 안전보건 보장과 저임금 타파이고,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 해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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