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매일 현대차 공장으로 출근했다. 주야 맞교대에 특근까지 해가며 자동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 “당신들은 현대차 직원이 아니”라고 우긴다. 그 탓에 △△업체, □□업체를 옮겨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 중 더 열악하고 취약한 노동자를 꼽는데 빠지지 않는 것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다.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서정영, 김성자 조합원도 그 주인공이다.
서 조합원은 13년, 김 조합원은 10년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일했다. 이들은 도장부서에서 자동차에 도색 전 실러를 바르는 작업을 해왔다. 10여 년 세월동안 세 번 업체를 옮겼고 매번 사장도 바뀌었지만 이들이 일하는 자리는 계속 이 곳이다. 두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하는 거야 당연히 힘든데, 더 힘든 건 제 때 쉬지 못하고 화장실 가고싶을 때 가지 못하는 어려움이다.” 주야 맞교대에 매일 서서하는 작업까지.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여성노동자 업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공장 상황이다. “남자들이 일하는 라인은 여섯 명이 일하다 한 명이 잠깐 화장실가도 서로 순환해가면서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작업은 보충해 줄 인원도 없고 교체 작업도 안 되니까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김 조합원의 설명이다. 심한 경우 열 시간 동안 화장실에 못 간 적도 있다.열시간 화장실 못간 적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회사는 생리휴가를 쓴 여성노동자들에게 보건소에서 증명서를 떼 오라는 둥 수치심을 준다. 지난 해 이 같은 요구를 한 업체 소장 행태에 참지 못한 한 여성노동자가 사용한 생리대를 소장에게 던지면서 항의한 끝에 사과를 받는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두 조합원은 예전에 비해 지금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처음 입사했을 때 여자들 시급이 남자들보다 적었다. 남자들 두 번 임금인상 해줄 때 여자들은 한 번 밖에 안올려줬다.” 김 조합원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성노동자들이 여러 작업을 도는 로테이션도 하지 않고 쉬운 일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 조합원은 “우리가 하는 일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고 힘든데 이런 것 까지 차별하면 되겠냐”고 덧붙인다. 한 때 화장품 때문에 제품에 유분 떨어진다고 화장도 못하게 했다니 말 다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설움도 크다. 서 조합원은 “아니 더 힘든 공정은 비정규직이 다 하는데 임금은 정규직 절반도 안 되고 복지며 뭐며 누릴 수 있는 게 없다”고 꼬집는다. “이대로라면 누가 이걸 보상해주냐. 정말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올해 꼭 잘 싸워서 지금까지 못했던 것들 다 누리면서 살고 싶다.” 서 조합원이 말한다.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서 조합원은 올 해를 포함해 정년 3년 남았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면 정년은 6~7년 늘어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정년이 다르기 때문. “우리는 근속수당, 만근수당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주말에 똑같은 시간 특근해도 정규직, 비정규직 책정되는 시간이 다르다. 임금도 적게 받는데 이런 것 마저 차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애들 학자금은 똑같이 적용받았으면 좋겠다.” 김 조합원이 털어놓는다.
바로 옆에서 같은 일 하는데도 ‘비정규직’ 꼬리표 때문에 이들에게 단협 체결도, 그것으로 복지를 보장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더러운 거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 아니고, 사람 권리 다른 것 하나도 없다.” 정규직으로 당당하게 살기 위해 이들도 투쟁에 나섰다. 이날 만난 두 여성 조합원도 그 중 손꼽히는 이다. 2010년, 2011년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세 공장 비정규직은 정규직전환을 요구하며 치열하게 투쟁했다. 서 조합원과 김 조합원은 당시 투쟁으로 입사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직 1개월이라는 징계를 당했다. “나 혼자 좋으려고 이러겠냐”
“투쟁하면서 명절에 받는 돈이며 상여금이며 회사에서 나오는 돈이란 돈은 죄다 깎였다. 정직 당했던 때도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고 서러웠는지.” 회사는 지난 해 6월 지회 조합원들이 현안 해결을 위해 하루 집단으로 월차를 냈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단결근 처리했다. 이 때문에 김 조합원은 얼마 전 업체로부터 연차 발생을 위해 책정하는 출근 일수에서 딱 하루가 부족해 연차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통보도 받았다. 노조 활동 때문에 생기는 불이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 조합원의 아들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이고, 지금은 해고돼 투쟁 하고 있다. 서 조합원은 아들을 말리기는커녕 더 열심히 투쟁해야 한다고 끌어주는 강성 엄마다.
"지회에서 네 시간 파업한다고 일하다 나오면 관리자들이 ‘여자 투사들도 있네’ 하면서 빈정거리기도 하고, 나이 먹고 이제 곧 회사 관둘 사람이 뭐하러 싸우냐는 사람들도 있다.” 서 조합원의 말이다. 하지만 “나 혼자 좋으려면 이런 설움 어떻게 견디겠냐”고 덧붙인다. “나로 인해서 누릴 거 못 누리고 사는 다른 아줌마들도 잘되면 좋고, 추운 날 밖에서 더 고생하고 있는 해고자들도 얼른 공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이같이 밝힌다. 이들, 올 해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우리 올 해는 꼭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다같이 정규직 되고, 공장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잘될 날만 바란다.”
* 15만 금속노조 조합원 가운데 여성조합원이 대략 7천 여 명에 이릅니다. ‘금속’ 하면 남성노동자만의 조직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동자>가 전국을 돌며 여성노동자나 그 모임을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를 통해 금속노조 뼈대를 이루는 여성노동자나 모임을 발굴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본 기획은 계속 연재됩니다. 전국에 소개할만한 여성노동자나 그 모임이 있으면 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