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워크아웃’ 사업장 노동자들은 일단 기업이 살아나야 고용이 보장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보통이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의 관계도 소원해 진다. 워크아웃을 이유로 회사가 정리해고까지 들이밀면 현장은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 꽁꽁 얼어붙는다.

▲ 지난해 7월7일 사측의 투표방해로 금호타이어지회 4기 집행부 선거가 어려워지자 곡성지회 조합원들이 회사 밖 공터에 투표소를 만들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곡성지회> 제공

1년 전 금호타이어 현장이 그랬다. 2009년 말 경영악화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금호타이어는 노동자들에게 임금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급기야 회사는 지난해 2월 1일 노조 측에 정리해고를 포함한 인력구조조정안과 임금 삭감을 요구했다. 현장은 위축됐다. 금호타이어지회는 회사의 일방적 요구에 반발했지만, 결국 정리해고를 철회시키는 대신 임금 반납과 일부공정의 ‘도급화’ 인정, 워크아웃기간 무쟁의 선언 등을 합의했다. 이른바 ‘양보교섭’이었다.

▲ 김봉갑 금호타이어 대표지회장. 신동준
지난해 이른바 ‘양보교섭’

그랬던 금호타이어 현장에서 최근 역동적인 소식이 들린다. 3월5일 도급화 저지를 위한 휴일 연장근무 거부투쟁 돌입에 이어 11일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 접수. 그리고 지난 17일 파업찬반투표 78.09% 가결과 22일 쟁의대책위원회 구성에 이르기까지.

“조합원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노조간부조차 놀랄 정도의 기세니 사측은 아마 간담이 서늘할 겁니다.” 3월22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만난 김봉갑 금호타이어지회장은 최근 현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조합원들의 투쟁 참여를 막기 위해 주동자뿐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에게까지 징계를 하겠다고 수차례 공고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차갑게 식었던 현장 분위기가 워크아웃 사업장답지 않게 다시금 뜨거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 지회장에 따르면 무엇보다 조합원들은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지난해 교섭으로 실질임금은 40% 가량 줄었다. 재작년에도 임금이 동결됐으니 정상적인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다면 지금의 두 배는 받아야 하는 셈인데 말이다. 김 지회장은 “20년 일한 사람이 월 1백30~1백40만원만 받고 있다보니 조합원 아내들도 맞벌이에 나서고 있는데, 마트에서 일한지 6개월밖에 안된 아내가 20년 일한 조합원 보다 더 많이 벌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20년 근속자가 고작 월급 1백30만원

강화된 노동강도도 문제다. 생산량이 평균 12% 늘었는데, 직무에 따라 평소보다 30% 이상 노동강도가 높아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지회장은 “이로 인해 근골격계 산재환자들이 늘고 있는데,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조합원들이 일 제대로 하는 지 점수를 매기면서 현장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한다.

▲ 3월9일 사측의 전환배치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금호타이어지회대의원들이 현장투쟁을 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곡성지회 제공>

특히 워크아웃에도 불구하고 금호타이어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자 조합원들 불만이 더 높아졌다. 김 지회장은 “같은 금호그룹 계열사들은 워크아웃 위로금까지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는데,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2천4백50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내고도 최소한의 성의는커녕 노조와의 교섭조차 거부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이 분노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지회는 ‘승리의 반격’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조합원들의 분노를 모아 대대적인 싸움을 계획 중이다. 빼앗긴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그런데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현재 지회 집행부는 2010년 교섭 평가를 놓고 그 해 5월 전 지회 집행부가 조합원 총회에서 탄핵당한 뒤 보궐선거를 통해 구성됐다. 때문에 조합원들로부터 노동조합 자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정송강 금호타이어 곡성지회장. 신동준
빼앗긴 것 되찾는 싸움 돌입

김 지회장은 이와 관련해 “자포자기 상태였던 조합원 마음에 다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일이 쉽지 않아 노조간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지회 간부들은 매일 조합원 간담회와 집회를 열며 조합원들의 의지를 모아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교대시간과 식사시간을 이용해야 하는데 근무형태가 4조 3교대이기 때문에 하루에 다섯 번이나 집회를 열어야 한다. 각종 경찰조사와 노동부 조사에 출석하는 일도 다반사다. 회사가 징계해고를 남발해 지회 간부 아내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지어 이혼한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다행히 이 같은 지회 간부들의 헌신에 조합원 마음이 움직였다. 정송강 금호타이어곡성지회장은 “징계해고로 간부들이 생활비가 부족한 것을 아는 조합원들이 쌀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이름을 숨긴 채 돈 봉투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거든다. 정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조금씩 지회 집행부의 진정성을 인정해 줘 힘이 난다”고 덧붙인다.

22일 지회 긴급임시대의원대회장에서 만난 이기승 지회 대의원은 “2010년 혼란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아직 노동조합으로 뭉쳐야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고 있다”며 “이번 싸움의 승리를 통해 이러한 믿음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조간부 진정성 믿는 이들 늘어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는 회복돼 가고 있지만 그 신뢰가 금속노조까지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 이 대의원은 “금속노조가 단일 산별노조라면 산하 지회가 그릇된 판단을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해 금속노조는 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지적한다.

▲ 3월22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열린 지회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지회 집행부와 대의원들이 회사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금호타이어지회는 설립 당시부터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기업별노조 형태로 화학섬유연맹 소속이다 지난 2008년에서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이 대의원은 “당시 기업별노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는데, 지금이라도 조합원들 피부에 와 닫는 근거를 금속노조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송강 곡성지회장도 “회사는 올해 복수노조법 시행 이후 어용노조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금속노조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반박할 수 있으려면 이번 싸움에서 금속노조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금호타이어 사측, 아예 '노조깨기' 나서나?

“회사가 노조 깨는 전문 컨설팅 업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봐도 회사의 탄압이 상식적이지 않아요.” 22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만난 김봉갑 금호타이어대표지회장의 말이다. 김 지회장은 “사측이 직장폐쇄를 통해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는 작전을 짜고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회사는 3월 들어 업무방해, 무단결근, 폭언 등 각종 꼬투리를 잡아 지회 간부들을 대량 징계하면서 노조 측을 자극하고 있다. 22일 현재 지회 간부 및 대의원 18명에게 징계가 떨어졌으며, 이 중 광주와 곡성 지회장을 비롯한 13명의 간부들이 징계해고됐다. 사측은 징계위원회를 계속 개최하는 중이어서 이 숫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뿐이 아니다. 회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경영상 해고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지난해 해고 통보를 받은 대상자들이게 작성토록 한 ‘취업규칙 등 준수확약서’에 불법행위 및 사규위반행위를 다시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

하지만 지회는 이 같은 회사의 도발은 실효성 없는 협박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금호타이어 단체협약는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게 명시돼 있다. 기본적인 절차와 조건도 지켜지지 않은 이번 징계는 법적으로 명백한 부당해고인 셈이다.

확약서를 근거로 경영상 해고철회를 취소하겠다는 것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해 12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조합원 세 명에 대해 해고 기준이 불합리하다며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들 세 명은 차라리 해고된 상태에서 정리해고 부당함을 알리겠다는 의지로 확약서를 쓰지 않고 정리해고를 택했었다.

지회는 회사가 이처럼 법적 효과도 없는 탄압을 남발하는 것과 관련해, 지회를 도발해 탄압의 빌미를 잡기 위한 의도로 보고 대응방향을 고민 중이다. 지회는 일단 섣불리 말려들진 않되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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