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북중 정상회담 직후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 특별대표가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들고 9월초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 국무부 관료들과 협의하였다. 이후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일·중 순방에 나섰다. 이런 맥락에서 보즈워스의 9월 12~14일 방한 목적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안(북미대화->6자회담 예비회담->6자회담 본회담)에 따라 북미 고위급 대화에 시동을 걸기 위한 미국의 사전 정지작업 때문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즈워스 대표는 지난 9월 13일 천안함 국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함께 6자회담 재개 조건 등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료들과 의견을 조율했다.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의 회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즈워스는 “우리는 북·미 양자접촉을 거쳐 궁극적으로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다자 접촉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 희망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이 대북관계개선을 위해 6자회담 재개에 무게를 싣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미 고위급 대화 사전 정지작업

이는 지난 8월 24일 미 외교전문잡지 포린 폴리시의 “대북 정책에 좌절감을 느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8월초 고위급 회의를 소집하도록 지시했고, ‘신선한 대안(fresh options)'들을 점검해보도록 했다”는 보도와 맥을 같이 한다.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과거에 검토되지 않았던 다른 대안들도 살펴봤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스스로 그동안 견지해왔던 대북 압박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보즈워스와 위성락
미 국무부가 대북 추가 제재 발표를 늦추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당초 미국 정부는 7월 하순에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고위 전략대화 직후 “2주안에 대북 추가제재를 발표”한다는 입장이었지만 4주가 지나도록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무부의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는 대북제재 추가 리스트 발표 시점에 대해 “가까운 시일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미국의 행보는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일관되게 견지해왔던 일명 대북 압박 ‘천안함 동맹’과는 괘를 달리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지속되어왔던 MB정권의 대북제재 기조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정세의 변화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B정권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사실은 제재가 중심, 필자 강조)’을 당분간 계속 견지하겠다며 6자회담 재개 움직임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선 천안함 사과를 내세워 6자회담 재개를 반대해온 MB정권의 발목잡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에 이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도 반대한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MB정권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미관계의 진전과 6자회담 재개를 원치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지나 않을 런지.

대북 압박정책 실패 자인

MB정권과는 대조적으로 북은 이명박 정부의 발목잡기에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승호 선원 석방, 수해지원 요구, 이산가족상봉 제안 등 일련의 대남 유화조치는 북이 북미, 남북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MB정권이 행보 여하에 따라 6자회담 관련국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 남북미중 4자외교현장
이제 점차적으로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한 대북제재국면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과 중미 간 대화 분위기, 우다웨이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의 관련국 순방과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관련국 순방, 남북 비밀 고위급 회담설에 이은 대승호 선원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대북 쌀 지원과 같은 인도적 협력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MB 정권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오로지 대북제재에만 매달려왔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천안함 관련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목을 매다 실패하자, 미국에게 매달려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만이라도 취해줄 것을 사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미국은 실효성 적은 추가 대북제재조치에 응하는 대신 MB정권에게 이란제재조치에 동참하도록 강요하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고 만 것이다.

MB정권은 어쩔 수 없이 9월 8일 이란에 대한 강력하고 광범위한 독자적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102개 기관과 24명의 개인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추가지정하고 정부 당국의 사전 허가 없이는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금지시켰다. 이는 유엔안보리의 대이란 제재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란 제재 관련 핵심적 관심사였던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대해서도 금융제재 대상자로 선정하는 동시에 외환거래법 위반혐의를 적용해 2개월의 영업정지 방침을 통보함으로서 사실상 폐쇄조치를 단행했다.

대한민국이 왕따 당하지 않을까 염려

미국의 요구에 끌려가는 MB정권의 이란 제재조치 때문에 이란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76.4%가 현재 거래를 일부 또는 전면 중단했다고 한다. 정부가 피해를 받게 되는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밝혔지만 이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반응이 48.4%나 된다. 이란 전체 차량의 30~40%에 달할 정도로 이슬람권에서 잘 알려진 브랜드인 ‘프라이드’ 모델을 수출하는 기아자동차도 이란 제재로 자동차 수출을 중단했다고 한다.


MB정권은 이란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자주적인 결정이라고 강변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원유 수입 10%를 차지하는 중동지역 최대 교역국인 이란에 대해 독자적인 제재에 나설 어떤 이유와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중동 및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강요에 따른 것이자, MB정권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를 간청한데 따른 반대급부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요청하면서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대신에 한미FTA 추가 양보와 함께 이란 제재동참을 약속하지 않았는지 이제라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MB정권의 한미동맹 ‘몰빵’ 외교로 인한 국익훼손과 경제적 파탄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몫이 되고 있다. 지난 달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이란 부통령은 “한국제품에 대해 수입 관세를 200%까지 올려 이란에서 한국 제품이 팔릴 수 없도록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란은 우리나라의 중동지역 최대 수출시장으로, 100억 달러 규모의 교역국이다. 이란에 진출해 있는 기업만 2천여 개가 넘는다. 양국 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면 약 15만 명의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 국익을 훼손하고 경제위기를 초래시키며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MB정권 이쯤에서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중단하고 냉수 먹고 속 차리기 바란다.

김종일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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