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정밀은 한창 새 단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마중 나온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을 따라 들어가니, 방금 페인트칠을 마친 바닥을 밟지 못하게 보행을 차단하는 경고 테이프가 공장 안을 길게 가로질렀다. 용석일 지회장은 “공장에서 조만간 투자설명회가 열린다”라고 귀띔했다.

굴착기 등 산업 장비에 들어가는 대형 선회 베어링을 생산하는 강릉 향토 중견기업 신일정밀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가 올해 6월 30일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마무리했다. 2020년 10월 23일 전면파업 돌입부터 2년, 자본 교체 이후 새로운 경영진과의 협상 넉 달 만이다.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와 사측은 이번 협상으로 수년간 동결한 임금을 월 13만 원 인상했다. 임금피크제 유보와 일방중재 조항 폐지, 조합원 교육 시간 확보, 작업장 감시 CCTV 철거, 안전 위한 노동환경 개선 등도 합의했다. 용석일 지회장은 200일 넘는 전면파업과 임단협 체결이 “금속노조라서 가능했다”라고 평했다.

2019년부터 사측이 노동자들을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로 상급 단체를 바꿔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커졌다. 신일정밀지회는 지난 2020년 8월 임시총회를 열고 기존 한국노총에서 금속노조로 조직 형태 변경을 결정했다. 같은 달 31일 신일정밀노조는 금속노조의 승인을 얻어 신일정밀지회가 됐다.

용석일 지회장은 “당시 손재동 위원장 부탁으로 사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2020년 7월 1일 회사가 나를 강제 전환배치 했다. 다음에 ‘누구 차례다’하는 말들이 돌면서 ‘나도 당할 수 있겠구나’하고 조합원들이 불안했다”라며 “그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금속노조로 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장(왼쪽)과 함석용 사무장이 8월 19일 강원도 강릉시 신일정밀지회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회 사무실 벽에 213일 파업투쟁을 벌인 조합원들의 단체사진이 걸려있다. 변백선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장(왼쪽)과 함석용 사무장이 8월 19일 강원도 강릉시 신일정밀지회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회 사무실 벽에 213일 파업투쟁을 벌인 조합원들의 단체사진이 걸려있다. 변백선

사측 강제 전환배치, 금속노조 전환 시발점

사측은 2공장에 있던 용석일 지회장을 차로 10여 분 떨어진 3공장으로 배치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1공장과 3공장은 바로 옆에 붙어있고 2공장은 좀 멀리 떨어져 있다. 당시 2공장에 노동조합 활동에 애착이 큰 분들이 많았다”라며 “손재동 당시 위원장과 용석일 사무장이 2공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니 사측이 아예 다른 조합원과 분리했다”라고 덧붙였다.

강제 전환배치가 부당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인사 의도가 처음부터 명확했던 사측은 들을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노조 단체협약에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본인 의사를 존중한다’라고 쓰여있었지만, 허울뿐이었다. 용석일 지회장은 20년 동안 일한 설비에서 하루아침에 배제당하면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같은 일을 20년 동안 하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20년 동안 하던 일을 강제로 멈추고, 새로운 일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오른팔만 쓰던 사람이 왼팔까지 쓰는 식으로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지회장의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용석일 지회장은 “업무가 힘든 것보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함이 컸다. 연차가 서른 한 개 있었는데 그걸 그냥 다 써버렸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민주노총에 관해 알아보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해서 8월에 총회를 열고,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신일정밀 사측은 왜 2019년부터 노조탄압을 노골화했을까? 용석일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은 사측이 이전까지 노동조합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용석일 지회장은 “손재동 전 지회장이 2019년 당시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산업안전 활동을 강화한 것이 사측의 비위를 건드린 듯하다”라고 추측했다.

신일정밀은 산재 다발 사업장이었다. 언제 교체했는지 모를 썩은 절삭유에서 악취가 났다. 팔에 튀는 절삭유로 신일정밀 노동자들은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쇠를 깎을 때 나오는 칩에 베이거나, 바닥에 떨어진 절삭유에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한 달에 한두 건 발생했다. 허리, 다리, 손가락을 다치는 산재사고도 잦았다. 사측은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크레인 오작동 역시 내버려 뒀다.

노동자들이 사측에 여러 차례 작업장 환경개선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무시하거나 마스크나 토시를 착용하라는 등 임시방편만 내놨다.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면 공상 처리하거나, 개인 연차를 내고 치료했다. 손재동 전 지회장은 위원장을 맡은 뒤 조합원 안전을 위해 산업안전 문제를 파고들었다.

