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를 마치고 숙소에서 뒷풀이를 하는데 경기지부 소속 대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위원장을 찾길래 경기지부 대의원들의 방으로 찾아갔다. 이미 뒷풀이가 한창 진행 중이라 분위기도 무르익었고, 목소리들도 점점 커지고, 술 잔 돌아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다. 앉자마자 소주+맥주+막걸리를 ‘말아서’ 한잔 주길래 단숨에 마시고 나에게 권한 그 동지에게 답주를 따라 드렸다.

여러 대의원 동지들의 요청이나 질문들이 오고 가던 중 내가 덜컥 이런 말을 던졌다.
“지난번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때 만난 분 사업장 소속인가요? 경기지부 젊은 조합원 한명이 나를 보고 ‘씨~펄 위원장이 기본은 해야지’라고 대놓고 내지르던 동지가 있었는데”
그러자 한 동지가 “위원장님 그 친구는 000 소속이 아니고 △△△ 소속 친굽니다”라고 소속을 바로 잡아주신다. 그러자 좌중에서 쏟아지는 질문 “아니 왜 위원장보고 대놓고 욕을 했어요?”

▲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09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주점. 신동준 편집부장

 내가 답변드린 당시 상황은 이랬다.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때 행사를 마치고 주점에 들러 오랫만에 만난 동지들과 술자리를 했다. 여기저기서 찾는 동지들이 많아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술잔을 주고받다보니 시간도 좀 지났고, 취기도 좀 오르는 상태가 되었다. 다음날 본대회도 있고,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일수도 없고, 동행하던 간부들이 “주점을 벌이고 있는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인사라도 드리고 숙소로 가자”는 제안에 따라서 주점들을 돌면서 인사를 드리고 다녔다.

항상 자세를 낮추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인사를 하고 다니다보니 술 한잔 권하는 동지들이 여럿 있었지만 ‘술을 너무 많이 먹었다’는 이유 ‘다음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정중하게 사양하고 잘 돌고 있는데 어느 한 주점을 들러 인사하고 지나가는데 내 귀에 또렷이 들리는 한마디 “아이 씨~펄 위원장이 기본은 해야지”라는 것이다.

내가 돌아보니 여럿이 모여 앉아서 술을 먹다가 내지르는 소린지라 모두가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아이 위원장님 그냥 지나가십시오. 술을 좀 했나봅니다”라고 무마하려는 동지가 있었지만 내가 신발을 벗고 그 동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동지가 생각하는 기본은 뭡니까?”라고 묻자 “술 자리에 왔으면 술잔을 받고 가야되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기본은 하고 가지요 한잔 주세요” 빈잔을 들이밀자 그 동지가 한잔을 가득 부어주었다. 단숨에 한잔을 비우고 나서 “자 동지, 동지도 기본은 해야지요. 술 잔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 기본 아닙니까” 술 한 잔 가득 부어서 되돌려주고 “나는 기본을 다 했으니 갑니다”라고 인사하고 떠났다.

위원장도 사람인데 귀에 거슬리는 욕을 들으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위원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감정 다스리고, 조합원 앞에 항상 자세를 낮추는 것. 그래서 그 조합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모아 ‘단결’하고 자본에 대항할 때 자신 있게 당당하게 자세를 세우는것. 참 말로는 쉬운 것 같은데 실천에서는 어려울 때가 많더라. 앞으로 낮은 자세로 조합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글로 모아보겠다. 순전히 조합원의 이야기 그대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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