함석용 사무장은 “2019년 후반기부터 손재동 전 지회장과 회사 관계가 크게 나빠졌다. 임단협까지 걸리니 손재동 지회장을 압박했다”라고 밝혔다. 용석일 지회장은 “손재동이 있으면 회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나가야 회사가 평탄해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현장에 돌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손재동 위원장이 노동부를 찾아가 ‘산재 다발 사업장인데 왜 교육·감독하러 안 나오냐’라며 근로감독관을 쏘아붙이는 일이 있었다. 2020년 8월 11일 노동부 강릉지청이 현장 안정점검을 시행하고, 수십 건의 법 위반 사항에 관해 시정지시를 내렸다.

용석일 지회장은 “업무가 힘든 것보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함이 컸다. 연차가 서른 한 개 있었는데 그걸 그냥 다 써버렸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민주노총에 관해 알아보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해서 8월에 총회를 열고,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변백선
용석일 지회장은 “업무가 힘든 것보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함이 컸다. 연차가 서른 한 개 있었는데 그걸 그냥 다 써버렸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민주노총에 관해 알아보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준비해서 8월에 총회를 열고,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변백선

신일정밀, 산재 다발 사업장이었다

2020년 9월 16일 근로감독관들이 시정지시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일정밀을 다시 방문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위험했다. 노동부 강릉지청은 신일정밀 사측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을 통지했다. 2020년 9월 18일 사측은 “경영철학을 훼손당했다”라며 업체 폐업을 공고했다.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민 아무개 씨는 “법을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경영했는데, 노동조합이 근로감독관과 함께 회사를 살피고 다니더니 자신을 산업안전보건법 수십 건을 위반한 범법자로 만들려 한다”라며 폐업 이유를 밝혔다.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는 민 씨의 말이 명백한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신일정밀은 이미 2013년 산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당한 전례가 있다. 지회의 투쟁과 시민사회의 압박으로 민 씨는 2020년 10월 5일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새 대표이사인 최 아무개 씨는 폐업 공고를 철회했다.

용석일 지회장은 “이때부터 회사가 ‘손재동 때문에 회사 말아먹게 생겼다’라며 노조탄압을 본격화했다”라고 밝혔다. 신일정밀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로 2021년 노무사 자격 3년 정지 처분을 받은 이 아무개 씨가 경영고문으로 신일정밀 현장 밀착관리를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 씨는 CCTV로 노조 간부를 표적 관찰하고, 징계 협박을 일삼으며 지회를 압박했다.

신일정밀지회 투쟁을 이야기할 때 민 전 대표와 함께 이 노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씨는 노조파괴 범죄집단 창조컨설팅 인맥으로, 이미 신세계 계열사 노조 설립 원천 차단 전략을 컨설팅한 죄로 직무정지를 당한 전력이 있었다. 2013년 말 징계를 받은 이 씨를 민 전 대표가 경영고문으로 위촉하면서 신일정밀의 노동조건은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용석일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이 노무사가 수시로 날리는 경위서 제출 요구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라고 분노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지난 투쟁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이 씨를 만나면 술이라도 사주고 싶다”라며 “이 씨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도 지지 않으려고 공부했다. 투쟁 방법도 고민하고. 당신 덕분이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함석용 사무장은 파업할 때 ‘연대’의 힘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함 사무장은 “파업하고 우리가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다. 신일정밀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끼리 알고 있다. 우리끼리 떠들지 말고 강릉시민들이 알게 하자. 그래서 강릉 시내로 나갔다”라고 강조했다. 변백선
함석용 사무장은 파업할 때 ‘연대’의 힘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함 사무장은 “파업하고 우리가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다. 신일정밀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끼리 알고 있다. 우리끼리 떠들지 말고 강릉시민들이 알게 하자. 그래서 강릉 시내로 나갔다”라고 강조했다. 변백선

민 대표·이 노무사에게 지지 않으려

신일정밀지회는 2020년 10월 23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2021년 5월 20일 신일정밀의 일방중재 신청으로 파업을 종료할 때까지 지회는 213일 동안 끈질기게 투쟁했다. 용석일 지회장에게 200일 넘도록 지회가 투쟁하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금속노조 덕분이다”라고 즉답했다.

용석일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은 “장기투쟁 대책기금으로 조합원들이 전면파업 3개월 이후부터 금속산업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다. 당시 금속노조 임원들과 미조직전략조직실이 힘을 많이 실어줘 노조 중앙위가 지급 결정을 했다”라며 “장투기금이 없었다면 200일 넘는 투쟁을 할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213일. 절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억에 남고 사무치는 일이 왜 없을까. 용석일 지회장은 “파업 초기에 조합원들한테 컵라면 큰 거 하나, 김밥 두 줄씩 줬는데, 파업이 길어지면서 조합비를 아껴야 해서 컵라면 작은 거에 김밥 한 줄씩 줄 수밖에 없었다”라고 탄식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파업할 때 ‘연대’의 힘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함 사무장은 “파업하고 우리가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다. 신일정밀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끼리 알고 있다. 우리끼리 떠들지 말고 강릉시민들이 알게 하자. 그래서 강릉 시내로 나갔다”라고 강조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집회하고 행진하니까 ‘시끄럽다, 차 막힌다’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계속 선전물 돌리고 또 집회했다”라면서 “나중에 강릉에 일파만파 소문이 퍼져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럴까’하는 동정여론이 생겼다. 그러니까 자꾸 나가고 싶어지더라”라며 크게 웃었다.

용석일 지회장은 “친구들이 힘내라고 돈도 모아주고. 지역사회에서 많이 위로받았다. 그동안 강원도에서 이렇게 장기투쟁하는 사업장이 없었다. 신일정밀지회가 최초다”라며 “한 시민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이거 보태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하라’라고 전해주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213일 파업, 강릉이 알아줬다

지회는 신일정밀 사측의 일방중재 신청으로 2021년 5월 20일 파업을 종료하고 공장으로 복귀했다. 파업을 마치고 돌아간 현장에 기업노조가 서 있었다. 이 노무사 작품이었다. 용석일 지회장은 “돌아가서 1·3공장, 2공장 앞에서 아침마다 출근 투쟁을 했다. 계속 단합과 단결을 도모했다”라고 회고했다.

신일정밀지회가 다시 교섭 횟수를 쌓아가며 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2022년 2월 25일, 갑자기 회사 주인이 ‘웰투시인베스트먼트’라는 사모펀드로 바뀌었다. 그동안 회사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소문은 계속 돌았지만, 민 아무개를 비롯한 기존 경영진들은 계속 부정해오던 터였다.

신일정밀지회는 황당했지만, 도약의 기회로 만들려고 기존 단체협약 대신 완전 새로운 단협을 맺자고 새로운 경영진에 제안했다. 용석일 지회장은 “1조 1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시작하는 본문부터 완전 처음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 개씩 밀고 당기며 전부 합의하는 데 넉 달이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지회는 2022년 6월 30일 임금인상·단체협약에 합의했다.

용석일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장(오른쪽)과 함석용 사무장이 8월 19일 강원도 강릉시 신일정밀지회 노조사무실에서 ‘금속노동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백선
기억에 남는 순간과 사람이 있는 물었다. 용석일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은 이현석 노조 전략부장, 이민영 전 미조직전략조직부장, 정원영 노조 전 사무처장, 김호규 노조 전 위원장 등을 언급하며 “금속노조 사람들은 기억에 남는 사람이 아니라 은인이다”라고 강조했다. 변백선

용석일 지회장은 “한국노총에 20년 동안 있었는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한국노총 강릉시지부에 찾아가 ‘우리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라고 호소하면 ‘잘 해결해보라’라는 답변만 받았다. 교육 한 번 못 받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용석일 지회장은 “금속노조는 다르더라. 금속노조로 전환하니 무슨 교육이 그렇게 많은지. 회의도 많고, 자료도 많고. 지회가 어제 감사를 끝냈는데, 회계 감사에 무슨 서류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용 지회장은 교육과 투쟁 지원 등 금속노조의 도움으로 지난 시간을 버텼다고 털어놨다.

기억에 남는 순간과 사람이 있는 물었다. 용석일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은 이현석 노조 전략부장, 이민영 전 미조직전략조직부장, 정원영 노조 전 사무처장, 김호규 노조 전 위원장 등을 언급하며 “금속노조 사람들은 기억에 남는 사람이 아니라 은인이다”라고 강조했다. 노조 충남지부, 전교조·민주노총 강원본부, 강릉시지부 등 많은 이가 투쟁에 함께했다고 밝혔다.

“강원에 금속노조 늘리겠다”

신일정밀 현장 상황과 제품에 관해 묻자 용석일 지회장과 함석용 사무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환봉’이라는 커다란 쇠막대를 잘라 녹이고, 펴고, 깎아 커다란 선회 베어링을 만드는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함석용 사무장은 “제품마다 공법이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만든다”라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금속노조 신일정밀지회의 목표는 뭘까. 용석일 지회장은 “신일정밀지회가 강원도에 금속노조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 우리 지회 활동 영역을 넓혀 강원에 금속노조 사업장을 늘리고 싶다. 현수막도 걸고, 선전전도 하고, 권리 찾기 안내수첩도 배포하고”라며 “현재 노조 미조직전략조직실, 강원본부에 제안하려 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싸워봤더니 우리 지회만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편을 더 만들어야겠다. 혼자 열 번 싸울 거, 우리 편이 같이 싸우면 두 번이면 되거든요. 솔직히 미조직사업 안 해봐서 잘 몰라요. 다들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파업도 안 해봤지만 해낸 것처럼, 이것도 해봐야죠.” 결의하듯 말하는 함석용 사무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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